고환율 구조적 원인 성찰 없이
달러만 모아선 단기처방 그쳐
제대로 된 원인 분석부터 해야
코스피가 전인미답의 4400선 고지를 넘어서며 축포가 쏟아진 가운데 최근 한 증권사가 낸 반성문이 눈길을 끌었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는 ‘2025년 나의 실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코스피가 4000포인트대까지 조기에 상승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코스피가 오랫동안 박스권에 갇혀 있던 경험 탓에 시장이 내재한 폭발적인 에너지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이 증권사는 2022년 말부터 4년째 공개 반성문을 내놓고 있다. 올해는 16명의 애널리스트가 각 섹터별로 자신의 분석과 전망이 왜 틀렸는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결심까지 총 45쪽에 걸쳐 담아냈다. 지난해 코스피가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증권사들의 실적도 크게 상승해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 속에 겸허하게 실수를 되짚는 자세가 인상 깊었다.
연초부터 다시 들썩이는 환율을 보며 정부도 반성문부터 제대로 썼다면 어땠을까.
정부는 지난해 원·달러 환율이 1484원대까지 급등하자 전방위 환율 안정책을 쏟아냈다. 먼저 국민연금과 한국은행의 650억달러 규모 외환스와프와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환율이 미리 설정한 기준을 넘을 경우 해외 자산을 매도해 환율 상승을 억제하는 것) 기간을 내년까지 연장했다.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환율 방파제로 세우고 있는 셈이다. 또 서학개미(해외주식 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팔고 그만큼 국내 주식에 1년 이상 장기투자하면 5000만원 한도로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22%)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기업에는 해외 자회사에서 배당금으로 받은 달러를 쌓아두지 않고 국내로 들여오면 세금을 면제해 준다.
국가의 정책 실패로 벌어진 환란을 국민의 장롱 속 금붙이로 메웠던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를 연상하게 한다.
이에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달 18일 삼성, SK 등 7대 수출기업을 불러 “작은 이익을 보려 하지 말라”며 달러를 팔라고 압박했다. 금융감독원은 주요 증권사 대표들을 소집해 해외 주식 마케팅을 중단하게 했다.
해외투자 비중을 확대한 국민연금과 서학개미, 해외에서 열심히 사업해 달러를 벌어들인 기업을 고환율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당근과 채찍 모두 동원해 ‘달러 모으기’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정부가 환율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후 이틀간 환율은 1420원대까지 내렸지만 최근 다시 1440원대 후반으로 치솟고 있다. 주요 해외 투자은행(IB) 12곳이 전망한 올해 3개월 평균 전망치는 1440원, 연평균 환율은 1424원이다. 정부의 총력전에도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의 환율 대책이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것은 애초에 번짓수를 잘못 짚은 탓이다.
고환율은 달러 수급뿐 아니라 그 나라의 산업 경쟁력, 미래 성장 동력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투자자들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처럼 ‘쿨해 보여서’가 아니라 미래 수익성을 보고 미국 증시를 선택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21년(미국 2.4%·한국 2.3%)부터 미국 아래로 떨어졌고, 한·미 금리 역시 2022년 7월 역전된 이후 역대 최장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미래 산업 패권을 좌우할 인공지능(AI) 주도권까지 쥔 미국에 국민연금과 기업, 개인투자자들이 눈을 돌린 건 합리적 선택이지 눈총받을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가 성공한 것도 단순히 국민들의 애국심 때문이 아니었다. 정부가 국민에게 손 내밀기 전에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구조조정, 금융 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 고통스러운 조치들을 병행했기에 가능했다. 반면 이번 달러 모으기에는 고환율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성찰도, 산업 구조조정이나 노동시장 개혁 등 잠재성장률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들도 없었다. 역대 정권들 모두 미루고 피해 왔다. 그 결과가 1%대 잠재성장률, 역대 최저치 원화값(2025년 연평균)으로 나타났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반성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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