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football)과 ‘사커’(soccer) 둘 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19세기 영국에선 경기 도중 손으로 공을 만질 수 있는 ‘럭비 축구’(럭비)와 오직 발만 사용이 가능한 ‘협회 축구’(사커)가 나란히 공존했다. 그러다가 럭비 축구는 말 그대로 ‘럭비’, 협회 축구는 ‘풋볼’로 부르는 관행이 정착하며 영국에서 사커는 퇴출됐다. 그런데 한때 영국 식민지였던 영어권 국가들 가운데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사커란 어휘가 뿌리를 내렸다. 특히 미국에서 풋볼은 오늘날 ‘아메리칸풋볼’, 곧 미식축구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미국인들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로 아메리칸풋볼을 비롯해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4개 종목이 꼽힌다. 그러니 축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1968년 미국과 캐나다 축구 팀들을 한데 묶은 ‘북미사커리그’(NASL)가 출범했다. 여기엔 세계 최대 스포츠 시장인 미국에서 축구를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만들고 싶다는 국제축구연맹(FIFA·피파)의 오랜 염원이 반영돼 있다. 미국인들 사이에 축구 붐을 일으키고자 펠레(브라질),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바비 무어, 조지 베스트(이상 잉글랜드) 등 남미와 유럽의 쟁쟁한 스타들이 선수 생활 말년 미국에 진출해 NASL에서 뛰었다. 하지만 축구 열풍은 끝내 불지 않았고, NASL은 1984년 해산했다.
피파는 1994년 월드컵 개최지로 미국을 선택했다. 국내 축구 리그도 하나 없는 나라에서 월드컵이라니! 부랴부랴 준비해 1993년 ‘메이저리그사커’(MLS)를 발족했다. 현재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손흥민 등이 활약 중인 바로 그 무대다. 미국의 축구 실력은 피파 랭킹 16위로 이탈리아(15위)보다 한 단계 낮다. 그렇다고 미국의 전력이 이탈리아와 엇비슷하다고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월드컵 개최 후 3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확실히 ‘축구 강국’으로 불릴 만한 실력은 아니다. 다만 여자 축구는 미국이 세계 최강이다. 1991년 시작해 2023년까지 9번 열린 여자 월드컵에서 미국은 절반 가까운 4번이나 우승컵을 가져갔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이 폐막을 앞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동 주최국 정상의 자격으로 지난 17일 피파 리셉션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의 준결승전을 거론하며 니름의 관전평을 내놓았다. 잉글랜드가 첫 골을 터뜨린 뒤에도 계속 공격을 했어야 하는데, 골잡이 해리 케인 선수까지 수비에 가담시키며 소극적 경기를 펼친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내가 축구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단서를 달았으나, 그쯤 되면 축구라는 운동에 눈을 뜬 것이다. 이날 트럼프는 “알고 보니 미국 역시 축구 국가였다”는 말도 했다. 남은 트럼프 임기 동안 미국 스포츠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길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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