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은 건국 250주년을 맞았다. 많은 사람이 독립기념일을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날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의 승패를 가른 요크타운 전투는 1781년에 벌어졌고,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공식 인정한 것은 1783년 파리조약 때였다.
그럼에도 미국은 승리의 날이 아니라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1776년 7월4일을 국가의 생일로 기념한다. 1775년 13개 식민지는 영국에 맞서 전쟁을 시작했다. 당시 세계 최강 대영제국을 상대로 승산은 거의 없었지만, 미국인들은 먼저 독립부터 선언했다. 전쟁에서 이긴 뒤 국가를 세운 것이 아니라, 먼저 국가를 선언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다.
독립전쟁의 실상도 유명 영화에서 비치듯 민병대의 치고 빠지기와 같은 게릴라전만은 아니었다.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은 지역 방어와 후방 교란은 민병대에 맡기고, 유럽식 정규군인 대륙군을 육성하여 이를 각지에 분산해 운용하기보다는 결정적 전투를 위해 아꼈다. 전쟁 기간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함께 운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용어를 빌리면 하이브리드전에 가까웠다.
영국은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점령하는 등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전투의 승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미국의 저항 의지가 살아 있는 한 영국은 전쟁을 끝낼 수 없었다. 여기에 1778년 프랑스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참전했으며, 이듬해 스페인도 영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전쟁은 국제전으로 번졌다. 결국 요크타운에서 프랑스 해군이 퇴로를 차단하는 사이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은 지상에서 포위망을 좁혀 영국군 주력을 고립시켰고, 끝내 항복을 받아냈다. 물론 그 뒤에도 3만명의 영국군이 북아메리카에 남아 있었지만, 영국은 전쟁을 계속할 의지를 상실했다. 1782년 2월 영국 하원은 공세 중단 동의안을 가결했고, 노스 내각은 무너졌다.
워싱턴은 여러 차례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갓 태어난 국가의 생존이라는 목표를 끝까지 지켜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사령관직을 반납하고 고향 마운트버넌으로 돌아갔다.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것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두 번의 임기를 마치자 다시 물러났다. 미국 민주주의는 워싱턴의 절제 위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오늘날까지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립전쟁은 미 헌법에도 흔적을 남겼다. 수정헌법 제2조의 무기 소지 권리는 평시 상비군을 자유의 위협으로 보고 민병대 전통 속의 무장한 시민을 그 방패로 여긴 건국 세대의 신념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쉽지 않은 이유 역시 그것이 건국의 역사와 자유의 가치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전쟁은 국가가 국민이 함께 선언한 가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이 지금도 독립기념일을 건국일로 기념하고 독립선언문을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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