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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인권리포트] 강제입원 18년... 악몽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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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06 14:07:36 수정 : 2008-10-06 14: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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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강제입원 18년… 李씨의 ‘악몽같았던 삶’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가 18년 만인 풀려난 이철호씨가 비참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권유린과 차별이 심각하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호소할 정도다. 퇴원할 만한 환자도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 정신장애인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고, 가족들도 힘에 겨워 주저앉기 십상이다. 사회의 편견과 낙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들의 버림받은 삶과 인권 침해 실태, 대안 등을 5회에 걸쳐 심층 진단한다.

“강제입원 18년, 그곳은 병원이 아니라 수용소였다.”

이철호(55·가명)씨는 이 땅의 정신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인권유린 실태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치아가 빠진 잇몸, 떨리는 손, 까만 피부, 굽은 등, 어눌한 말투. 그는 14세이던 아들이 32세가 돼서야 정신병원에서 벗어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첫 입원=지난 6일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씨는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담배를 쥔 손이 조금 떨렸고 입놀림이 다소 불편해 보였다. 약 복용 등 여러가지 후유증 때문이라고 했다.“정신장애 3급 복지카드는 최근에 만들었어요. 옛날에는 한 번씩 어지럽고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일상생활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왜 18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을까. 군입대 직전에 만난 한 여자와의 짧은 동거와 원치 않았던 결혼생활, 임신에 따른 책임감과 이혼으로 인한 방황, 술에 의존한 생활과 가족의 불신 등이 이씨의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첫 입원은 29세이던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머리가 아파 다섯 살 위인 누나와 함께 부산의 소규모 정신병원을 찾았죠. 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철창 안이더군요. 의사가 누나에게 입원을 권유한 것 같았습니다.” 한 달 반 만에 퇴원한 이씨는 그때 받은 스트레스와 독한 약이 화병을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재입원과 퇴원, 다시 강제입원=첫 입원 이후 1989년 11월 부산의 한 요양원에 강제입원 되기까지 7년여가 이씨의 마지막 정상 생활기간이었다. 누나와 크게 다투던 이씨는 얼떨결에 흉기를 들었고 겁먹은 누나가 H요양원에 강제로 넣어버렸던 것. 원래 고아원이었던 요양원은 이씨가 입원한 이후 10여년이 지나서야 정신병원이 됐다. 이곳에서 17년을 단 하루의 외출도 없이 짐승처럼 갇혀 살았다.

“전화와 편지도 할 수 없어 외부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죠. 퇴원을 요구하면 누나는 의사 핑계를, 의사는 누나 핑계를 댔습니다.”

그러던 2006년 병원의 의사가 바뀌었는데 “왜 이렇게 오래됐냐”고 물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며칠 뒤 퇴원결정이 떨어졌다. 그러나 퇴원 당일 129 사설응급환자후송단에 강제로 태워져 다른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다른 병원에 또 입원시키려고 누나가 조치한 거죠.”

이씨의 악몽 같은 삶은 2007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의 현장조사를 여러 차례 받고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지옥 같았던 병원 생활=입원 중에 외출은 물론 종교의 자유도 없었다. 병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환자들을 수용해 좁은 방에서 4명이 웅크린 채 자야 했다. 군에서 막 제대한 보호사들의 구타와 부당한 대우는 견디기 힘들었다.“환자 300여명 중 1명만 잘못해도 단체기합을 받았죠. 환자를 침대에 묶어 야구방망이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주사 쇼크로 죽어 나가는 환자도 봤고요.”

비참한 기억은 이어졌다.“시장에서 팔다 버린 배추로 끓인 국은 모래가 씹혀 먹을 수가 없었어요. 여름에는 재고로 쌓인 겨울 양말을, 겨울에는 여름 양말을 헐값에 사 나눠주더군요. TV도 없어서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입원했는데 나와보니 노무현 대통령이더군요.”

당국의 감독은 형식적이었다. 국회의원, 구청장 등이 찾아왔지만 그저 한바퀴 둘러보고 가는 게 고작이었다. 억울함을 호소할 작은 틈조차 없었다.

◆만신창이 삶, 누가 보상하나=이씨가 강제입원 당한 지 3년 만인 1992년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보호사가 부르더니 아버지가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기가 막혀 눈물도 안 나왔습니다.”

이씨는 월세 17만원짜리 여관방을 얻어 막노동하며 살고 있다. 치아가 없는 탓에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해 주로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 먼저 끊어버릴 정도의 관계가 돼 버렸다.

“한때는 내 인생을 망친 가족, 병원, 국가에 복수하겠다는 마음도 먹었지만 지금은 체념하고 삽니다. 소송비도 없고 재판을 한들 몇 년이 걸릴지 모를뿐더러 이긴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이씨는 “뒤늦게 찾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감사하며 살렵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팀장)·이상혁·김태훈·양원보·김창길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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