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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7>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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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9-10 17:39:41 수정 : 2008-09-10 17: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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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종교는 처절한 외로움을 불러올 뿐"
◇정진홍 교수는 “과거의 정통이 오늘은 이단이고, 오늘의 정통이 내일은 이단이 될 수 있는 게 종교”라며 “특정 종교가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면 처절한 외로움을 부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제원 기자
야금야금 불거진 ‘종교 편향’ 논란이 8월을 고비로 우리 사회의 주된 논란거리로 자리 잡았다.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개별 종교 수준을 넘어선 일반종교학을 연구한 종교학 전문가이다.

정부를 향한 불교계의 분노가 여전했던 지난 8일 서울 신촌 이화여대 대학원 건물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특정 종교에 심취해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들 만큼 평화롭고 밝은 모습으로 연구실 문을 열어준다. 훤칠한 키에 미소 가득한 얼굴이 편안함을 안겨준다. 1937년생으로 179cm라고 하니 동년배에 비해 족히 15cm는 큰 셈이다.



#“종교차별금지법? 법은 안 만들수록 좋아”

종교 기행문 ‘신을 찾아, 인간을 찾아’와 시집 ‘마당에는 때로 은빛 꽃이 핀다’, 독서 체험을 담은 ‘고전, 끝나지 않은 울림’ 등 다양하게 그의 글을 접해 왔다. 하지만 여느 학자의 인터뷰와는 달리 시의성 있는 질문부터 던졌다.

불교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종교차별금지법’ 제정 주장에 대해서 “법은 안 만들수록 좋다”고 간명하게 답한다. 우리는 헌법에 정교분리를 명문화하고 종교자유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종교법은 누구에게나 인정되고 적용되는 게 아니다”며 “입법을 한다고 해도 종교법은 명료하게 기술하기 힘들며, 실효성도 없다”고 설명한다.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할 만큼 해석의 다양성에 노출돼 법으로도 종교를 규정 짓기 힘들다고 강조한다.

법 제정 여부가 핵심이 아니라 있는 기본권이라도 제대로 운용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어렵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합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지루하지만 분노를 참고 인내하면서 목표를 이뤄가는 성숙한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독실한 신자들부터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일부 기독교인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비유가 재미있다.

“내게는 내 애인이 최고로 좋고 예쁜 친구인 것처럼, 내 친구에게는 자신의 애인이 최고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일 겁니다.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지점이 바로 이런 시각이지요. 나의 종교가 소중하듯, 타인의 믿음도 그에게는 의미가 깊은 법입니다. 반성해야 할 분들이 있을 거예요.”

이는 지난 8월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정원에서 가진 ‘건국 60년 기념 연속강연’의 하나인 ‘인문학적 상상력과 종교문화’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도 밝혔던 내용이다.

“단일 문화권이었던 과거에는 하나의 종교로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현실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가장 불교적인 게 가장 기독교적인 것으로 인정돼야 하는 상황입니다.”

종교학자이지만 그는 종교만을 최고의 선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종교는 부처와 예수 때문이 아닌, 사람 때문에 생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람들이 삶과 순수에 대해 고민하면서 종교가 태동했다는 설명이다.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도 그러한 과정에서 드러났을 뿐이다. 그러기에 기독교적인 고민과 고뇌는 불교를 통해서도 받아들여야 하고, 또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수긍할 만하다.



# 종교는 가장 아름다운 문화

그렇다면 “종교는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반문이 고개를 든다. 돌아온 답이 간명하다. “종교를 만들었으면 어떻습니까. 종교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문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종교를 문화로 설명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문화는 연속성이 있으니, 기독교·불교·유대교가 다 연결돼 있다는 설명에서는 의문이 도진다. 독자들을 포함해 일부 종교인의 반발이 있을 수 있겠다는 우려도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다.

“결코 특정 종교의 논리와 준거로 인류의 모든 경험을 설명할 수는 없어요. 종교 스스로 양보하지 않는 것을 ‘돈독한 신앙’ 내지 ‘선’으로 여길 때 종교는 악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종교가 ‘해결’이 아닌 ‘문제’가 되는 현실은 이 때문이지요. 세상에 다른 종교보다 우월한 종교는 결코 없습니다.”

종교인은 자기 종교만의 독단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설명으로 들린다. 역사는 종교가 태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증언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단이었던 신흥 교파가 나중에 더 사랑받는 종교가 되는 숱한 경험을 역사는 간직하고 있다.

그는 간혹 “어느 종교가 좋으냐”는 질문을 받는다. 답은 한결같다. “당신이 믿고 있는 게 최고의 종교입니다.”

종교인이라면 그가 들려준 사례를 기억할 만하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 강진으로 어느 지역이 영국성공회 건물을 제외하고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힌두교인들이 성공회 주변으로 왔다. 하나님이 성공회를 선택했다는 선언으로 힌두교인에게 전도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성공회 신부가 선택한 것은 ‘진실’이었다.

“여러분의 시설은 토담집이었지만, 성공회 건물은 철근으로 설계돼 지진에도 끄덕 없었습니다. 지진은 기독교와 여타 종교를 결코 차별하지 않습니다. 이 지진의 고통을 알고 여기에서 의미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합니다.”


# 죽음의 순간도 타인에게 덕을 베풀 기회

개별 종교의 힘이 강해서인지 우리 실정에서는 개별 종교가 아닌 종교 자체에 대한 연구 풍토는 미약하다. 정 교수 또한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지난 5월 삼양그룹 창업자의 유지를 살린 ‘수당상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때 받은 상금 1억원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종교문화연구소에 전액 기증했다.

“사회가 종교라는 문화를 주목하고 인정한 과정이었지요. 상금이 1억원이 넘다 보니, 이미 ‘공금’이라고 생각했어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저술상으로 받았던 300만원을 아내, 아이들과 나눠 썼을 때와도 달랐지요.”

그는 ‘죽음’도 주된 관심 영역으로 두고 있다. 6·25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17년 전 첫 부인과 사별한 경험이 토대가 됐다. 특히 17년 전에는 군복무 중이었던 두 아들도, 직장에 나가야 하는 정 교수도 병상의 아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환경과 여건 변화로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을 몸소 겪은 셈이다. 이 경험은 호스피스 제도의 활성화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삶을 이어가는 개인으로서도 준비할 게 있다. 사람은 죽음의 순간조차도 타인에게 덕을 베풀 의무가 있다. 죽음도 가꾸어 다듬어야 할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인식되면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죽음도 준비해야 합니다. 정신적, 법적으로 정리해야지요. 사람의 일은 알 수 없으니, 유서도 미리 작성해 변호사에게 공증을 받아야 합니다. 유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정해야 하지요.”

그도 오래전부터 유서를 작성해 변호사 공증을 받아두었다. 가족의 혼란을 방지하고픈 생각에 더해 사회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소명의식에서다.

bali@segye.com



■정진홍 교수는…

1937년 충남 공주 출생. 종교는 ‘주어진 것’보다는 ‘만들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종교문화에 대한 다양한 글을 써오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서울대 대학원 졸업. 미국 유학 이후 덕성여대, 명지대를 거쳐 1982년부터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3년 서울대 정년퇴임 이후 강원대를 거쳐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종교학회 회장,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다.

▷저서◁

‘열림과 닫힘’ ‘고전, 끝나지 않은 울림’ ‘종교학 서설’ ‘한국 종교문화의 전개’ ‘종교문화의 이해’ ‘종교문화의 인식과 해석’ ‘하늘과 순수와 상상’ ‘종교문화의 논리’ ‘신을 찾아, 인간을 찾아’ ‘마당에는 때로 은빛 꽃이 핀다’ ‘만남, 죽음과의 만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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