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인생의 장이 시작된다’는 의미는 단순히 갱년기가 왔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 하는 위로가 아니다. 폐경 이후의 체내 호르몬 변화를 살펴보면 여성에게 세 번째로 찾아 온 이 전환기가 노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수긍이 가게 된다. 폐경이 되면 난소의 기능이 없어지면서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과 같은 여성호르몬의 혈중 농도가 급격히 감소한다. 한편, 폐경 전후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농도 변동은 거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여성의 몸속에서 남성호르몬의 비율이 역전되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시기의 여성들은 대개 자녀 양육이 거의 끝날 무렵이므로 육아 및 교육에서 해방되면서 동시에 신체적으로도 남성 호르몬 우세의 영향을 받아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방향으로 변화되는 수가 많다. 폐경기가 지난 이른바 ‘할머니’들이 현명함과 기백을 갖추어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하면서 존경받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분들의 경력과 연륜에 따른 경험 이외에도 이와 같은 체내 호르몬 변동이 숨어 있는 추진력이 되었을 수 있다. 주체적이고 단호한 시어머니의 모습, 과감하고 꿋꿋하게 황혼 이혼을 추진하는 중년 부인의 모습 역시도 이러한 호르몬 변화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여성 호르몬이 없어진 여성들에게 이를 보충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호르몬 치료가 널리 행해졌으나, 1970년대에 에스트로겐이 자궁내막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과 프로게스토젠 (합성된 프로게스테론 제제)이 자궁내막의 보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1990년대에는 서구 여성의 20?30%가 호르몬 치료를 받아 왔다. 그러던 중 2002년, 호르몬 치료가 유방암 및 심부정맥 혈전증을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Women’s Health Initiative(WHIG)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최근에는 여성호르몬 치료 수요가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2002년 WHIG 연구 결과는 연구에 포함된 여성들이 고령이고 유방암의 전체 발생 빈도가 우리나라와 상이한 서구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에서는 안면 홍조, 야간 발한(식은땀) 등과 같은 혈관운동 증상이나 질 건조증, 질 위축증 등의 증상이 있는 여성, 예방이 필요한 일부 여성들은 호르몬 치료가 필요하다고 승인하고 있다. 요컨대 호르몬 치료는 전문의와 상담한 후 나에게 맞는 치료를 선택하는 개별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대여성암전문병원 부인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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