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통일부의 ‘2010 북한 주요 인물’에 따르면 김영철은 최근 총국장에 임명됐다. 그는 1990년부터 남북고위급회담과 장성급회담 대표 등으로 꾸준히 얼굴을 내밀었고, 2006년부터 2007년 말까지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대표단장을 맡았다. 북한 군부 내에서 대표적인 대남통이자 강경파로 통한다.
그가 지난해 5월 대남공작 총책이 된 배경에는 김정일의 신임과 북한 내 후계체제 구축작업, 핵 실험 등에 따른 대내외 환경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영철은 군부 초년 시절부터 강경 일변도의 노선을 견지해 왔다. 그는 1968년 인민군 소좌(소령)로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를 맡아 당시 미북 간 전쟁 직전의 위기까지 갔던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을 담당했다. 2008년 12월 북한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출입제한 조치도 김영철이 주도했다.
김영철은 대청해전 발발 사흘 만인 지난해 11월13일 군사회담 북측단장 자격으로 우리 측에 통지문을 보내 “지금 이 시각부터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군 정보당국은 이런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최근 대남공작 임무를 맡게 된 김영철이 천안함 공격을 통해 김정일과 강경파가 득세한 군부의 신뢰를 얻고, 자신이 공언한 대청해전 보복을 실행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판문점 등에서 그를 자주 접했던 문성묵 전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은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상투적인 협상으로 분위기를 어렵게 만드는 협상꾼이었다”고 말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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