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씨를 통해 정치권 인사를 겨냥한 검찰은 31일 일각에서 제기한 기획입국설을 전면 부인했다. 박씨가 귀국하기 전에 검찰 직원이 캐나다로 건너가 의견조율을 한 적이 없다는 것. 무엇보다 검찰 내에서는 수사 자체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을 때 빚어질 조직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앞서 검찰은 박씨 귀국 전 특혜인출 수사 결과를 내놓은 뒤 여론과 정치권으로부터 ‘부실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까지 ‘질책’했다. 당장 10월4일로 예정된 국정감사에서 특혜인출 외에 로비수사 부분도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번 박씨를 상대로 한 수사에 그간의 불신을 모두 털어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검찰은 지난 5개월간 박씨 통화 내역과 해외송금 내역 등을 분석했고, 주변 사람을 조사하는 등 그의 행적을 샅샅이 훑었다.
‘돈 전달’을 지시한 부산저축은행 김양 부회장과 이를 실행한 그의 측근 조모씨 등도 소환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가 국회의원 실명을 거론했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부회장 진술과 그간 추적한 박씨 행적 등을 종합해 수사대상을 선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씨를 상대로 김 부회장의 진술이 맞는지 등을 캐물은 뒤, 로비 대상으로 거론된 두 K의원 등을 소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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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수감 부산저축은행그룹에서 구명 로비자금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된 로비스트 박태규(71)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검찰은 자진 귀국한 박씨를 상대로 아직 로비 부분을 추궁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 측과 박씨가 로비자금 규모에 대해 다른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 측은 “17억원을 줬고, 이 중 2억원을 돌려받았다”고 진술하지만, 박씨는 액수가 이보다 적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박씨가 자금 규모로 다투는 상황이라 아직 로비 수사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로비자금 규모가 특정돼야 수사가 로비대상으로 진척될 수 있다.
검찰은 박씨가 저축은행 측 로비자금으로 상품권을 구입한 내역은 물론 박씨가 ‘보수’ 등 명목으로 받은 자금의 사용처 등을 추적했다. 해외에 있는 아들에게 송금한 내역, 부인 병원비에 쓴 흔적도 추적대상이었다. 실제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박씨와 함께 골프를 친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그러나 “단순히 친하거나 통화했다는 것만으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미 다른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검찰은 박씨가 9차례에 걸쳐 총 15억원을 받았다는 진술 외에 당시 돈을 전달한 인물과 장소, 돈의 출처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모두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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