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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폭격' 시키고 각목으로 때리면 체계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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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2-22 13:05:55 수정 : 2012-02-22 13: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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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본 대학 운동부의 폭력 악순환
조교 거쳐 실세 학번 행동 개시
'원산폭격' 시키고 각목으로 때려
고학번순으로 체계 저절로 잡혀
불참땐 학점·장학금 배정 불이익
참가자들의 행동을 분석해 최적의 전략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이 ‘게임이론’이다. 취재팀은 체육대학 안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폭력에는 특별한 ‘모티브’가 있다고 보고, 보스와 행동책, 피해자의 이해관계와 행동방향을 전문가인 중앙대 박찬희 교수(경영학)의 도움을 얻어 게임이론의 틀로 분석했다. 그림1의 경우, 보스는 행동책에게 학생에 대한 교육을 지시하거나 하지 않는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여기서 보스가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학생들에 대한 폭력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도록 지시할 때 행동책이 그 말에 따르느냐 안 따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를 통해 모두 세 가지 행동결과가 나온다. 보스와 행동책은 서로 간에 최적의 선택(학생관리의 편리함과 ‘유능하다’고 인정받음)을 얻는 쪽으로 행동전략을 짜게 된다. 그림 2와 3 역시 각 행위자들이 최적의 조합을 만들기 위한 선택을 하다 보면 결국 폭력을 행사하고 조장하는 방향으로 조직이 움직인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보는 데서 98학번이 99학번을 각목으로 때리고 갔다. 그러면 99학번이 00학번을 마구 구타한다. 매질은 00학번에서 01학번으로 이어진다. 구타가 차례대로 내려왔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체계가 잡혀 있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다.”(대학원 조교 A씨) 운동선수 집단의 폭력은 여전했다. 모 대학 운동부 학생들을 취재한 결과 폭력은 더욱 정교하고 은밀해졌다. 전문가들은 “대증요법에만 치중한 나머지 폭력을 뿌리 뽑지 못하는 우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며 “폭력의 가동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밀하고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톱니바퀴’처럼 고착화된 운동부 폭력


발단은 교수나 코치 등 ‘지도자’다. 조교에게 “수업태도가 안 좋다”고 한마디만 던지면 된다. 그러면 실세 학번이 행동에 나선다. 곧이어 중간학번→신입생 순서로 집합명령이 내려온다. A씨는 “집합을 안 시키면 무능한 조교라는 낙인이 찍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집합 후에는 인원파악을 하고 일명 ‘원산폭격’부터 한다. 2시간이 지나면 각목으로 수십대씩 맞고 나서야 “감사합니다”라며 인사한다. 지도해줘서 고맙다는 뜻이다. 체계적 폭력에 길들여진 상황에서 집합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B씨는 “얼마 전에는 집합 불참 시 학점과 장학금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공지까지 받았다”고 실토했다. 한 학생은 “후배 중 하나가 장학금 배정에 영향을 주는 건 너무하다는 항의 글을 학교 인트라넷에 올렸다가 무지막지하게 맞았다”고 말했다. 다수가 소수의 폭력에 겁을 먹고 따르는 메커니즘을 경제학에서 ‘시그널링(signaling) 효과’라 부른다. 신입생 때 “나는 너희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신호를 받고 나면, ‘시범사례’가 될까봐 두려워 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폭력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의도적 변칙(intentional irregularity)’ 기법도 가미됐다. 즉 아무 이유 없이 불시에 때리는 것이다. B씨는 “입학하고 1학기 동안은 1주일에 1∼2번씩 아침에 갑자기 집합통보를 받는다. ‘수업 끝나면 맞는구나’라는 생각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심지어 몇 년 전 모 대학 운동부 입학식에서 한 선배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신입생 뺨을 30분간 때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언제 맞을지 몰라 후배들이 선배들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림 1·2>는 이같이 폭력이 교수와 조교, 고학번을 거쳐 ‘내리갈굼’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분석한 것이다.

◆행동책과 방관자, 폭력의 연대


한 학번에 4∼5명인 행동대장급은 집합 때 직접 때리는 일을 전담했다. ‘원산폭격’ 대열을 지나며 자세를 감시하고 발로 걷어차거나 각목으로 때렸다. “요즘 너희 개판이다. 교수님들께 인사를 안 한다”, “전공시간에 소리를 안 낸다” 등 꼬투리도 잡는다. 이들은 운동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C씨는 “수업시간에 나보다 실력이 부족한 선배들이 집합 때 복수를 했다”면서 “운동을 잘 하면 굳이 후배를 때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자존심을 채우려고 더 적극적으로 조직논리에 매몰된 사례다.

그러나 이들의 힘은 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방관자도 집합에 나와 세를 보이며 행동대장급과 긴밀한 연대를 맺었다. D씨는 “위에서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때려야 하는데, 악마 같은 애들이 총대를 멘다”면서 “동기가 무너지면 학번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한다”고 털어놨다. 물론 이들 행동대장과 방관자 연대는 위세뿐 아니라 실질적인 이득도 얻는다. E씨는 “학번 간 서열 때문에 후배가 선배보다 아무리 잘해도 선배가 경기에 나간다”고 설명했다. <그림3>은 행동책과 방관자 간 고리를 잘 보여준다.

◆개인적 이탈 어려워… “내 자식은 절대로 운동 안 시킨다”


학내 단체의 탈퇴는 거의 불가능하다. F씨가 그만둔다고 말하자 동기들이 20대씩, F씨는 100대를 맞았다. F씨는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멍이 들어 택시를 엎드려 타야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직에서 벗어날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운동 이외 다른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조직 논리를 거부할 여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어려서부터 강제적으로 공부를 차단당하는 바람에 조직을 이탈하면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조직을 탈출하려는 구성원에 대한 시기심과 배타적 감정은 여기서 생겨난다. 이런 탓에 운동선수 출신들은 자식 세대에서 ‘탈출’을 꿈꾼다. 한 학생은 “운동한 부모는 자식한테 운동을 안 시킨다. 나도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운동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준·박영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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