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씨는 “내 초기작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비행운’을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면 ‘아, 나도 인생의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솔직히 ‘비행운’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예상치 못했어요. 지난 4년간 쓴 단편을 묶은 것인데 모으다 보니 무거운 얘기만 하게 됐죠. 4년 전과 비교해 세상이 더 나빠졌잖아요. 독자들도 지금 맞닥뜨리는 생활의 어려움 때문인지 소설에 공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김씨 말대로 ‘비행운’은 무거운 이야기다. 8편의 수록작 중 ‘너의 여름은 어떠니’ ‘호텔 니약 따’ ‘서른’은 대학 졸업 후에도 변변한 직장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대출받은 학자금 갚기에 급급한 요즘 청춘들의 팍팍한 삶을 그렸다. ‘큐티클’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유혹에 굴복하고 마는 젊은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물속 골리앗’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하루의 축’은 비정규직 근로자와 그 가족, 이주노동자 등 우리 사회 약자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고발한다.
“나는 연애를 볼 때에도 연애 자체보다는 연애를 하고 싶은데 방을 구할 돈이 없어 못 하는 사람들 쪽에 관심이 쏠려요.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니냐고들 하지만, 나는 ‘먼저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비관을 건너뛴 희망이 아니라 비관 다음에 오는 희망이라야 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씨 소설의 주된 독자층은 또래인 20∼30대 여성들이다. 그는 “책 내고 독자들과 만나는 행사에 가보니 남자는 전체의 10%도 안 됐다. 군복무 중인 분도 있었는데 ‘정말 보석 같은 남성팬’이라고 불러줬다”며 웃었다.
김씨는 문인으로는 드물게 한예종을 졸업했다. 원래 연극원 극작과에서 희곡을 공부하다가 소설로 방향을 틀었다. 그동안 ‘한예종 출신 예술인’ 하면 성악가·연주가·발레리나·연기자만 거론했지만 앞으로는 학교를 빛낸 동문 명단에 ‘소설가 김애란’도 꼭 넣어야 할 듯하다.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이 일본·중국·프랑스에서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새 장편은 지금 구상 중인데 올겨울부터 계간지에 연재를 시작하려고요. ‘비행운’을 쓰며 너무 가라앉았던 만큼 차기작은 활기 있고 유쾌한 작품을 써보고 싶어요.”
글·사진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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