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서울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던 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체코 정권과의 불화로 프랑스로 이주한 밀란 쿤데라(1929∼ )는 국내에서 생소한 작가였다. 민음사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세계의 문학’ 1988년 가을호에 ‘참을 수…’가 전재됐고, 그해 말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바람둥이 외과 의사 토마시, 그가 사랑한 시골 여자 테레자, 그리고 토마시의 정부이자 화가인 사비나, 사비나의 유부남 애인 프란츠. 이들 네 사람이 펼치는 사랑 이야기가 1968년 소련의 프라하 침공을 배경으로 몽환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이데올로기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의 공허한 심정을 파고들었다는 분석이다. 이 소설이 각광을 받자 여기저기서 다른 소설들도 한꺼번에 출간되면서 1990년대 벽두 국내 독서계에는 바야흐로 쿤데라 붐이 일었다.
체코 출신 프랑스어 작가 밀란 쿤데라. 그는 1988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래 가장 사랑받는 외국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
황동규 시인은 “멋대로 신나게 가볍게 살던 의사가/ 농장 노동자가 되어 죽는 쿤데라 소설 영화/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을 보고/ 의사 마종기와 여주인공 칭찬을 하며/ 브로드웨이 32번로까지 걸어가 강서회관서 저녁을 먹고…”로 이어지는 ‘견딜 수 없는 가벼운 존재들’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국내에 개봉됐던 이 소설의 영화 제목은 ‘프라하의 봄’이었고 황 시인은 ‘견딜 수 없는’을 끝까지 고집했지만 박맹호 회장이 처음 제시한 ‘참을 수 없는∼’이 결국 대세를 굳혔다.
이후 20여년 동안 ‘농담’이나 ‘느림’ ‘불멸’ 같은 쿤데라의 후속작들은 꾸준히 국내에서 인기를 누렸다. 농담 한 마디 때문에 유형을 가게 된 정황으로 소설 한권을 꾸린 ‘농담’은 무거운 한 편의 농담이다. 대학생 루드비크가 여자 친구를 골려주려고 쓴 엽서 한 장 때문에 사회주의의 적으로 몰려 당과 대학에서 제명당하고 오스트라바 근교의 탄광에 떨어진다. ‘불멸’에서는 소설가의 저주받은 숙명을 말한다. 평범한 배관공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이지만 평범한 소설가들은 경멸당해 마땅한 존재들이라고. 성실함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소설가의 저주를 밀란 쿤데라는 극복했을까.
국내에서는 생존 작가인 그의 전집이 최근 완간됐다. 저작권을 단독으로 확보한 민음사가 지난달 말 쿤데라의 희곡 ‘자크와 그의 주인’을 내면서 ‘밀란 쿤데라 전집’ 목록을 완성한 것이다. 쿤데라의 소설 10권과 에세이 4권, 희곡 한 권 등 모두 15권으로 구성됐다. 덤으로 평론가와 전문독자, 편집자들이 참여한 ‘밀란 쿤데라 읽기’라는 참고서도 같이 출간했다. 이 책의 서문에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밀란 쿤데라는 한국 문학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문학 작가 중 한사람이 되었다”면서 “그의 작품에서 나온 뿌리들은 한국어 속으로 넓게 퍼져가면서 한국 문화 속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있다”고 썼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쿤데라는 한국의 편집자에게 책 날개 저자 약력에 단 두 문장만 넣으라고 요구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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