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채 증가를 주도한 12곳, 복리후생으로 물의를 빚은 20곳을 중점 관리하고 성과가 미진하면 기관장 해임 권고, 보수 동결, 성과급 미지급 등 채찍을 드는 이유다. 그러나 기관장 인사개혁과 민영화 등 경쟁력 강화 방안이 빠져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미지수다. 노조의 강력한 반발과 정권과 연이 있는 낙하산인사를 어떻게 넘어설지가 과제다. 공공요금의 대폭 인상도 우려된다.
정부는 획기적인 부채 감축과 자율적인 경영혁신, 점검체계 구축을 이번 대책의 기본방향으로 삼았다. 이를 토대로 ‘정보공개 확대·부채관리 강화·방만경영 개선·추진체계 구축’ 4개 항목으로 세부대책을 짰다. 정보공개 확대는 국민이 함께 감시하도록 해 공공기관 스스로 개선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과거 5년간 부채 증가 원인을 성질·원인별로 분석하고 고용세습과 휴직급여, 퇴직금, 교육비, 의료비, 경조금 지원, 복무행태 등 8개 항목을 별도 공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부채관리는 빚이 최근 많이 불어난 12곳을 대상으로 한다. 부채 감축 방향은 ‘자구노력-정책 패키지 지원-이행 관리’ 3단계로 진행된다. 방만경영이 심각한 20곳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정상화 과정에서 기관장이 주도권을 갖고 계획을 이행할 수 있게 책임과 권한을 강화했다. 내년 3분기 말에 중간평가를 해 실적이 미진한 기관장은 해임 건의 등 강력 조치를 취한다. 기타 공공기관에 대한 주무부처의 책임 강화와 기재부 2차관 주재의 공공기관정상화협의회 신설, 지방공기업 부채에 대한 지자체의 책임 강화 등도 눈에 띈다.
부채가 과다하거나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간접자본(SOC)·에너지·금융 관련 분야 43곳의 기관장 보수가 삭감 대상이다. 작년 기준으로 이들 기관장 평균 보수를 보면 금융 3억2200만원, SOC 2억5800만원, 에너지 2억3600만원 등이다. 정부는 이들 기관장의 기본연봉(공무원 차관급 연봉 대비 100∼150%)은 그대로 두되 성과급 상한을 내려 총보수를 낮출 방침이다.
올해와 내년도 경영평가에서 최고등급(S등급)을 받는다면 이들 기관장 보수는 올해 대비 최대 26.4% 줄어든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맞춰 공기업·준정부기관의 내년도 인건비 등 주요 경비도 긴축 편성된다. 대규모 사업 추진에 대한 재무심사를 강화하는 등 예산편성의 투명성 확보 장치를 마련했다. 임원 연봉 조정과 맞물려 3급 이상 최상위 직급의 연봉을 동결하고 총 인건비 인상률을 공무원 처우개선율과 같은 1.7%에 맞추도록 했다.
경상경비는 전년도 예산액 수준으로 동결하되 꼭 필요한 경비는 최대한 절감해 편성하도록 했다. 업무추진비는 전년보다 10% 줄여 편성하도록 했다. 초·중·고교 자녀 학자금 지원은 공무원의 자녀학비보조수당에 맞춰 국내 고교 자녀에 대해서만 서울시 국공립고 수준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대학생 자녀 학자금은 무상지원을 폐지하고 융자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5차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에서 과다부채와 방만경영으로 인한 비상상황에서 공공기관의 대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가 백화점식 대책을 내놨지만 얼마나 실현될지는 불확실하다. 먼저 우려되는 부분은 노조의 반발이다. 전국철도노조는 수서발 KTX의 운영 자회사 설립에 대해 9일 무기한 총파업에 착수했다. 1∼4호선 서울지하철 노조가 18일부로 총파업을 한다고 예고했다. 이런 움직임은 수서발 KTX의 민영화 문제를 넘어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대한 공공노조의 연대로 해석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역대 정권이 공공기관 개혁에 나설 때마다 노조의 강한 반발에 후퇴를 거듭했다.
낙하산 등 인사개선 대책이 빠진 것도 문제다. 현 정권 들어서도 전문성이 의심되는 낙하산인사가 이어진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런 인사들은 기관장 취임 과정에서 노조와 마찰을 피하려고 직원 복지 혜택을 올려준다. 정부가 낙하산 사장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실적부진 기관장의 중도해임 건의를 천명했지만 권력과 밀접한 기관장까지 손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전문가 낙하산이 큰 문제인데 인사개혁 방안이 빠졌다”며 “본질적으로 공공기관의 체질을 개선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인원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과 민영화 방안은 아예 배제됐다.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을 아무리 제어한다고 해도 서로 경쟁하는 민영화 기업보다 못할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민영화하는 방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규모 재정 투입과 공공요금 인상도 우려된다. 공공기관이 자산 매각이나 일부 사업 정리 등 자구노력을 기울여도 빚을 확 줄이기 어렵다. 결국 세금이 들어가고 고속도로 통행료, 전기료 등 공공요금이 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종=박찬준 기자 sky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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