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에 정책별 장단점 사라져
연속성 보장 장치·합의 필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는커녕 오년지소계(五年之小計)도 안 되는 것 같다.”
중학생 자녀를 둔 서울지역 한 학부모의 탄식이다. 서울 교육을 바라보는 대다수 학부모들의 심경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지난 5년여간 공정택·곽노현 전 교육감, 문용린 교육감으로 수도 서울 교육의 수장이 바뀌는 동안 학교 현장의 혼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를 비롯해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정책을 두고 시끄러운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진보 성향의 곽 전 교육감이 야심차게 추진한 이들 정책은 그가 선거법 위반으로 2012년 9월 낙마하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로 뽑힌 보수 성향의 문 교육감이 ‘곽노현 색깔’ 지우기에 나서면서다. 동시에 문 교육감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학교 자유학기제’ 공약과 유사한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를 자신의 대표 브랜드로 추진했다. 정책별 장·단점이나 호·불호를 떠나 교육감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생겨난 것이다. 이는 교육의 정치 예속화 탓이란 지적이 많다.
실제 헌법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감 선거는 이념적으로 갈린 정치권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지고 있다. 교육 관련 주요 정책이 수시로 정치 쟁점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곽 전 교육감이 정치 생명을 걸고 치열하게 다툰 것이나, 혁신학교 문제로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 의회와 문 교육감이 옥신각신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교육 주체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만 애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교육학)는 10일 “교육감 선거가 2010년 직선제로 바뀌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며 “연속성이 필요한 교육정책이라면 누가 교육감이 되든 안정적이고 발전적으로 추진되도록 할 장치나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잖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감 후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른 채 모든 유권자가 참여하도록 돼 있는 현행 선출 방식은 교육 자치의 취지를 못 살리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다만 오는 6월 4일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부터 교호(交互)순번제가 도입돼 ‘로또 교육감 선거’의 오명은 벗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교육감 후보들은 추첨으로 투표용지에 적히는 순서를 배정받아, 여야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는 ‘추첨만 잘하면 당선증을 쥘 수 있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을 세로가 아닌 가로로 나열하고, 그 순서도 기초의원 선거구별로 다르게 표기해 ‘기회의 균등’을 보장함으로써 후보자의 지명도와 정책이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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