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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대박 밑거름’ 남북 문화재 교류 갈 길 멀다

입력 : 2014-04-02 21:33:03 수정 : 2014-04-02 21: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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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남북공동조사 제자리
北, 경제난에 문화재 보존 힘들어
정통사극을 표방한 ‘정도전’이 요즘 인기다. 고려말의 정치투쟁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의 공간은 지금의 북한 개성이다. 개성에는 지난해 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지구가 있다.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교류협력이 필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밝힌 통일 구상에서 ‘동질성 회복’은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3요소 중 하나다. 실천과제 중 하나로 ‘역사연구와 보존’을 꼽았다.

남한이 향유하는 역사(‘정도전’)는 북한의 문화재(‘개성역사유적지구’)로 생생하게 증언된다. 분단의 세월이 반세기를 넘었지만 5000년간 공유된 기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언급에 누구라도 공감한다. 역사를 품은 문화재는 ‘통일 대박’의 토대다. 토대가 좀 더 탄탄해지려면 서로의 문화재를 알아야 하지만 남북한 모두 준비가 부족하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개성역사지구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많이 있다. 고려궁성(사진)은 919년 창건되어 내내 정궁 역할을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남한의 드라마로 풀어본 북한의 문화재

드라마에서 권력투쟁은 궁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개성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고려궁성’(북한국보유적 122호)의 터가 남아 있다. ‘만월대’라고도 불린다. 제1정전인 ‘회경전’을 비롯한 ‘장화전’, ‘원덕전’으로 이뤄진 중심건축군을 가운데 두고 서쪽은 제2정전인 ‘건덕전’, 동쪽은 세자가 머물던 ‘춘궁’, 북쪽은 궁궐 정원인 ‘금원’이 자리했다. 919년에 창건했고,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되기도 했으나 조선 건국 때까지 고려의 ‘정궁’(正宮)이었다. ‘공민왕릉’(〃 123호)은 드라마에서 정도전이 고려의 마지막 희망으로 보았던 공민왕의 사랑이 깃든 곳이다. 공민왕이 안장된 ‘현릉’과 왕비 노국대장공주의 무덤 ‘정릉’이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고려말 왕릉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조선 왕릉 제도의 기본이 되는 유적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정릉을 화려하게 꾸몄고, 자신의 ‘수릉’(壽陵·생전에 만들어 놓은 무덤)인 현릉도 만들었다. 일제 때 도굴당한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공민왕릉(사진)은 고려말 왕릉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조선 왕릉의 기본이 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고려말 개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정몽주였다. 드라마에서는 조연이지만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자 이성계, 정도전 등 조선 창업 세력의 가장 강력한 정적으로 당대의 개성을 주도했다. 정몽주가 죽은 장소인 ‘선죽교’(〃 159호)야 워낙에 유명하다. 조선 건국에 끝끝내 반대한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조선시대에 조성된 유적이 많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국가 정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태종대부터 조선은 망해가는 나라일망정 고려에 대한 충성을 꺾지 않았던 정몽주의 태도를 자신의 신하들에게 요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표충비’(〃 138호)는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영조 16년(1740), 고종 9년(1872)에 건립한 두 개의 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비석 모두 영조, 고종이 개성을 방문한 뒤 세웠다. ‘숭양서원’(〃 128호)은 선조 6년(1573) 정몽주와 서경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문충당’이 전신이다. 정몽주가 살았던 집터 위에 자리를 잡았다. 2년 뒤 ‘숭양’으로 사액을 받아 서원이 됐다. 흥선대원군의 사원철폐령을 피해갔을 만큼 유서가 깊은 곳이다.

개성역사유적지구를 구성하는 12개의 유적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목청전’(북한보존유적 528호)은 ‘사극 지존’ 유동근이 연기하는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살았던 집이다. 

선죽교(사진)와 표충비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학자인 정몽주와 관련된 유적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선죽교와 표충비(사진)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학자인 정몽주와 관련된 유적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남북한 문화재 교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통일 대박’의 토대로서 문화재는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지니지만 현실은 엄중하다. 북한의 문화재 보존 실태에 대한 걱정이 크고, 남한 역시 교류 협력을 위한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통일시대를 대비한 남북 간 문화재협력 학술회의’에서 연세대 하일식 교수가 발표한 글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난은 문화재 보존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했다. 하 교수는 “체제상의 특징으로 인하여 이른바 ‘단군릉’은 물론이거니와 동명왕릉이나 왕건릉도 조사 후에 원형을 보존하고 복원하기보다는 매우 현대적으로 정비해 우리 관점에서 아쉬움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왕건릉은 개성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된 유적이다. 대성산성, 평양성 등도 비슷한 문제를 보이는 사례로 꼽았다. 그는 이런 문제가 “전문 인력과 기술, 자재의 부족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며 “수년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은 비가 새고 있고, 수장고도 온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수납 창고 수준의 시설에 머물러 있었다”고 전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상준 고고연구실장은 안정적인 교류협력을 위한 남한 내 법·제도의 미비를 문제로 꼽았다. 이 실장은 “지난 10년간 남북공동조사는 민간, 종교, 공기업, 정부 등 다양한 추진 주체가 주도하였으나 상호간 별다른 협력 체계의 구축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분석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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