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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갈 길 먼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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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09 21:00:47 수정 : 2015-04-09 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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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북은 장기적이고 일관된 전략 외교인데 한국은 임기응변적
조선 시대 패러다임 탈피하지 않으면 위험
“미·중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윤병세 외교 장관의 말을 듣는 순간 TV 드라마 ‘징비록’의 김성일이 떠올랐다. 드라마는 김성일의 활약상을 크게 그렸다. 임진왜란의 기운이 무르익는 시기에 적진에 들어가 일본 측 태도를 거침없이 나무라고 체면을 세우는 그를 보며 통쾌해하는 국민이 많았을 것이다.

문제는 왜곡과 오판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왕 앞에서 호언장담하고, 적의 지도자에 대해 “눈이 쥐와 같고 생김새는 원숭이 같으니 두려울 것이 못 된다”고 깎아내렸다. 이로써 자신과 왕, 같은 정치세력 지도자들의 자존감을 크게 높였을지 모르나 대가는 참혹했다. 김성일은 전쟁이 터지자 왕에게 용서를 빌어 목숨을 구하는 듯했으나 종군하다가 1년 만에 병사했다. 백성은 전쟁의 참화와 기근 속에 태반이 죽었다. 조정에서 인육을 먹지 못하게 하는 금령까지 내려야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30년도 안 돼 국경의 북쪽 여진족이 강성해지면서 명이 급격히 쇠락해졌다. 이에 맞춰 조선도 변해야 했지만 안보정세의 급변을 보고도 ‘사대교린(事大交隣)’이라는 외교정책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 정묘호란은 이해할 수 있다. 주자학 세계에 빠져 도덕률로 세상을 보던 상황에서 갑자기 외교정책을 바꿀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9년 만에 병자호란을 ‘자초’한 것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참담하다. 백성들은 적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왕은 삼전도의 굴욕으로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라고 해서 다 조선 같지는 않다. 이스라엘이나 네덜란드는 우리보다 영토가 작다. 역시 적국과 강대국에 포위돼 있지만 우리와 다르다. 임진왜란에 앞서 벌어진 네덜란드의 처절한 독립 운동사를 읽다 보면 이 나라를 다시 보게 된다. 로마제국의 창검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저항했는지는 마사다 유적지를 둘러보면 된다. 두 나라 다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목숨을 내놓았다. 우리에겐 그런 장엄한 역사가 없다. 대의명분에만 매달려 큰소리 치고 자존심 세우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그들은 유학자의 체통을 잃는 것을 걱정하고 비분강개할 줄만 알았다.

외교의 목적이 뭔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이 점에서 조선의 외교는 빵점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대한민국의 외교는 백점인지 묻게 된다. 장기적인 플랜 속에 주도면밀하게 전략적으로 움직이면서 사안별로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원칙 없이 눈치와 임기응변으로 지탱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백영철 논설위원
주변국의 외교정책은 장기적이고 일관성이 있다. 중국 시진핑정부의 대국굴기 야심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30여년 전 덩샤오핑이 세운 지침에서 시작됐다. 그는 후계자들에게 은인자중하다가 힘이 미국과 맞설 정도가 되면 떨쳐 일어나라고 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용의주도하게 추진하는 것이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은 예견된 일이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이 중국의 핵심적인 국가 이익에 반한다고 본다. 압박과 간섭은 더 심해질 것이다.

일본도 중국의 일당독재 못지않다. 잠시 야당에 정권을 내준 적이 있지만 보수우파의 집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독도도발은 장기전략 차원에서 진행된다. 미국은 과거는 과거, 미래는 미래라며 일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내여론마저 우경화하고 있으니 일본의 독도도발은 날로 심해진다고 봐야 정상이다. 친미 정책도 갈수록 강화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악의 축인 북한은 어떤가. 비록 세계적으로 지탄받고 있지만 이제 핵보유국가로 인정받는 상황을 만들었다.

삼중사중의 파고가 덮치고 있다. 급변하는 주변의 정세변화를 아전인수식으로 보거나, 낡아빠진 조선시대식 외교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으면 백전백패할 것이다. 외교당국자의 호언장담이 위태로운 것은 그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허장성세가 느껴져서 더욱 그렇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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