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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경의 인더스토리] 진흙탕 롯데싸움에 묻힌 '흑진주'

입력 : 2015-08-12 17:30:35 수정 : 2015-08-12 17: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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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家) 친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호텔롯데 상장 및 지배구조 개선 계획 등을 발표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진흙탕 싸움에 묻혀버린 ‘흑진주’가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3세대 메모리 반도체칩 ‘256기가비트(Gb) V낸드’ 이야기입니다.

어제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기존 2세대(32단) 128기가비트(Gb) 낸드보다 용량을 2배나 향상시킨 ‘256기가비트 3차원 V낸드’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습니다. 세간의 이목이 대국민사과문을 읽어 내려가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입에 쏠렸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영화보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가 인기라지만, 요새 막장 드라마 시나리오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롯데가(家) 친형제간 경영권 분쟁사태는 그 전개과정이 예측불허 흥미진진합니다.
11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256기가비트(Gb) 3차원 V낸드’. 사진=삼성전자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기 침체로 교역량이 자꾸 줄어드는 등 수요가 위축되고, 여기에 중국 등 후발 공업국가와의 경쟁 심화까지 겹치면서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돌파구는 누가 뭐래도 ‘기술혁신’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출이 예전 같지 않고 순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낮아지고 있어 대안으로 내수를 키운다 해도 국내 서비스시장에 한계가 존재함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내·외수 균형성장론(論)은 과도한 수출 집중도를 내수로도 분산시키자는 주장입니다. 즉 수출이 경기를 주도하는 힘이 과거에 비해 떨어진 공백을 내수로 메우자는 논리이지, 수출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경제는 결국 수출중심일 수밖에 없는 까닭에, 기술자들을 소홀히 여기는 풍토에선 우리 경제에 미래가 없습니다.
삼성전자 3세대 256기가비트(Gb) V낸드. 사진=삼성전자

◆ 롯데사태에 묻혀버린 혁신기술…세계최초 ‘3세대 V낸드’ 생산

롯데 사태에 묻혀버린 혁신기술 ‘256기가비트 3차원 V낸드’에 대해 잠시 소개부터 할까 합니다. 이번 V낸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3차원 셀(Cell)’을 종전 32단보다 1.5배 더 쌓아 올리는 ‘3세대 48단 V낸드 기술’이 처음 적용됐습니다.

당연히 반도체 업계는 물론이고 전 세계 최고 용량의 메모리칩입니다. 이 칩 하나면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32기가바이트(GB) 용량의 메모리카드를 만들 수 있다니, 스마트폰 두께가 샤프심만큼 얇아질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현재 업계에서 유일하게 V낸드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2세대(32단) 3비트 V낸드를 선보인지 불과 1년 만에 ‘3세대 3비트 V낸드’ 본격 양산에 들어가 경쟁기업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기술혁신에 더해 공정혁신에도 성공, 기존 32단 양산 설비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제품 생산성을 무려 40% 높여 원가 경쟁력도 대폭 강화했습니다. 한마디로 훨씬 뛰어난 제품임에도 가격은 이전 제품보다 40%가량 낮출 수 있게 됐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테라바이트(TB) SSD 제품 출시를 계기로 ‘테라 SSD 대중화’를 선언한 상태입니다. 삼성전자는 2테라바이트 이상의 소비자용 대용량 SSD도 새롭게 출시해 SSD 시장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높여나간다는 계획입니다.

삼성전자의 전사매출총액 및 영업이익 모두에서 각각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주력사업부인 IT·모바일(IM) 부문이 내놓는 ‘갤럭시S 시리즈’ 인기가 예전만 못해도, 또 경영실적이 전성기 때 같지 않아도 나름 선전한다는 평가를 받는 데에는 반도체 사업부가 기복 없이 든든히 받혀주고 있는 측면이 큽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은 “글로벌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더욱 편리한 대용량 고효율 스토리지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며 “향후 초고속 프리미엄 SSD 시장에서 사업 영역을 계속 확장하며 독보적인 사업 위상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청와대에서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 오찬을 주재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참석자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오찬 인사말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경제계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박 대통령,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현 메세나협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전 메세나협회장). 사진=세계일보 DB

◆ 내수의 한계, 결국엔 수출…“기술자 박대해선 韓경제 미래 없다”

이 같은 성과에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뒤를 이을 그룹 ‘원톱’ 후계자로 옹립하려는 삼성물산과 후진적인 지배구조라며 이를 저지하려는 엘리엇이 팽팽하게 대립한 의결권 다툼이 ‘미드’(미국 드라마)나 미니시리즈보다 재미있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두 친아들이 벌이는 갈등은 아침 드라마보다 더 막장으로 치달아 욕하면서도 다음편이 너무 궁금해집니다.

1.0%에도 못 미치는 0%대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며 왕국을 통치하는 절대군주처럼 ‘황제경영’을 하는 재벌 오너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큽니다. 하물며 본인이 창업한 기업이 아닌, 아버지의 아들딸이란 이유로 회사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듯 착각하는 재벌 2·3세의 도를 넘은 ‘금 수저 입에 물고 태어난’ 갑(甲)질은 비판을 넘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재벌과 기술자는 구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장남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따가운 눈총이 삼성전자 기술진의 성과물을 애써 외면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삼성전자, 롯데그룹은 재벌일지 몰라도 그 곳에 소속된 일반직원들은 아이들 교육비에 집값 걱정하고 가계 빚에 쪼들리면서 바짝 다가오는 은퇴 후 노후생활에 시름하는 우리와 같은 소시민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 수출의 부가가치 유출률은 44.7%로, 미국·중국·독일·일본 등 4개국 평균인 23.1%보다 21.6%포인트 높아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수출의 부가가치 유출률이 44.7%라는 말은 1000달러어치 수출을 할 때 447달러가 국외로 이탈하고 나머지 553달러만 국내에 남겨진다는 의미입니다.

전체 수출액의 거의 절반 가까운 돈이 해외 로열티·개런티 명목으로 빠져나가고 라이선스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핵심 소재 및 부품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게 우리나라 수출의 현실입니다.

정부 발표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조업 혁신을 위해 꼭 필수적인 ‘첨단 뿌리기술’ 66개를 선정해 국내기업 중 어느 곳이 이를 보유하고 있는지를 조사했더니, 보유율 자체가 30%에 그쳤습니다. 필요한 뿌리기술 가운데 약 70%는 한국에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산업부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6대 뿌리산업’(주조·금형·소성가공·용접·표면처리·열처리)에 사용되는 첨단 뿌리기술 66개 중 국내기업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술은 단 19개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47개는 미보유 상태였습니다.

결론은 끊임없는 ‘기술개발’에 있습니다. 암울하기는 하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미국·독일·일본 등 기술선진국을 따라잡을 여지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희망적인 면도 있습니다. 시장을 선도하는 ‘와우 팩터’(Wow factor·사람을 흥분시키는 요소)를 갖춘 우리만의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등장하자마자 경쟁제품을 몰아내고 시장을 지배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아무리 절약하는 소비자라도 지갑을 열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자를 우대하고 그들이 잘한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다행히 정부가 산업계와 시장 중심의 연구개발(R&D) 지원 강화를 위해 산업현장 경험과 비즈니스 역량이 풍부한 민간 전문가를 프로그램 디렉터(PD)로 채용해 R&D 전면에 배치한다고 합니다.

PD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과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 R&D 전담 기관에서 R&D 기획-평가·관리-기술이전 및 사업화 등 R&D 전(全) 주기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전문가를 이릅니다. 앞으로 잘 운영되는지 국가경제를 위해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이 완료됨에 따라 지난달 24일 창조경제혁신센터장, 지원기업 대표 및 정부부처 관계자를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와 오찬을 함께 했다. 사진=청와대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현대·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두산, 한화 등 굳이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한국 수출기업은 재벌들입니다. 오해는 없길 바랍니다. 재벌을 칭찬하자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 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직원들의 애환을 살펴주자는 겁니다. 재벌 일가에 대한 반감이 자칫 최고기술경영자(CTO)를 비롯한 연구진을 재벌 오너의 하수인쯤으로 평가 절하하는 편견으로 변질돼서는 안 됩니다.

특히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개인적으로는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을 ‘재벌하기’ 좋은 환경과 혼동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창립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역사는 130년입니다. 코카콜라도 130년이 넘습니다. IBM은 100년 이상 된 회사입니다. 하지만 미국에는 1960년대 나이키, 1970~80년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 이어 아직까지도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거대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산업화의 역사가 200년이 다 돼가는 초고도 산업국가임에도 미국 경제가 여전히 2%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정도로 건강한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삼성·현대·LG·SK·롯데를 산산조각 분해해서 해체하자는 게 아닙니다. 늙어가는 삼성·현대·LG·SK·롯데를 긴장시키고 대체할 수 있는 젊은 선수를 키우자는 목소리에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할 것입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세계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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