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난 지금, 모뉴엘로부터 뇌물을 받고 보증을 서주거나 부당대출을 해준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와 한국수출입은행 전현직 임직원들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모뉴엘에 보증을 서준 무보와 그 보증을 바탕으로 모뉴엘에 대출을 해준 시중은행은 보험금 지급을 놓고 갈등을 겪다 결국 수천억원대 소송에 들어갔다.
한 중소기업의 사기행각으로 수출금융 지원주체 간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그 피해는 가뜩이나 엔저 공습과 중국 경기 둔화로 허덕이는 수출중소기업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모뉴엘 사건 직후 수출금융은 급격히 위축됐다. 무보가 모뉴엘 관련 보험금 3480억원의 지급을 거절하자 시중은행들이 무보 보증 대출을 줄였기 때문이다.
13일 각 은행에 따르면 신한은행을 제외한 주요 시중은행들은 모두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단기수출보험 수출채권유동화(EFF) 실적이 격감했다. 옛 외환은행은 2014년 1∼9월 8억5100만달러에서 올해 1∼9월 5억4400만달러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은 2억1200만달러에서 1억5400만달러로, 농협은행은 1억900만달러에서 2800만달러로 각각 줄었다. 수협은행은 올해 아예 실적이 없다.
모뉴엘로부터 대출금을 회수해 피해를 모면했던 우리은행이나 대출을 해주지 않았던 옛 하나은행도 대출 실적이 줄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모뉴엘 대출액이 가장 많았던 기업은행은 “많이 줄었다”고만 밝히고 액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신한은행만 같은 기간 3억900만달러에서 3억5700만달러로 대출이 늘었다. 전체 은행을 합하면 지난해 대비 20% 넘게 줄었다.
무보의 수출채권 보증은 수출기업이 계약에 따라 물품을 선적한 후 선적서류를 근거로 수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할 때 무보가 보증하는 제도다. 기업은 수출대금이 들어오기 전에 은행에 수출채권을 매각해 먼저 대금을 지급받고 이를 바로 공정에 투입해야 생산을 계속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이 수입자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수출보험이나 수출보증이다.
A은행 여신담당 부장은 “무보 보증서 관련 대출은 모뉴엘 사건 전에 (대출)한도를 잡아놓았거나 연장한 것이지 엄밀히 말해 신규 대출은 많지 않다”며 “무보와 보험금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EFF를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대신 신용대출 등 다른 방법을 권유해야 하는데 안전하지 않으니 취급실적이 줄고 중소기업에 일정 부분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은행 부행장은 “EFF의 바탕이 되는 오픈어카운트(OA) 거래는 수출자가 원본 BL(탁송화물증권)을 수입자에게 보내고 은행에는 사본만 제시해 양도대금을 받아가는, 그야말로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본래 대기업만 이용했다”며 “그런데 이명박정부 때 수출 1조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보가 OA를 중소기업까지 확대해 은행들에게 하자고 설득한 상품이 EFF였는데, 이제 와 ‘은행들이 제대로 확인을 안 했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무보는 “은행들이 서류심사를 부실하게 했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보 관계자는 “수출채권유동화 실적의 경우 지난해보다 20% 줄긴 했지만, 지난해 모뉴엘 실적을 빼면 순감소 비율은 6.8%이다”며 “올해 대기업의 수출 부진으로 전체 단기수출보험 지원규모가 9.3%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은행은 그동안 제2의 모뉴엘 사건을 막기 위해 각종 대책들을 쏟아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위원회·관세청 등 관계 부처는 지난 4월 100만달러 이상 수출계약에 한해 진위 확인을 의무화하고 수출 단기 급증기업은 특별 모니터링하는 내용을 담은 모뉴엘사건 재발방지책을 발표했다. 수출입은행은 폐지 논란 끝에 히든 챔피언 제도를 재정비했다. 히든 챔피언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 전문위원을 위촉하고, 연간 2회 현장방문 및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다면평가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모뉴엘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6월 모뉴엘과 판박이 수법으로 1500억원대의 사기대출 사건이 터졌다. 산자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올해만 해도 무보의 수출실적 위조기업에 대한 부실심사가 11건에 달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모뉴엘 사건은 정부가 실태도 모르고 사기기업을 수출역군으로 선정해 화끈하게 밀어주려다 사고가 난 사례로, 정부 주도 몰아주기식 지원의 문제를 적나라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은 무조건 기업에 퍼주는 게 아니라 우산을 뺏을 때는 뺏어야 한다. 망할 회사에 우산을 씌워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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