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상대방을 저주할 때 왜 그대의 이름을 들먹이는지 알 수가 없소. “바퀴벌레 같은 놈”이라고 말이오. 그대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질병을 퍼뜨리는 것도 아니잖소. 생김새도 그만하면 곤충 무리 가운데 이등 신랑감은 되지 않소. 그대를 향한 사람들의 이유 없는 분노를 정말 모르겠소. 굳이 다른 이들을 탓할 생각은 없소. 나도 어제 그대를 본 순간, 마음속에서 비상벨이 울렸으니까 말이오.
그대는 포용과 공생의 산 증인이기도 하오. 그대의 몸속에는 브랏타 박테리움이란 세균이 살고 있소. 예전에 과학자들이 무엄하게도 그대의 배를 갈라 이 세균의 게놈을 분석한 적이 있었소.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지요. 세균들이 그대 몸안의 배설물을 유익한 영양소로 변환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적조차 친구로 활용하는 그대의 지혜가 놀라울 뿐이오.
탄복할 일이 또 있소. 그대는 지구의 환경을 생각해 찌꺼기들을 거의 배설하지 않는다고 들었소. 몸속 세균을 활용해 요산을 아미노산으로 바꿔버리기 때문에 배설물 발생량이 확 주는 것이죠. 하루에 자기 몸의 몇배나 되는 폐기물을 쏟아내는 우리 인간과는 차원이 다르오. 그대는 3억년 전부터 지구상에 살아온 인간의 대선배요. 환경을 생각하는 그대의 미덕이 없었다면 그 긴 세월 동안 지구가 온전할 수 있었겠소.
그대의 모성애는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이오. 과학자들이 독일바퀴벌레 암컷들에게 살충제를 뿌렸소. 그 죽음의 고통 속에서 암컷들은 자신의 알집을 재빨리 몸 밖으로 떼어내었소. 독소가 알집에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지요. 자신은 죽을망정 새끼만은 살리겠다는 희생적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오. 그 알들이 나중에 부화해 알집에서 기어나왔다지요. 이런 강한 모성애가 수억년의 생명을 이어오게 만든 비결이 아니겠소.
그대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깨닫고 나니 차마 그대를 미워할 수 없소. 나는 그대를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소. 처음엔 당황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나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소. 그대는 내 손바닥과 옷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소. 앞발로 옷의 단추를 톡톡 건드리고, 뒹굴며 재롱을 떨기도 했소. 그대의 모습이 참 귀엽게 느껴졌소.
그러나, 나는 그대와 헤어지기로 결심했소. 그대와 나는 사는 곳이 다르니 어쩌겠소. 그대를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그대에게 구속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오. 나는 휴지로 그대의 몸뚱이를 조심스럽게 감싼 뒤 사무실 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갔소. 그대를 화단 곁에 내려주고 눈으로 작별인사를 건넸소.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대와의 인연을 감사히 생각하오. 그대가 전해준 삶의 지혜를 소중히 간직하겠소. 잘 가시구려, 나의 바퀴벌레여!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대와의 인연을 감사히 생각하오. 그대가 전해준 삶의 지혜를 소중히 간직하겠소. 잘 가시구려, 나의 바퀴벌레여!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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