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작가 허수영(32)의 고백이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레지던시 , 인천, 청주, 광주로 이사를 다녔다. 잦은 이동은 낯선 곳에 도착하고 정들고 떠나고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보니 머무는 곳에서, 머무는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그에게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작업실 주변 풍경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기억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추억은 흐릿하고 애매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날마다 무언가를 화면에 누적시키는 것은 기억들을 기록하는 과정이다. 그러기에 매일매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리려한다. 하지만 계절들이 겹쳐지면서 이미지는 점점 복잡해진다. 그림의 표면도 거칠어져 처음처럼 세밀하게 그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연속된 재현들은 점점 표현적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결과, 공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중첩된 풍경과 서로 다른 시간들이 혼재된 순간이 펼쳐진다.
“기억들이 모여 추억이 되듯이, 재현들이 모여 표현이 되듯이, 정지된 공간의 순간들을 모아 흐르는 시간의 모호한 무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회화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플리니우스는 회화의 탄생을 ‘그림자’와 연관했다. 어느 여인이 먼 길을 떠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벽에 세워놓고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그린 것이 최초라는 것이다. 이태리 건축가 알베르티는 꽃으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진 나르시스가 회화의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 자리에서 굶어 죽었다는 이여기가 있다. 이렇게 물에 비친 모습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회화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원본이 아닌 재현된 이미지를 위해 죽어야 했던 이 이야기는 회화의 위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영국 작가 그룹 yBa(young British artists)는 회화를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 회화 그룹 라이프치히 학파 등은 회화의 본연적인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두며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충격적인 주제로 경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대상의 ‘순수함’ 그 자체를 강조한다. 회화 본질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그들 스스로를 아티스트가 아닌 페인터, 즉 화가로 표현한다.
하루 중 그림 그리는 일 이외의 다른 일을 딱히 하지 않는다는 그에게서 정통회화의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편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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