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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생명 이어갈 것인가 소멸될 것인가

입력 : 2017-07-21 20:52:42 수정 : 2017-07-21 20: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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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위대” “더 심오한 형태될 것” / 상투적 선전·구호 등 체제에 대한 권태 만연 / 美, 이라크·아프간서 불운한 민주화 실험 / 이슬람권 “미국 이익에 봉사” 빈정대기도 / 20세기 초반 심각한 후퇴… 소멸 고비 넘겨 / 21세기 새롭게 '파수꾼 민주주의' 체제로 / 저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원론적 물음 / 세계서 부침 거듭한 민주주의 체제 점검
존 킨 지음/양현수 옮김/교양인/3만9000원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존 킨 지음/양현수 옮김/교양인/3만9000원

영국의 경제 전문지 ‘더 이코노미스트’의 ‘2016년도 민주주의 보고서’는 의외 결과를 내놓았다. 일개 잡지 보고서에 왠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언론 매체다. 가볍게 여길 게 아니라는 것이다. 167개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분석해 발표한 이 잡지는 한국에 7.92점을 매기면서 ‘불완전한 민주주의’로 지목했다. 최근 공개된 한국정당학회 학술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민주주의 성숙도’ 질문에 62.6%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현대 민주주의 전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미국 국회의사당에선 현재 상하원 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엇나간 행동 때문에 탄핵할지 여부를 논의 중이다.
더 가디언지 제공
현대판 명예혁명이라는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폄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성숙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이는 곧 ‘민주주의는 보편적으로 가치있는 이상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물음으로 이어진다.

호주 출신 세계적인 정치학자 존 킨은 이 책을 통해 향후 민주주의가 생명을 이어갈 것인지, 소멸될 정치체제인지를 검증해본다.

직접 민주주의를 처음 실험했다는 그리스 아테네 신전
지금 세계는 민주주의 권태가 만연해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교과서적 해석들은 거의 설득력이 없어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전파한 앵글로색슨 등 몇몇 민족은 위대하다. 역사는 민주주의 편이었다”는 식의 이런저런 선전은 상투적이며 진부하다. 미래엔 좀 더 고차원적이고, 좀 더 순수하며, 좀 더 심오한 민주주의 형태가 생겨난다는 구호 역시 도그마에 불과하다.

영국의 소설가 E M 포스터(1879~1970)는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에 두 번의 갈채를 보낸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가 다양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민주주의가 비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두 번의 갈채로 충분하다. 세 번째 갈채를 보낼 이유는 없다.” 

저자는 1950년에서 1990년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224개 정권에 대한 연구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그 224개 가운데 101개는 민주주의 체제였다. 엄격한 잣대로 101개를 골랐다. 이들 체제는 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그런 종류의 선거를 시행하는 체제다. 분석 결과,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는 그다지 밀접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나라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촉진’ 노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치학자 로티는 “악마의 놀이터에서 진행되는 폭력적인 파워 게임과 깊은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비꼬았다. 이를 테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불운한 민주화 실험 등을 꼽을 수 있다. 민주적으로 뽑힌 아프간 국회의원들은 지방 무력 집단의 두목, 마약 거래자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동할 때면 늘 무장 경호원들이 자동차 행렬 앞뒤에 따라붙는다.

레바논 드루즈파의 지도자인 왈리드 줌블라트(1949~)는 민주주의를 ‘북대서양 가치’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줌블라트는 조지 W 부시를 ‘미치광이 황제’라고 했다. 토니 블레어에게는 ‘섹스콤플렉스가 있는 공작새’라고 비난했다. 빈정대는 투로 민주주의를 “제국주의적 통치이며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고도 했다.

3권 분립주의자인 몽테스키외는 “민주주의 체제의 권력 분립이란 ‘자유가 불러오는 효과’일 뿐”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권력 분립은 오스만 제국, 유럽의 중세 봉건 질서, 중국 청나라의 전통적인 특징이었다. 이 체제들은 집중된 권력임에도 분립 요소들을 다수 지니고 있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예찬한 토크빌은 19세기 미국 사회의 불평등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처럼 복합적인 양상으로 발전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볼티모어의 현자(Sage of Baltimore)’라 불렸던 미국의 풍자 작가 멩켄은 민주주의를 오르가슴에 의한 정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에도, 저자는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표현들은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만족감을 과대평가한 것이며, 민주주의는 절대로 완전한 행복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20세기 전반기에 심각한 후퇴가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사라질 위기에서 다시 살아났다”면서 “20세기 말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전 세계적인 정치 언어가 되었다”고 풀이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의 민주주의 시대는 저물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 저자는 새롭게 떠오른 민주주의의 형태를 ‘파수꾼 민주주의’라고 칭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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