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편완식이 만난 사람] 무의식·몽상의 세계 통해… 진정한 ‘리얼리티’ 찾다

관련이슈 편완식이 만난 사람

입력 : 2017-08-28 21:10:07 수정 : 2017-08-28 21:10:0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초현실주의 작업으로 주목받는 다발킴 작가 사막의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려 본다. 이내 바람이 불어와 지워버린다. 그 속에 살던 동물들의 사체도 그렇게 덮여 간다. 인간의 기억과 의식도 이처럼 스러져 갈 것이다. 하지만 지워지고 덮어지는 것들은 인간 내면 깊은 곳 어느 곳에 위치할 것이다. 끝없는 사막 같은 미지의 내면은 조금씩 우리에게 얼굴을 내밀 뿐이다. 몽상적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다발킴(본명 김지영· 42) 작가는 사막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피어난 식물들을 채집하여 의상을 제작하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초현실주의 풍경 그 자체였다.
자기 감정을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는 도구로 몽상을 주목하고 있는 다발킴 작가. 그는 “공상영화의 현실화 에서 보듯 몽상 또는 공상이 실현가능성 없는 헛된 생 각이라는 편견을 깨야 한다”며 “공상이야말로 인간 존 재능력의 실체에 다가서는 길이다”고 말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이나 꿈 등 추상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몸을 미학의 핵심으로 삼았다. 화가들은 몸과 영혼의 전통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환상과 꿈이 투영된 존재로 표현한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몸과 외부세계의 합일을 표현하거나 조각난 몸 이미지를 통해 몸 내부가 감추고 있는 신비를 드러냈다. 인간과 세상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그는 초현실주의 이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현실은 조작된 일상들이거나 과거의 낡은 관념체계에 의해 왜곡된다. 논리와 합리, 이성 등 인위적인 요소로 구속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이를 초월해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서 진정한 리얼리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몽상은 그 중심에 있다.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몽상이다.”

그는 스스로 몽상가이기를 자처한다. 그러면서 오래된 물건을 채집하고, 꿈 풀이를 하기도 하고, 모든 일상의 기록을 모으는 수집가이기도 하다.

“개인의 이야기와 시간이 서려 있는 물건들에 애착을 갖는다. 그림일기와 같은 의식의 단편들을 상징적인 메타포로 재현하기도 하고, 재조합하여 입체물을 만들거나 설계도 형식으로 그냥 남기기도 한다.”

그는 의식의 파편들과 일상의 파편들을 수집하거나 채집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회상, 몽상, 꿈, 기억, 향수 등을 엮어낸다. 패션은 이것들을 입을 뿐이다. 자연스레 한 개인의 개인적인 일상, 혹은 그것이 확대된 특성 등이 캐릭터로, 감성으로 전해진다.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구한 식물로 만든 의상을 입고 있는 다발킴 작가.

“2009년 9월 국제사막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여 7명의 예술가와 몽골 고비사막에서 체류한 적이 있다. 사막에서 발견한 동물 뼈들을 채집하여 그 위에 사막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드로잉에 담았다. 고비사막에서 사용한 밥그릇과 숟가락에 자연의 물질을 담아 제의의식 같은 설치작업도 했다. 그릇에는 말똥, 모래, 마른 나뭇가지와 동물 뼈, 식수를 떠놓았다. 2012년 인도사막에서 작업도 인간의식 형성과정의 여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숭배의 양식, 생계의 방식 등 인간의 유목적 사유를 채집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켜켜이 쌓인 인간의식을 드로잉 단상으로 하나하나 드러낸다. 동물을 살찌우기 위해 초원을 헤매는 목동처럼 의식의 초원을 내달린다.

“생각이 생각을 부르고, 친숙한 것인데 생소하고 엉뚱한 배열과 관계를 이룬다. 모든 것을 컬렉션한다. 꿈에서 보았던 늘 이방인의 모습으로 던져진 나 자신과 그 주변의 것들까지도 박제한다. 그것을 다시금 만져보고 느껴보고 싶을 때를 대비하고자, 해부하고 박제하는 일이 나의 작업에 일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오래된 것, 흔적, 시간의 나침판이 뒤로 돌아간 오랜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꾸며낸 허상을 미래의 돌연변이처럼 각색한다. 알 수 없는 과학적 명칭들, 식물적 동물적 변이를 실험하고 기록한 고고학이나 자연과학을 연구한 드로잉들처럼, 난 이것을 나만의 잠재된(혹은 이상한) 정물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의 누군가에 의해 분류되고, 체계가 세워진 필수목록의 것들을 처절한 나의 방식으로 다시 해체시킨다.”

그의 궁극의 목표는 의식을 포함한 인간 실체의 전부에 다다르는 것이다.

“나는 논리와 설명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을 그린다. 나의 작업들은 불완전한 객체로 이어져 있지만, 창출된 캐릭터 소설처럼 몽상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내러티브적 메커니즘의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의 드로잉이라는 것은 상징과 메타포가 가득한 실재와 신화, 현상과 환상의 경계에서 부단히 방황하는 가운데 지금 현실 밖으로 밀려나와 덩그러니 서 있는 모양새라 할 수 있다.”

그는 초현실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예술양식으로 팝아트, 추상표현주의 등에 영향을 주었으며 패션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초현실주의 패션은 1930년대에 엘자 스키아파렐리에 의해 탄생한 후 현대 패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많은 디자이너에 의해 재현되었다. 눈속임 기법, 위치전환 기법, 오브제 기법, 콜라주 기법 등으로 환상성, 유희성, 자유성, 전위성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인간 원형을 찾아가는 길라잡이로 삼고 있는 패션작품.

다발킴은 잊히고 잠재된 것들을 화려하게 소환해 내려고 한다. 패션이 그 전위에 있다.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라는 프로이트의 전언을 상기시킨다.

“잠재된 것은 곧 억압된 것이다. 잠재된 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억압된 것이 잠재적인 지층으로 잠수한 것. 그렇다면 그 억압의 계기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관건이다. 이 억압의 계기는 개인과 제도와의 관계로부터 생겨나는데, 거칠게 말하자면 욕망을 실현하려는 개인과 그 욕망을 통제하려는 제도의 기획이 서로 부닥치는 것. 이렇게 해서 잠재의식으로, 무의식으로 숨어들게 된 것이 야성, 야생, 본성 등 하나같이 반제도적이고 반문명적인 기질들이며 성향들이다. 그리고 이 욕망과 더불어 그 욕망을 표현하고 표출하게 해주는 언어형식도 함께 억압된다. 말하자면 몸말 같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사고 같은, 자연언어 같은, 그리고 상상력 같은 것이 사라졌다.”

그의 작업은 이런 망실된 언어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이다. 인간 원형의 모습이자 언어들이다. 초현실주의자들도 그랬다.

“나는 호주 사막에도 갔다. 인공의 흔적이 적은 장소일수록 신화가 깃들어 있듯이 나에겐 유일한 영감으로 자극된다.”

그는 2003년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직접 제작한 디지털 영상작품과 의상을 입고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타 장르의 표현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면회화에서 펼쳐지는 스토리를 부드럽지만 매혹적인 입체로 표현하는 계기가 됐다. 그로테스크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동물 이미지와 블랙 잉크의 복잡하고 세밀한 선들이 환상의 짝꿍이 됐다.”

다발킴은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프랫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정혜성 '심쿵 눈빛'
  • 정혜성 '심쿵 눈빛'
  • 르세라핌 홍은채 '여신 미소'
  • 르세라핌 허윤진 '매력적인 눈빛'
  • 김혜수 '천사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