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카테우라재활용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처음 방문한 지휘자 겸 단장인 파비오 차베스(41)는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든 악기가 빚는 하모니에 담고 싶은 메시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지난 16일 서울 은평구 서울창의인성교육센터에서 ‘카테우라재활용오케스트라’의 단장 파비오 차베스가 오케스트라 창단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서재민 기자 |
지난 16일 서울 은평구 서울창의인성교육센터에서 만난 차베스는 “겉으로 봐서는 쓰레기로 만든 악기지만 일반 악기와 소리 차이는 거의 없다”며 “재활용 악기 덕분에 아이들과 카테우라의 미래가 바뀌었다”고 자랑했다.
카테우라재활용오케스트라는 파라과이 최대의 쓰레기 매립지인 카테우라의 청소년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이다. 이들은 버려진 쓰레기를 재활용한 악기를 연주하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 10명의 단원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는 바티칸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등 세계 40여개국에서 연주했고, 메탈리카·스티비 원더·U2 등 유명 뮤지션들과 협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16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열리는 ‘제4회 서울국제생활예술오케스트라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15일 한국에 도착했다. 17일 개막 공연에 이어 18일 오후 7시 광화문 KT스퀘어에서 공연을 펼친다.
오케스트라는 차베스가 열었던 작은 음악교실에서 시작됐다. 대학에서 철학과 환경공학을 전공한 차베스는 2006년 카테우라에서 자원 재활용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쓰레기 매립지에 다니면서 자원 재활용 방안을 모색하던 차베스는 생계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쓰레기를 주워 파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가난 때문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마약이나 범죄에 빠지기 쉬운 빈민촌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며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면 삶의 다른 의미를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음악교실을 열었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빌린 악기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하지만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아이들을 데리고 음악을 가르치느냐”는 부모들의 반대와 악기를 노리는 절도범 때문에 음악교실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차베스는 “절도 위험도 없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보관할 수 있는 악기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 쓰레기 매립지에 뒹구는 캔과 쓰레기를 보고 재활용 악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쓰레기로 만든 악기를 사용한 덕분에 도난과 악기 조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지난 16일 서울 은평구 서울창의인성교육센터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단원들과 파비오 차베스씨. 서재민 기자 |
카테우라재활용오케스트라는 2015년 개봉한 영화 ‘랜드필 하모니’를 계기로 세계에 알려졌다. 랜드필 하모니는 카테우라의 청소년들이 음악을 배우면서 만든 변화의 모습과 그들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세상은 우리에게 쓰레기를 줬지만 우리는 음악으로 돌려줬다.” 차베스가 11년 전 카테우라에 음악으로 뿌린 희망의 씨앗은 쓰레기를 음악으로 바꿔 ‘희망’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오케스트라의 성공을 덕분에 공립 ‘카테우라음악학교’가 문을 열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후원금과 연주회 수익금으로 운영하는 음악학교의 학비는 전액 무료다. 300여명의 학생이 음악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장학금도 지급한다. 재활용 악기를 연주하면서 환경보호를 위한 자원 재활용의 필요성도 환기하면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도 제공한 것이다.
카테우라재활용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인 아다 리오스(19·여)는 내년에 파라과이 국립음대에 진학한다.
11년간의 음악 여정에 대해 차베스는 “음악이 선물한 기적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펼쳐졌다”며 “아이들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꿈을 찾고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연주한 우리의 소리가 한국 청중의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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