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온도가 섭씨 35도를 오르내린 지난 8월 8일 오전 8시가 채 안 된 시각 충남 부여군 옥산면 J리 노인회관 앞 폭 5∼6m 도로. 마을 주민 너댓명이 소형 트럭으로 대전에서 온 장의차를 가로막은 채 통행료를 내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지난 8월 8일 오전 9시쯤 충남 부여군 옥산면 J리 마을입구 노인회관 앞. 주민들이 폭 5~6m의 좁은 도로를 막아놓은 1 t트럭 때문에 장의차량들이 꼼짝없이 서 있다. 방모 씨 유족 제공 |
이 마을 이장 A씨는 이에 앞서 이날 오전 7시쯤 도착, 매장용 묘지 굴착을 준비하던 포크레인 기사에게 달려가 작업을 중단시키고 노인회관 앞으로 내려왔다.
이 장의차에는 같은 달 6일 별세한 방모(90·여·대전시 서구)씨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고인의 둘째 딸 이모(56·여·서울 서대문구)씨 등 유족들은 어머니의 시신을 10여년 전에 사둔 야산에 매장하기 위해 이 운구차로 모셔왔다.
이씨는 “대전에서 장의차에 타고 오면서 장례를 도운 장의업체 직원과 통화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통행료 300만원을 안 내면 장의버스가 마을 옆 길을 통과할 수 없다며 도로를 막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설마했는데 마을 입구에 있는 J리 노인회관 앞에 도착하니 1t트럭이 좁은 도로를 차단한 채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우리 쪽에서 ‘세상에 이번 법이 어디 있나. 마을 옆에 묘소를 쓰는 것도 아니고, 1.5㎞나 떨어진 마을에서 보이지도 않는 산 속에 묘지를 조성하는 데 … 절대 돈을 못 준다’고 했더니, 마을 사람들이 ‘300만원이 안 되면 마음대로 해라. 이젠 500만원 안 내면 절대 통과 못 시킨다’며 되레 액수를 올리고 화를 더욱 내 기가 찼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시간이 가도 길을 터 줄 기미가 없어 우리 쪽에서 하는 수없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찜통더위 때문에 어머니의 시신이 상할까 걱정한 5남매는 차 안에서 즉석 유족회의를 한 결과 경찰이 오면 양쪽 다 조서를 받아야 하고 잘못되면 장례가 하염없이 늦어질 수 있으니 금액을 최대한 낮춰서 합의를 보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하고 맏상주인 오빠가 나서서 350만원에 합의를 본 뒤, 급히 경찰에 다시 전화를 걸어 ‘오지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방모(90·대전시 서구)씨 유족들이 옥산면 J리 마을주민들에게 건넨 350만원이 적혀 있는 통행료 영수증. 면사무소 회의 때문에 급히 자리를 뜬 이장 대신 마을주민이 사인을 했다. 유족 제공 |
유족들은 현금 350만원을 준 뒤 영수증을 받고 이날 오전 9시 16분이 넘어서야 마을에서 1.5㎞ 이상 떨어진 장지로 출발할 수 있었다.
유족들이 이날 뒤늦게 묘소를 파고 시신 안장, 봉분 만들기 등 모든 절차를 끝낸 시각은 기온이 펄펄 끓는 오후 3시쯤. 애초 종료시각이 낮 12시쯤이었는데, 한여름 뙤약볕 아래 무려 3시간 정도나 늦어진 것이다.
이씨는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서울로 돌아온 뒤 너무나 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진정서를 냈다.
그는 진정서에서 “우리도 처음엔 이해가 안 됐지만 나중엔 100만원까지는 줄 용의가 있다고 했는데, 오히려 500만원으로 올리더라”며 “이건 마을 발전을 위한 ‘선의의 통행세’가 아니라 명백한 갈취행위이고 장례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등 범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자신의 1t 트럭으로 장의차를 가로막은 이장 Y씨는 “내가 ‘여긴 마을법(장의차 통행세를 내야하는 것을 지칭)이 그렇다’며 포크레인 기사에게 묘지 굴착작업을 중단시킨 뒤 마을회관으로 내려갔었다”며 “돈은 강요는 안 했다. 주겠다고 해서 받은 것 뿐이다. 유족들이 반발한다니 떨떠름하다”고 말했다.
이장은 이어 “마을 옆 300m 이내에 묘지를 쓸 수 없도록 한 장사법이 개정된 10여년 전부터 우리는 300m 이내엔 어떤 경우도 묘지를 못쓰게 하고 있고, 300m를 넘는 경우엔 마을 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통행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개인묘지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5조에 20가구 이상의 인가 밀집지역 등으로부터 300m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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