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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나를 가두니, 자유가 왔다… 1.5평 독방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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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01 19:26:05 수정 : 2018-01-03 14: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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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첫날 ‘독방 새해맞이 행사’ 찾은 사람들 / 약 1.5평 남짓한 독방서 하루 보내 / 누구의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 곳서 각자의 자유·행복이 무엇인지 생각 / 갇히기 전 모여 반성의 시간 등 갖고 멍때리기·낙서 등 원하는 시간 보내 / “세상에 빗장 거니 되레 묘한 해방감” 2017년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의 행복공장 수련원에 25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사단법인 행복공장이 마련한 ‘독방 새해맞이’ 행사에서다. 2009년 설립된 이 단체는 외국인 노동자, 소년범 등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 사업 및 성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다.

이날 행사에는 가족, 친구와 함께 온 이들이 있었고, 혼자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오후 7시 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감금했다. 4.96㎡(약 1.5평) 남짓한 독방에서 이튿날 오전 5시까지 혼자가 된 것이다. “누구의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지난달 31∼1일 진행된 사단법인 행복공장의 ‘독방 새해맞이’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독방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행복공장 제공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자신과 마주하길 원했던 이들은 이같이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와 희망과 덕담을 나누며 맞는 새해의 첫날, 이들은 잠시나마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참가자들은 스스로를 독방에 가두기에 앞서 함께 모여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보다 뒤처질까봐 두려워했던 마음, 이유없이 상대방을 미워했던 마음, 일에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 등 각자의 고민과 근심을 담은 ‘걱정인형’을 만들고 새해에 기대하는 바를 소원종이에 적어 처마 밑에 달았다. 마음을 다잡자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학점을 잘 받게 해달라는 구체적인 소망까지 다양한 바람들을 공유했다.

6년 전 탈북해 남한으로 건너 온 한진범(22)씨는 “학업스트레스와 진로에 대한 고민 등으로 불안했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왔다”며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인 고민을 털어놓았다.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병원을 개업했다는 한의사 박상천(35)씨는 “2017년은 병원 개업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한 해였다”며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휴식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 참가하게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최연소 참가자인 지준성(7)군의 소원은 “아이언 맨이 되고 싶다”는 것. 아이의 해맑은 소원에 모두들 웃음보를 터뜨렸다.

참가자들은 샤워를 하거나 간식을 먹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준비를 끝내고 독방에 들어갔다. 작은 앉은뱅이 책상과 커튼으로 가려진 화장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작은 방에 홀로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글귀를 적어놓은 액자가 전부였다.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그곳에서 이들은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은 ‘멍 때리기’를 하거나 명상을 했고 방 안에 미리 준비된 색연필과 공책에 이리저리 낙서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 사람도 있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는 구현정(32)씨는 “지난해에는 유난히 행사가 많아 몸이 열개라도 부족했다”며 “방 안에서 미리 가져온 ‘자존감 수업’ 등 심리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였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권용석(54) 행복공장 이사장은 “욕망을 좇고 욕망들이 충돌하는 이 세상이 어쩌면 전쟁터이고 감옥일 수 있다. 오히려 세상에 빗장을 걸고 1.5평 독방에 들어와 앉으면 묘한 해방감과 평화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2018년 1월1일의 새벽, 참가자들은 함께 홍천의 남산에 올라 첫 해돋이를 눈에 담았다.

홍천=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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