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격적인 참가 선언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은 역사적인 ‘평화 올림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대북 선제타격 추진 등으로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준비를 위한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으로 극적인 남북한 해빙 모드가 조성되고 있다. 이 때문에 평창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에서 국제정치가 스포츠 경기를 압도하는 또 한 번의 기록을 남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올림픽과 국제정치의 관계를 살펴봤다.
한반도기를 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보라 선수(왼쪽)와 북한 피겨스케이팅 대표 한정인 선수(오른쪽) 등 남북 대표단이 2006년 2월11일 제20회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공동 입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평창올림픽에서는 겨울 스포츠의 세계 최강자들이 불꽃 튀는 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관심은 월드스타의 스포츠 경연보다는 남북한이 펼치는 숨막히는 외교전에 집중돼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중단되는 천금의 기회를 한반도 평화의 결정적인 전기로 만들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남북한의 올림픽 외교가 한반도 위기 극복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가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대응 과정에서 모처럼 운전석에 앉은 문재인정부의 운전 실력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평창 이후’ 정세를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CNN방송은 최근 “올림픽 외교로 한반도 위기를 넘길 수도 있다”는 낙관론을 소개했다. CNN은 “올림픽과 현대 정치는 서로 얽혀 있게 마련이고, 특정 국가의 대회 참가로 긴장이 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키로 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된 게 사실이고, 미국은 비록 일시적이라 해도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다른 옵션을 검토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게 됐다고 방송은 강조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을 통해 열린 대북 대화채널을 이용해 미국과 대화에 나서도록 북한을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손상해서는 안 되고, 전통적인 한·미 공조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러나 “코리아의 올림픽 타협은 바보가 받는 금메달에 불과하다”고 미국 일각의 비관론을 전했다. 남북한 선수단 공동 입장이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및 북한의 예술단·응원단 파견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통해 노리는 것은 한·미의 이간질이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전선 와해이기 때문에 올림픽 이후 한반도에 더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평창올림픽 이후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북한의 보복공격으로 이어지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근대올림픽은 1896년 시작됐으나 여성은 1924년에야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그해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여성의 출전 허용 여부를 놓고 찬반 투표를 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터키 등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 투표를 통해 여성 선수의 출전이 공식적으로 허용됐으나 1992년 올림픽까지 여성 선수를 내보내지 않은 국가가 34개국에 이르렀다.
IOC는 2012년 여성의 차별 없는 올림픽 참가 권한 보장을 위해 이슬람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IOC는 사우디가 여성 선수의 출전을 계속 불허하면 남성 선수의 출전도 허가하지 않겠다고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사우디는 IOC의 협박에 굴복해 2012년 처음으로 여성 선수 4명을 올림픽에 출전하도록 허가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여전히 국내 스포츠 행사에 여성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올림픽 보이콧은 특정 국가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유용한 카드로 활용됐다. 지금까지 1936년, 1956년, 1976년, 1980년, 1984년, 1988년 올림픽 등 모두 6번에 걸쳐 정치적 이슈를 내세운 올림픽 보이콧이 있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주최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선수단을 아리안 민족 출신으로만 구성하는 등 올림픽을 나치의 이념 선전장으로 이용했다. 스페인은 베를린올림픽을 보이콧한 뒤 ‘대체 올림픽’을 주최하려다가 실패했다. 북아일랜드도 베를린올림픽을 보이콧했다. 미국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대를 이유로 베를린올림픽 보이콧 입장을 밝혔다가 나중에 참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는 세 가지 이유로 보이콧이 있었다. 네덜란드·스페인·스웨덴 등은 옛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는 뜻으로, 이집트·레바논·이라크는 수에즈운하 위기를 이유로 출전을 거부했으며 중국은 대만의 참가를 이유로 불참했다. 중국은 대만의 올림픽 참가 문제로 32년간 IOC와 싸우다가 1984년 올림픽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옛소련이 올림픽 참가 문제로 대립했다. 러시아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주최했을 당시에는 옛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미국 등 62개국이 불참했다. 미국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을 주최했을 때에는 러시아가 보이콧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북한이 공동 주최를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보이콧했고, 에티오피아와 쿠바도 가세했다.
◆스포츠를 통한 정치장벽 제거
스포츠는 적대 국가 상대의 장벽을 허무는 첨병 역할도 했다. 197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대회에서 미국의 10대 선수였던 글렌 코완은 미국팀의 버스를 놓쳐 중국 선수팀 버스를 탔다. 이것이 계기가 돼 마오쩌둥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탁구대표팀을 중국으로 초청해 친선 게임을 갖도록 함으로써 ‘핑퐁 외교’가 전개됐다. 이듬해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미국과 중국은 1979년 국교 관계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이란은 정치적 앙숙이다. 그러나 양국은 레슬링을 통해 스포츠 분야에서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레슬링 대표팀은 1998년 처음으로 이란에서 열린 국제레슬링대회에 참가했고, 이란 레슬링대표단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열린 대회에 16번 출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등 이슬람국가 국민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자 지난해 초 이란은 자국에서 열린 레슬링대회에 참가하려는 미국 선수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자 이란도 미국 선수에 대한 비자 발급을 재개했다.
럭비는 흑인 인종차별로 유명했던 남아공에서 흑·백 갈등을 해소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흑인은 백인 스포츠인 럭비를 싫어했으나 흑인민권운동가 출신의 넬슨 만델라 당시 대통령이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월드컵 럭비 대회에 참석해 백인 럭비 스타였던 프랑수아 피에나르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이에 피에나르가 만델라를 극찬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남아공 흑·백 갈등이 수그러드는 결정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세계는 이제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는 여자 아이스하키가 한반도 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시하고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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