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7일 경기도 수원의 한 병원. 60대 여성과 40대 남성이 나란히 쓰러진 채 발견됐다. 둘은 어머니 A씨(66)와 아들 B(41)씨였다. 3살 때 중증 자폐 판정을 받은 아들을 40년 가까이 홀로 돌봐 온 A씨가 아들을 먼저 살해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것이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자식의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던 모정
2일 법원과 검찰, 가족 등에 따르면, 아들 B씨는 3세 때 자폐 판정을 받은 뒤 기초적 수준의 의사소통만가능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상태에서 폭력성향이 심해졌다.
20세가 될 무렵에는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B씨는 난폭한 성향으로 퇴원을 권유받거나 입원 연장을 거부당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20여년간 정신병원 10여 곳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마지막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에도 잦은 소란을 피워 강제로 퇴원하게 됐다. A씨는 퇴원 전날까지도 다른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이웃들도 꺼려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악화하는 아들의 상태와 마땅히 받아줄 병원도 없는 데 대한 낙담과 자신의 기력이 쇠해 더는 간호가 불가능하리란 절망감에 벼랑 끝에 몰리자 아들과 자신의 삶을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다. 퇴원 전날에도 아들이 계속 크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등 소란을 피우자 간호사에게 진정제 투약을 요청해 잠재웠다. 이어 이튿날 새벽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하곤 본인도
신경안정제를 과다복용하고 살아남을까 봐 자해까지 한 후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곧 발견돼 목숨을 건졌지만 그는 살인 피의자로 체포됐다. A씨는 검찰 조사 단계에서 “내가 먼저 죽으면 지금은 결혼해 따로 살고 있는 딸이 내 고통을 넘겨받게 될 것 같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처한 법원, “국가의 책임도 크다”
살인혐의로 기소된 그에게 법원은 선처를 했다. 수원지법 형사15부(송승용 부장판사)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것. 재판부는 “피고인은 거의 40년 동안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양육하면서 헌신적으로 보살펴 부모의 의무를 다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스스로 자식을 살해했다는 기억과 그에 대한 죄책감이 어떤 형벌보다 무거운 형벌이라 볼 여지도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이번 사건의 책임이 오롯이 피고인에게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법률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각종 규정을 두고 있으나, 이 사건 기록상 (국가나 지자체의) 충분한 보호나 지원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런 사정이 피고인의 극단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점을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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