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동해 영토수호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독도방어훈련이 전격적으로 실시되면서 한·일 갈등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한 데 이어 독도방어훈련 카드를 꺼내 일본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일본은 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양국 관계는 더욱 경색될 가능성이 높다.
◆시기·규모 저울질하다 전격 돌입… 역대급 규모
군은 이번 훈련에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7600t)과 기뢰부설함 원산함, 한국형구축함(KD-1) 광개토대왕함 등을 포함한 해군·해경 함정 10여척을 투입했다. 해군 특수전부대(UDT)와 해병대 신속기동부대, 육군 특수전사령부 요원들도 울릉도와 독도에서 가상 적대세력의 상륙을 저지하는 훈련을 했다. 공군 F-15K 전투기와 육군 CH-47 수송헬기, 해군 UH-60 수송헬기도 참가했다. 이번 훈련은 세종대왕함이 처음으로 참가하는 등 예년보다 2배 가까이 규모가 커졌다.
이번 훈련은 당초 이달 중순쯤 실시될 예정이었다. 예년보다 큰 규모로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동해 기상이 악화되고, 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훈련(11∼20일)이 실시되면서 연기됐다. 군 관계자는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능력을 검증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훈련이었다”며 “연합훈련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독도방어훈련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훈련이 연기되면서 군 안팎에서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28일부터 시행되는 상황을 감안해 훈련을 추석 전인 다음달 초로 미룰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본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훈련 시기와 규모를 저울질한 뒤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던 대목이다.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한 22일을 전후로 국방부 주변에서도 훈련 시기가 늦춰지고 참가 전력도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후 곧바로 대규모 훈련 실시를 결정하고 훈련 시기를 당초 예상보다 앞당기면서 규모를 확대했다.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훈련이라 준비에 오랜 시일이 소요되지는 않지만, 병력과 장비의 전개를 준비할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다. 독도방어훈련을 이례적인 수준으로 진행한다는 기존 방침을 예전부터 유지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소미아에 이은 대일 압박 카드
군의 이 같은 기조는 독도 수호 의지를 대외에 과시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일본은 경제보복을 감행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는 동해상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해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달 발생한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대일 조치의 일환으로 훈련이 진행됐다는 관측에 대해 “이번 동해 영토수호훈련은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기 위한 정례적 훈련”이라며 “일본 한 나라를 생각해 두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이어 단행된 독도방어훈련은 일본을 압박하는 카드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맞서 정부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안보 분야였다. 북한 핵과 미사일 관련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수집한 정보를 공유할 필요성이 있었던 일본 입장에서 지소미아 종료는 한반도에 대한 정보공백 위험을 높인다. 미국과의 연대 강화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고 해도 공백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소미아 종료는 일본에 상당한 압박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독도방어훈련도 일본이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에서 영토 수호 의지를 과시하는 훈련을 진행하여 일본의 억지 주장을 무력화하고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부각하는 효과가 있다.
일본 육상자위대는 이날 시즈오카현 고텐바시 히가시후지 연습장에서 ‘후지종합화력연습’을 실시했다. 35t의 실탄이 사용된 이번 연습에는 자위대원 2400명과 전차·장갑차 80대, 대포 60문, 항공기 20대가 동원됐다.
박수찬·김달중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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