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현대인들은 자신이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성향이나 기질적인 문제도 있지만, 치열한 경쟁과 사회불평등, 불공정한 시스템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은 개인의 정신건강도 병들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불안과 분노를 가슴에 쌓아두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들이 우울증과 무기력증, 공황장애, 분노조절 장애와 같은 다양한 유형의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누구도 정신적 질환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은 한국사회에서 일종의 낙인과 다름 없다. 보이지 않는 차별과 멸시의 시선이 존재하고, 기피하는 태도 역시 강하다.
당연히 누구에게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거나, 치료받기도 어렵다.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관리하고, 예방하는 것은 우리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만 하는 중요 과제지만, 그런 환경이 조성되기까진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10명 중 8명은 내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현대인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삶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고, 다양한 심리적 고통 및 증상을 앓고 있는 등 현대인의 정신건강 상태가 상당히 우려되는 수준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먼저 전체 응답자의 76.4%가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14년 66.5%→16년 71%→19년 76.4%)는 사실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은 남성(71.2%)보다는 여성(81.6%)이 더 많이 하고 있었으며, 연령별로는 30대가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태도(20대 74.8%, 30대 80.4%, 40대 72.4%, 50대 78%)가 가장 뚜렷했다.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원인 '경제적 문제'…'본인의 능력' '인간 관계' 원인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아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적 문제에서 기인하고 있었다. 본인의 경제적 문제(39%, 중복응답)와 집안의 경제적 문제(33.9%) 때문에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능력은 삶의 여유를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지만, 많은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남성은 자신의 경제적 문제(남성 48.9%, 여성 30.4%)에서, 여성은 집안의 경제적 문제(남성 26.1%, 여성 40.7%)에서 불행의 원인을 더 많이 찾고 있었다.
본인의 능력(27.7%)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특히 청년세대가 개인의 능력(20대 35.3%, 30대 30.3%, 40대 26%, 50대 19.5%)에 대한 자책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타인과의 관계(17.7%)와 배우자와의 관계(17.1%), 가족과의 관계(14.7%) 등 주변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의 단절 및 불화 역시 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꼽혔다.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만큼 ‘삶의 행복지수’도 당연히 낮게 평가되었다. 현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는지를 측정해본 결과, 한국사회의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63.7점에 불과했을 뿐이다.
지난 조사와 비교했을 때 행복지수(14년 64.6점→16년 65.3점→19년 63.7점)는 더 낮아진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병들어가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의 모습은 성별(남성 63.7점, 여성 63.7점)과 연령(20대 64.4점, 30대 61.7점, 40대 63.8점, 50대 65점)과 관계없이 비슷했다.
다만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미혼 60점, 무자녀 기혼자 64.7점, 유자녀 기혼자 67.7점)와 혼자 살고 있고(1인 가구 58.1점, 2인 가구 65점, 3인 가구 62.7점, 4인 이상 가구 65.7점), 직업이 없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무직/취준생 51.3점, 자영업자 56.3점, 직장인 64.8점, 교사/공무원 72.6점) 사람들이 행복과 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평소 불행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만큼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이 좋을 리도 만무했다. 개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자가 평가한 결과, 한국사회의 ‘정신건강지수’는 평균 68.1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장년층보다 청년세대의 정신건강 상태(20대 66.7점, 30대 64.5점, 40대 69.7점, 50대 71.5점)가 좋지 않은 점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앞서 살펴본 행복지수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의 정신건강지수(14년 68.7점→16년 70.6점→19년 68.1점) 역시 예전에 비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는 모습으로, 그만큼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정신건강’에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실제 최근 들어 다양한 유형의 심리적 고통 및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신건강의 관리와 치료가 매우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현재 자신이 정신적 고통 및 심리적 증상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무기력증(29.8%, 중복응답)으로, 특히 여성(남성 25.2%, 여성 34.4%)과 20대 젊은 층(20대 34.8%, 30대 28.8%, 40대 24.8%, 50대 30.8%)이 많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증상이었다.
수면장애(24.9%)와 불안증세(19.9%), 우울증(15.1%)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타인이 나를 이유 없이 비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13.9%), 이유 없이 타인을 비난하는(11.1%) ‘대인 예민성’ 증상을 겪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신체화(12.7%)와 공황장애(12%), 적대감(9.6%), ADHD(8.7%), 강박증(7.6%)을 겪고 있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전반적으로 여성과 젊은 층이 다양한 종류의 심리적 고통 및 증상에 더욱 많이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반면 현재 겪고 있는 정신질환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3명 중 1명(33%)에 불과했다.
정신적 고통 및 심리적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은 그리 뾰족해 보이지는 않았다. 증상에 관계없이 대부분 ‘충분한 휴식’과 ‘운동’, ‘취미활동’을 통해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증상을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었으며, 무기력증과 우울증, 대인 예민성, 신체화 증상을 겪고 있는 경우에는 ‘타인과의 대화’도 많이 시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전문의로부터 치료나 상담을 받거나, 약을 복용하는 등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드물었다.
다만 현재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10명 중 6명(57.9%)은 향후 본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을 의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코 행복하지 않은 한국사회…'삶의 행복지수' 100점 만점에 평균 63.7점
이렇게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질환과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지나친 경쟁(57%, 중복응답)을 꼽았다.
치열한 경쟁으로 생겨나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고 바라보는 것으로, 여성(남성 52.2%, 여성 61.8%)과 20대 젊은 층(20대 63.2%, 30대 56.8%, 40대 52.4%, 50대 55.6%), 대학(원)생(74.6%)이 한국사회의 지나친 경쟁구조를 보다 많이 지적했다.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44.7%)과 양극화 현상에 의한 불평등(28.1%)이 현대인의 정신질환에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많았으며, 불공정하고(27.7%), 개인화된(26.1%) 사회적 분위기도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많이 꼽았다. 반면 정신건강관리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17.4%), 나약하다(17.3%)며, 개인 차원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적은 편이었다.
그만큼 현대인의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사회구조적’ 원인 때문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실제 전체 응답자의 65.7%가 최근 심리적 고통이나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사회적인 책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제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증상은 개인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유하는 사회적인 문제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선 성인 10명 중 7명(69.9%)이 최근 들어 주변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데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가장 대표적 증상인 우울증의 경우 전체 응답자의 73.7%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증상이라고 받아들일 정도였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인식은 여성(남성 66.4%, 여성 81%) 및 30대(20대 73.6%, 30대 80.4%, 40대 71.6%, 50대 69.2%)에서 가장 뚜렷한 편으로, 그만큼 이들이 일상적으로 우울함을 많이 느끼며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이렇게 주변에서 정신적 질환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큼 예전에 비해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증상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시각도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65%),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80.7%)는 생각을 내비친 것이다.
요즘은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이 누그러진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63.3%)도 많았다. 반면 정신건강 문제는 되도록 숨겨야만 한다(13.1%)는 생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심리적 고통이나 문제를 겪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창피할 것 같고(16년 61.5%→19년 36.1%), 가족이 심리적 고통이나 문제를 겪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창피할 것 같다(16년 47.4%→19년 27.4%)는 생각도 예전보다 훨씬 덜 하고 있었다.
심리적 고통이나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16년 40.6%→19년 33.4%)는 응답이 줄어든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절반 이상 "한국사회에선 정신질환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아남기 어려워"
이렇게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개개인의 인식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이왕이면 ‘마음의 병’을 숨겨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우리사회는 심리적 고통이나 증상을 겪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고(77%),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사회에서는 불이익을 보기 십상이라고(75.9%) 바라볼만큼 한국사회에서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낙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절반 이상(54.8%)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바라볼 정도였다.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56.2%)는 인식도 상당했다.
실제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사례가 많이 보도되면서, 모든 조현병 환자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쉽게 공포와 불안감을 찾아볼 수가 있는 요즘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는 사회적인 태도가 아직도 강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치료와 상담을 받는 것이 어렵다는데 존재한다.
전체 75.1%가 공감하는 것처럼 한국사회에서는 정신과 방문 등 진료이력에 대한 공포감이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F코드’라고 불리는 정신과 진료이력의 공개 및 공유에 대한 불안감은 특히 남성(67%)보다는 여성(83.2%)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76.8%)은 만약 자신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병원에 가 볼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 그런 상황이 찾아왔을 때 스스럼없이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현대인의 정신건강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결국 현대인의 정신건강 문제를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전체 응답자의 82.4%가 정신질환은 개인적인 문제이기보다 사회적으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느꼈으며, 건강검진과 같이 국가가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정신건강 검진’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이 84.2%에 달했다.
이처럼 정신건강 문제에 있어서 사회와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별다른 이견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개인차원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10명 중 9명(88.4%)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바라보는 것으로, 성별(남성 86.2%, 여성 90.6%)과 연령(20대 85.6%, 30대 87.6%, 40대 87.6%, 50대 92.8%)에 관계없이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10명 중 6명(60.9%)이 힘들어도 남에게는 애써 밝은 척을 하는 편이었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45.3%)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젊은 층일수록 힘든 일이 있어도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보이려고 하고(20대 66.4%, 30대 63.2%, 40대 54%, 50대 60%), 정신질환을 주변에 알릴 생각(20대 38%, 30대 46.4%, 40대 50%, 50대 46.8%)은 하지 못하는 태도가 강한 모습이었다.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정신적 질환 및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방안으로는 심리적 문제와 관련한 인식 개선 활동(45.5%, 중복응답)을 주로 많이 꼽았다.
우리사회가 정신질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 차별적인 시선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증상을 진료하고 상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42.4%)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특히 젊은 세대가 심리적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20대 47.6%, 30대 48.8%, 40대 40.4%, 50대 45.2%)과 심리상담에 필요한 비용의 지원(20대 47.2%, 30대 45.6%, 40대 42.8%, 50대 34%)을 많이 요구했다.
그 밖에 상담프로그램의 확대(33.4%)와 상담심리센터의 확대(31.4%), 심리적 문제를 예방하는 프로그램의 개설(30.7%), 치유 전문인력 및 심리상담사의 양성(24.1%)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한편 온라인에 자살유발정보를 유통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자살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이 7월1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살동반자 모집, 구체적인 자살 방법, 자살 실행·유도를 담은 문서·사진·동영상, 자살 위해물건의 판매·활용 정보, 그 밖의 명백한 자살 유발 목적 정보를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서 유통해서는 안 된다. 유통하다 적발되면 2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정부는 사각지대에 있는 해외사이트에서 자살유발정보가 유통되는 경우에도 해당 정보의 삭제 및 접속차단조치를 통해 유통과 확산을 막을 방침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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