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파리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한국의 노력을 강조했다. 환경단체들은 ‘국제적으로 기후악당으로 혹평받는 현실을 외면한 자화자찬이자 정책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발언’이라고 혹평했다.
아니나 다를까. 2주 뒤인 지난 7일 발표된 2017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가장 많은 7억900만t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허가받은 신규 석탄화력 발전소와 반도체·철강업계의 호황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정말 우리는 파리협정에 따라 착실히 감축 로드맵을 시행하고 있는 모범국가일까.
지난달 23∼24일 유엔총회 기간 문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물음표가 붙는 부분을 골라 자세히 뜯어봤다.
#“한국은 파리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기후행동정상회의 기조연설)
2015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195개국이 채택한 파리협정은 내년부터 교토의정서의 뒤를 이을 새로운 기후체제를 말한다. 금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도 이내로 억제하는 게 목표다.
지구의 기온은 이미 1도가량 올랐고, 2030~2052년에는 상승폭이 1.5도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전국 단위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석탄화력발전소 4기를 감축했고, 2022년까지 6기를 더 감축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전국 단위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한 첫 동아시아국가라는 건 사실이다. 2015년부터 배출권이 거래되기 시작해 올해로 5년차를 맞았다.
안준관 로앤컨설팅 상무이사는 “1만2000개 기업이 참여하는 유럽연합(EU)과 비교하면 우리는 약 600개 업체가 참여해 규모면에서 훨씬 작고, 아직 안정적인 시장은 아니다”라면서도 “(조세저항이 심한) 탄소세보다는 배출권거래제가 우리 현실에는 더 적합하기에 도입된 것”이라고 전했다.
석탄화력발전소 4기를 줄였고, 2022년까지 6기를 더 감축할 것이란 발언도 맞다. 그렇다고 발전소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폐지되는 양만큼 다시 새로 지어지고 있어서다. 내년에 1기,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3기가 늘어 문재인정부 첫해인 2017년과 마지막해인 2022년 가동될 석탄화력발전소는 61기로 똑같다. 특히 2017년에 석탄발전소가 6기나 늘어난 탓에 그해 온실가스 배출이 6년 만에 최대 증가율을 보였다.
7일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는 전년보다 2.4% 많은 7억900만t을 배출했다. 첫 7억t 돌파다. 2018년 전망은 더 나쁘다.
한 정부 관계자는 “2017년에 늘어난 발전소는 주로 하반기에 가동됐기 때문에 온실가스 증가분이 절반만 반영됐다”며 “2018년에는 1년치가 모두 반영되기 때문에 꽤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7억2000만t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2014년 정부는 ‘202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2020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2017년 우리는 6억1430만t을 배출했어야 한다. 결과는 목표보다 15%나 더 많은 탄소를 내뿜은 셈이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으로는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기본계획)과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목표)가 있다. 2030 목표가 파리협정에 따라 국제사회에 제출해야 하는 ‘대외용’이라면, 기본계획은 외국에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내수용’이다. 2030 목표에 앞서 발표된 2020 로드맵도 사실상 내수용이었다.
그래서일까. 기본계획과 2020 로드맵은 검증체계가 없이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헛구호에 그쳤다.
정부는 조만간 제2차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런 부분이 보완됐을지 주목된다.
#“지속가능발전법,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국제개발협력 기본법과 같은 관련법을 제정하고,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두어 제도적으로 이행 중입니다”(유엔총회 기조연설)
유엔은 2015년 17개 분야에 걸쳐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수립했다. 유엔이 정한 지속가능발전 목표는 빈곤, 보건, 일자리, 성 평등 등 경제·사회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17개 목표 가운데 전통적인 ‘환경’에 해당하는 건 에너지 보급, 기후변화 대응, 육상 생태계 보호·이용 등 5개 정도다.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보면 ‘정신건강을 증진하고, 약물오남용을 예방한다’, ‘모든 아동에게 양질의 보육·교육 서비스 이용기회를 보장한다’, ‘동일한 가치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지급한다’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이런 목표의 컨트롤타워가 환경부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2000년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해 사무국 직원만 30∼40명에 달했는데 2000년대 후반 사무관 1명, 주무관 1명으로 구성된 ‘계’ 단위로 쪼그라들었다. 이번 정부 들어 지속가능전략담당관으로 조금 커졌지만, 여전히 환경부 소속이다.
한 관계자는 “왜 환경부가 국공립유치원 이용률, 공공병상수까지 총괄하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사실”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도 타 부처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 보니 아직 목표가 설정되지 않은 지표도 많다”고 했다.
이렇게 된 데는 뒤엉킨 우리 법체계가 있다.
지속가능 발전 계획 수립의 근거가 되는 지속가능발전법은 원래 기본법이었다. 기본법은 보통 기본계획을 세우고, 대통령 소속의 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이 담긴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녹색성장’이 캐치프레이즈였던 이명박 정부 들어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지속가능발전법은 환경부 일반법으로 지위가 격하됐다. 사회 전 분야의 지속가능을 진두지휘할 지속가능발전위원회도 이때 환경부 산하로 내려왔다. 거대 담론 성격의 지속가능발전은 환경부 업무가 되고, 지속가능발전의 한 분야인 저탄소 녹색성장은 대통령이 지휘하는 기형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이후 지속된 문제 제기에 박근혜정부 때 녹색성장위원회가 국무총리 소속으로 변경됐을 뿐이다.
그동안 법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국민 서명운동(빅애스크)도 진행되고 개정안도 몇 번 발의됐지만, 제대로 진행된 것은 없다. 지난달에도 김학용 의원이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동안 발의된 개정안들은 소위원회 심의 테이블에도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특히 녹색성장기본법은 정치적인 이유로 등장했으나, 그런 탓에 여야 모두 구태여 건드리고 싶지 않은 법이 됐다.
송옥주 의원실에서 한국환경공단으로 자리를 옮긴 이정환 전문위원은 보좌관으로 있을 때 기후변화와 지속가능발전 관련 법안 작성에 관여했다. 그는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나 한국 청년 등 미래세대는 현세대의 무책임한 형태를 비판하고 나섰다”며 “하지만 우리 국회가 기후변화나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담론에 대해 무관심해 관련 입법이 더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칠레, 에티오피아도 한다는 2050 탄소 제로. 우리는요?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는 중요하지만 빠진 내용도 있다. 2050 장기 비전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8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2050년 저탄소 사회 전환을 위한 국민토론회’에서 조명래 장관의 발언이 인상적이다.(조 장관도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 다녀왔다)
조 장관은 “이번에 77개국 정상이 2050년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를 발표하는 걸 보고 자괴감이 들었다”며 “넷제로 선언은 영국 등 유럽 일부 국가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 했다. 실제 유엔이 정상회의 후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2050 넷제로를 선언한 나라는 65개국(당초 77개국으로 발표했다 수정)에 이른다. 덴마크, 핀란드, 독일, 영국 같은 전통적인 ‘기후 우등생’ 국가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칠레, 코스타리카, 에티오피아, 스페인, 우루과이 등도 가담했다. 전 세계 10개 주와 102개 도시도 2050 넷제로를 약속했거나 선언할 계획이다.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미국에서도 3개 주, 21개 도시가 여기 참여한다. 우리나라는 서울시가 내년 C40(세계도시기후 정상회의)에 넷제로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온실가스 제로 사회로의 전환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지만, 정부는 현재 수립 중인 2050 비전의 당연한 목표가 아닌 하나의 검토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며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인식 수준과 대응 의지가 얼마나 미흡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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