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일본 도쿄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음식을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보는데 계속 한국 관련 뉴스가 나왔다. 이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구속전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한국에서는 포토라인에 선 정 교수를 모자이크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오갔던 때다. 정 교수가 공인인지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해 다수의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 내보냈다.
그런데 같은 시간 일본의 한 민영방송에서는 정 교수 얼굴을 버젓이 드러냈다. 이것 외에도 조 전 장관 일가, 문재인 대통령, 방일 중이던 이낙연 국무총리 관련 보도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한국에 있는 것인지 일본에 온 것인지 아리송했다. 특히 조 전 장관 일가 의혹 관련 보도는 국제정치 성격이 아닌데 일본 언론이 끊임없이 다루는 것이 의아했다. 일본에 오래 거주한 한 교민에게 물어보니 “북한 관련 보도가 많았는데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한국 관련 부정적인 보도가 극에 달한다”고 혀를 찼다. 일부 인터넷 방송에서 ‘혐한’을 불러일으키는 극성 콘텐츠가 있다곤 들었는데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보도를 예상외로 자주 다루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론에서 한국 뉴스를 얼마나 많이 다루는지 일부 일본 대학생은 검찰 개혁 등을 둘러싼 진보·보수 진영 거리 집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이 총리가 일본 게이오대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한 일본 여학생이 “서울에서는 다양한 관점의 대규모 집회가 있다는데 (한국에) 살고 있는 분들의 관심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일본 언론에서는 자국 정치 뉴스보다 한국 뉴스를 더 많이 다루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아베 정부의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 조치 이후 한·일 양국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외교 마찰이 불매 운동으로까지 번지면서 양국 민간 차원에서도 갈등이 이어지는 형태다. 일본에 오래 거주한 한국인 지인은 “텔레비전만 채널을 돌릴 때마다 한국을 비판하는 뉴스가 자주 보여서 그런지 일본 초등학생들까지 한국인을 보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한다”며 씁쓸한 현실을 전했다. 양국 간 갈등 문제는 조기에 해결하지 못한 외교당국의 무능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지만, 대중에게 나쁜 인상을 박히게 한 언론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혹시나 내가 쓴 기사 중에 독자들에게 ‘혐일’을 부채질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됐다.
한국과 일본은 1500년 우호 협력의 역사를 지닌 이웃이다. 언론 입장에서는 ‘시시비비’를 논해야겠지만 혐오를 조장할 정도의 선동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아무리 시청률이 높아지고 온라인상에서 클릭 수가 더 잘 나온다고 해서 도를 넘는 뉴스는 서로에게 백해무익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나 갈등을 풀고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나온 만큼 ‘혐한’과 ‘혐일’을 유발하는 기사 양산은 자제해야 한다.
최형창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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