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암리에는 우뚝 솟은 굴뚝이 있다. 우리나라 근대 산업화와 비철금속산업의 상징이었던 옛 장항제련소가 남긴 흔적이다. 1936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광물 수탈을 위해 세워진 이래 1989년 가동을 멈추기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구리와 납, 주석, 금, 은 등을 생산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여기서 생산된 금속은 산업현장 곳곳으로 실려 나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끄는 초석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광석을 옮기는 과정에서 잘게 부서진 가루들이 대기 중으로 날아가 주변에 쌓였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굴뚝을 통해 배출돼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켰다. 농작물이 말라 죽고, 양식장의 김에서 갯병이 발생하는 등 농수산물에도 피해가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2009년부터 토양 정화 사업에 들어갔다. 제련소로부터 반경 4㎞ 이내 토양을 세척해 납, 비소 등 중금속을 제거하고, 토양 정화가 어려운 숲은 오염 저감 사업을 시행했다. 10년간 3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내년에 사업 완료를 앞두고 있다.
이곳의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인 토양은 인간의 경제활동이나 개발행위로 쉽게 훼손될 수 있다. 복원에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다. 치유비용 또한 막대한 점을 감안하면 토양이 오염되지 않도록 예방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는 1996년부터 토양환경보전법을 시행하며 토양오염의 사전예방을 포함한 종합적인 토양환경관리 정책을 추진해 왔다. 주유소 및 유해화학물질 저장시설 등에 대한 신고제를 도입하고, 주기적 오염검사와 누출방지시설 설치를 의무화해 유류와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토양오염을 예방하고 있다. 산업단지, 폐광산 등 토양오염 우려가 높은 지역에 대한 조사와 정화도 추진 중이다. 또한 10년마다 토양 보전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전국에서 토양오염 실태 파악을 위한 측정망을 설치·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노력만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오염원과 개발 현장으로부터 우리 삶의 터전인 토양을 지켜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엔이 매년 12월 5일을 ‘세계 토양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태계 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인 토양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 없이는 사라지고 훼손되는 토양을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2015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5초마다 축구장 하나 면적의 토양이 무리한 경작, 무분별한 도시화, 산업활동 등으로 인해 침식되고 있고, 이대로 가면 2050년까지 지구 토양의 90%가 질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막고 토양을 살리는 것은 토양을 삶의 근거지로 삼는 인류가 나설 때 가능하다.
미국의 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는 인간이 땅을 상품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남용한다며, 땅을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 볼 때 사랑과 존중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2019년 ‘세계 토양의 날’ 주제인 ‘생명을 품은 토양, 건강한 우리 미래’와 같이 우리 모두가 토양에 관심을 갖고 토양을 보전하려는 작은 실천을 시작하자. 옛 장항제련소의 교훈을 상기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세계 토양의 날’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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