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과 강남권 고가 주택을 촘촘한 규제로 옭아매고 추가 대책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이를 비켜 간 지역에서의 ‘풍선효과’가 확산하고 있다. 일부 부유층의 고가 주택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오히려 서민이 거주하는 아파트값을 띄우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값 동향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은 0.4% 올라 1주일 전 0.07%보다 상승률이 떨어졌고, 이는 지난해 12·16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4주 연속 둔화세다.
정부가 추가 대책의 ‘제1 타깃’으로 공공연히 꼽고 있는 강남권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서초구의 아파트값이 30주 만에 상승세를 멈췄고, 강남·송파구도 0.1%를 기록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단지에서는 수억원 이상 싼 매물도 출현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전용면적 76㎡는 거래가 끊기면서 호가가 2억원가량 떨어져 19억∼20억원대에 나와 있다.
문제는 비규제 지역이다. 경기도 수원 팔달·영통구, 용인 기흥·수지구 등으로 실수요·투자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급등한 것이다. 우선 경기도 전체 지역이 0.18%로 지난주(0.14%)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대책 발표 이후 하락과 보합을 보이던 과천의 아파트값은 0.13% 상승했고, 광명도 0.39%로 1주일 전(0.31%)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특히 수원 팔달구는 지난주 0.43%에서 금주 1.02%로 상승폭이 2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 지역은 최근 신분당선 예비타당성 통과, 인덕원선 신설 등 교통 호재와 재개발 사업 추진 등으로 최근 집값이 가파른 상승세다. 용인도 지하철 3호선 연장, 리모델링 사업 등의 영향으로 수지가 0.59%, 기흥은 0.66% 오르며 지난주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업계에서는 이들 지역의 집값 상승이 단시일 내의 ‘반짝 상승’이 아니라는 점을 더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서울 강남4구 아파트값은 18.38% 뛰었는데, 성남시 분당구(20.57%)나 과천시(25.80%)처럼 상승폭이 훨씬 큰 지역이나 광명(17.67%), 구리시(15.52%) 등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 수도권 곳곳에 포진했다. 정부가 ‘강남 때리기’에 ‘올인’하는 사이 그 틈을 비집는 유동성의 흐름과 상대적으로 청약가점이 낮거나 자금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층의 수요가 계속됐다는 뜻이다.
실제 이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지난해 서울 25개 자치구와 세종, 경기 과천·광명·하남·성남시 분당구 등 31개 투기과열지구에서 제출된 아파트 입주계획서 20만122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10대 중 68%가, 20대 중 54%가, 또 전체의 36%가 실거주가 아닌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값 거래에서도 규제가 덜한 곳으로 수요자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의 전체 아파트 거래 가운데 9억원 이하 비중은 79%였는데 1월 들어 현재까지는 87%로 늘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개발 호재가 많거나 전매 규제가 짧아 환금성이 좋은 지역 아파트 등으로의 부동자금이 고이는 현상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비규제 지역 집값이 오르고 수요가 몰리는 ‘갭메우기’, ‘키맞추기’현상이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날 청와대발(發) ‘주택거래허가제’ 발언의 여진도 계속되고 있다. 박선호 국토부 제1차관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주택거래허가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재확인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라디오 방송에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의 주택거래허가제 관련 발언은 “강 수석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청와대 내에서는) 공식적 논의 단위는 물론 사적인 간담회에서도 검토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택 관련 단체의 관계자는 “국정 최고위층에서 실현 가능성도 없고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은 대책을 언급해 논란만 키우는 행태는 정부가 바라는 시장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남이 문제라면 강남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 주택거래허가제와 같은 반시장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며 극단적인 대책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9억 주택 보유자 전세대출 못받아… ‘갭투자’ 원천봉쇄
시가 9억원이 넘는 고가주택을 가진 사람은 오는 20일부터 전세대출을 아예 받을 수 없다. 전세대출을 받은 이가 고가주택을 매입하거나 다주택자가 돼도 전세금을 토해내야 한다. 전세대출을 지렛대 삼은 ‘갭투자’를 원천차단하기 위해서다.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 정부 부처는 이런 내용을 담은 전세대출 규제 세부 시행방안을 16일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정부가 지난해 12월16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중 전세대출 관련 후속조치다. 고가주택 보유자는 오는 20일부터 사적보증인 SGI서울보증에서 전세대출보증을 받지 못한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0·1 대책에서 공적보증인 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에 적용해 온 규제를 사적보증으로 확대한 것이다.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으려면 위 세 기관 중 한 곳의 보증을 받아야 해서 고가주택 보유자는 전세대출을 받을 길이 전면 차단된 셈이다. 금융위는 “고가주택에는 전세대출을 활용한 갭투자를 일으킬 소지가 없도록 하는 것이 이 규제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전세대출 차단은 20일 이후 대출 신청부터 해당한다. 20일 이전에 전세계약 체결 사실을 증명하면 예외로 인정된다. 9억원 초과 고가주택 판단 여부는 KB 시세나 감정원 시세 중 높은 가격을 적용한다.
20일 전에 SGI전세대출보증을 이용 중인 고가주택 보유자는 같은 집에서 증액 없이 전세를 연장할 경우 대출보증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하거나 전세대출을 늘리면 신규 대출로 여겨져 만기 연장이 안 된다. 다만 20일 기준시가 9억원 초과 15억원 이하 1주택자가 전셋집을 옮기면서 증액 없이 대출을 재이용하는 경우 4월20일까지 1회에 한해 SGI보증을 이용할 수 있다. 시가 15억원 초과 초고가주택 보유자는 유예조치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 이직 교육 등 실수요로 살던 시·군에서 벗어나 전셋집을 얻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전세보증을 허용한다. 서울 양천구에서 강남구로 옮기는 식으로 서울·광역시 내에서의 이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20일 이후부터는 전세대출 보증을 받은 후 고가주택을 매입하거나 다주택자가 되면 전세대출이 회수된다. 매입·증여가 아닌 상속으로 다주택자가 될 경우는 회수 대상이 아니다. 전세대출이 회수된 이는 향후 3년간 주택 관련 대출 이용이 제한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서울에 집을 하나 갖고 있는데 다른 구에 전세를 얻는 경우를 보면 학교 문제가 많다”며 “(이번 대책은) 학군 수요를 잡기 위해 실시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나기천·송은아·이희진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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