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자주국방’을 뒷받침하고자 시작된 국내 방위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 수요를 충족하는 수준을 넘어서 세계 각국에 국산 장비를 판매하는 상황이다. 방산수출이 꾸준히 이뤄지면서 국산 무기 성능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고가의 첨단장비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원천 기술 확보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 무기수출 증가율 세계 1위
시프리(SIPRI: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최근 공개한 ‘2019년 세계 무기 이전 경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무기수출 증가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이 세계 무기수출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2010∼2014년 0.9%에 불과했으나 2015∼2019년에는 2.1%로 급상승해 이탈리아와 함께 공동 9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한국의 무기수출은 143% 늘어나 상위 10개국 중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과거에는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수출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광범위한 수출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2010~2014년에는 7개국에 무기를 판매했으나 2015~2019년에는 수출국이 17개로 늘어났다. 무기수출 대상국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국가들이 전체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은 24%, 중동은 17%로 나타났다.
판매 품목에 대한 부가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탄약이나 군복류가 많았으나 현재는 중화기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는 국산 중화기로는 한화디펜스가 생산하는 K-9 자주포가 꼽힌다. 1999년 우리 군에 전력화된 K-9은 최대 40㎞ 떨어진 지상 표적을 타격할 수 있어 세계 정상급 자주포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군은 북한군 포병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1200여문을 운용중이다.
독일이나 영국 자주포보다 훨씬 많은 수량이 실전배치된 덕분에 대당 단가와 운영유지비가 타국 자주포보다 저렴하다. 성능과 가격경쟁력을 모두 갖춘 셈이다. 현재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인도, 터키, 폴란드 등에 수출됐으며 추가 판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드는 T-50 고등훈련기는 필리핀, 태국, 이라크,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됐다. T-50의 경공격형인 FA-50은 필리핀에서 이슬람 반군 진압에 투입돼 성능을 입증했다. KT-1 초등훈련기도 세네갈, 인도네시아, 페루 등에 수출됐다.
해군 함정들도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1년 대우조선해양에서 만든 1400t급 잠수함 3척을 도입했으며, 지난해 3척을 추가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필리핀은 2016년 현대중공업에 2600t급 호위함 2척을 발주했다. 필리핀은 군용차량과 방탄 헬멧, 총기류 등을 대거 도입했으며, 2200억원 규모의 경전차 조달 프로젝트에서는 한화디펜스의 K-21 105 경전차가 최종 후보에 포함됐다.
◆첨단장비 해외 의존 높아
시프리 보고서는 재래식 무기 수입 10대 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이집트, 호주, 중국, 알제리, 한국,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카타르를 지목했다. 한국은 세계 7위 수입국으로2010~2014년과 비교할 때 수입 규모가 6배 이상 폭증했다.
이는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국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는데 필요한 첨단장비 조달을 미국 등 군사선진국에 의존했던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은 F-35A 스텔스 전투기 40대를 7조4000억원을 들여 내년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북한 전 지역을 정찰할 수 있는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UAV) 4대와 북한 지상군 공격에 쓰일 AH-64E 공격헬기 36대 도입 등에도 수조원의 예산이 지출됐다. 여기에 P-8A 해상초계기를 비롯해 SM-3와 SM-6 함대공미사일, 패트리엇(PAC-3) 요격미사일, KF-16 성능개량과 이지스 해상전투체계 등까지 더해지면 도입 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에 달한다.
이 장비들은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미국 방산업체가 생산한 것으로 우리 군의 미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미국 방산업체의 한국 시장 지배력이 견고하다보니 유럽과 이스라엘 업체들은 돌파구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유럽 업체들 중 에어버스와 스웨덴 사브는 한국에서 성과를 낸 업체로 평가받는다. 에어버스는 KC-330 공중급유기 4대를 판매했다. 보잉의 KC-46A를 꺾고 수주에 성공해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 MBDA, 프랑스 탈레스 등 유럽 방산업체의 한국 진출 시도가 활발해지기도 했다. 사브는 아서 대포병레이더를 판매했으며, 개발에 참여한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도 한국에 수출했다.
미국 업체들이 생산하지 않는 ‘틈새 시장’을 파고드는 이스라엘은 탄도미사일 조기경보에 쓰이는 그린파인 레이더, 서북도서에서 북한군 해안포 공격 등에 활용되는 스파이크 미사일을 판매했다. 한국형전투기(KF-X)에 탑재되는 다기능위상배열(AESA)레이더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업체에 비하면 한계도 뚜렷하다. 미군을 비롯한 50여개국에서 널리 쓰이는 칼 구스타프 무반동포는 한국군에서는 ‘찬밥’ 대우다. 사브는 10여년 전부터 칼 구스타프의 한국 판매를 시도했으나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 합작사인 레오나르도의 AW-159는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에서 록히드마틴 MH-60R과 경쟁중이지만, 수주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무기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시프리는 보고서에서 “미국은 2015∼2019년 세계 전체 무기수출량의 36%를 차지해 러시아(21%)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같은 기간 96개국에 무기를 팔아 고객 수에서 러시아(47개국)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을 제쳤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중동 지역 국가에 대한 수출이 활발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사우디와 UAE는 예멘 내전에 개입, 후티 반군에 맞서고 있는 정부군과 무장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 방산업체의 ‘큰손’이다. 2017년 미국이 사우디에 수출한 무기 규모는 180억달러(약 20조4000억원). 미국이 세계에 수출한 무기 금액 556억달러의 30%에 달한다. 말 그대로 1등 고객이다. 사우디는 2017년 5월 트럼프가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1100억달러(약 125조원) 규모의 무기 거래 계약을 맺기도 했다. 워낙 통 크게 무기를 구입하다보니 미국의 태도도 바뀌고 있다. 과거 미국은 이스라엘보다 우수한 성능의 무기는 사우디에 넘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스텔스 전투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출이 허용되는 추세다.
반면 러시아는 전통적 고객인 인도가 미국, 유럽 무기 구매를 늘리면서 인도에 대한 무기수출이 47%나 감소했고, 첨단 기술 투자 측면에서 미국과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무기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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