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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0’은 다시 봐도 감동적이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25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했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최정예 병사 300명을 이끌고 좁은 골짜기를 막아섰다. 왕은 부하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저들을 막을 곳이다. 이곳이 바로 우리의 싸울 곳이다.” 병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스파르타의 항전 의지에 고무된 그리스는 마침내 침략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졌지만 이긴 전투였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는 항상 스승의 곁을 지켰다. 예수를 그림자처럼 따랐던 베드로는 스승이 붙잡히자 그의 제자가 아니라고 3번이나 부인했다. 베드로를 거듭나게 한 것은 통렬한 참회였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전파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훗날 가톨릭은 그를 초대 교황으로 추대했다.

레오니다스와 베드로가 한꺼번에 환생한 것일까. 그제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에서 두 사건의 숫자를 합친 ‘303’이 등장했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에 출석한 남편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입을 통해서다. “딸 조민씨가 동양대에서 받았다고 하는 표창장 원본을 본 적이 있습니까?” “형사소송법 148조에 따르겠습니다.” 검찰의 증인 심문에 조국은 앵무새처럼 같은 답을 되풀이했다. 무려 303번이었다.

형사소송법 148조는 자기 또는 친족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증언 거부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긴 하지만 그의 언행과 배치된다. 그는 지난해 기자 간담회에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막상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법정에서 다 말하겠다”며 입을 닫았다. 그 약속은 법정에서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자신의 법률 지식을 총동원한 그의 행동을 놓고 ‘법꾸라지’라는 힐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의 묵비권 행사로 가족의 형량이 가벼워질지는 알 수 없으나 양심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만은 분명하다. 스파르타 300인은 굳센 용기로 나라를 지켰고, 예수를 3번 부인한 베드로는 참회 끝에 진리를 지켰다. 조국이 303번이나 법규를 되뇌어 지킨 것은 정의일까, 불의일까.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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