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치의, 부인 하루만에 시인
감염도 진단 72시간 지난 뒤 밝혀
중환자용 투약… 경증상과도 배치
NYT “코로나 대응 근본은 정직”
주치의 “대통령 낙관적 태도 반영”
백악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건강에 관해 정확한 정보 제공을 회피하는 ‘낙관적 브리핑’으로 혼선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대통령 주치의인 숀 콘리(40) 박사다. 그는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입원 중인 월터리드 군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일 오전과 3일 아침 두 차례 트럼프 대통령의 혈중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2L의 산소를 공급받았다고 밝혔다. 전날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산소 보충을 받았는지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어제와 오늘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가 하루 만에 시인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테로이드제인 덱사메타손을 복용한 사실도 공개했다. 덱사메타손은 코로나19 중증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이 권장되는 약물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벼운 증상’만 보였다던 그의 초기 브리핑 내용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전날 콘리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진단을 받은 지 72시간이 됐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확진 사실을 36시간 동안 감추면서 지난 1일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도 참석한 셈이 된다. 콘리 박사는 “3일차”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를 잘못 표현했다며 수습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정밀검사를 받기 전 실시한 신속진단에서도 양성 판정을 받았으나 이를 숨겼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나와 백악관의 정보 공개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백악관은 이 보도에 즉각적 반응을 거부했다고 WSJ는 덧붙였다.
의료계에서는 대통령 주치의 역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이므로 환자 비밀 엄수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치 지도자의 건강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고 지적한다. 감염병 전문가인 카를로스 델 리오 미 에머리대 교수는 브리핑장에서 보인 콘리 박사의 모습이 “메디컬 닥터(의학박사)가 아닌 스핀 닥터(정치 홍보전문가)였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것의 뿌리는 (감염 경로·접촉자 등에 관한) 정직”이라며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건강에 대해 오도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콘리 박사는 “나는 병의 경과와 관련해 의료팀과 대통령이 가졌던 낙관적 태도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대선을 앞두고 나약한 이미지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전날 기자들에게 비실명 보도를 전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2일 오전 열이 나고 산소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설명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동영상 메시지, 깜짝 외출 등 건재함을 보여주려는 행보를 보였다.
콘리 박사는 일반 의사와 비슷한 수련과정과 자격요건이 필요하지만 주로 근육과 뼈의 기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두는 정골(Osteopathy) 의사 출신이다. 해군 군의관인 그는 2018년 백악관 주치의가 됐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예방하겠다며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직접 복용했을 때 “상대적 위험보다 치료상의 잠재적 이익이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옹호했던 사람이 바로 그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병원을 찾았을 때 ‘계획된 중간 검진’이라며 건강이상설을 일축하기도 했다.
여론 지형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WSJ와 NBC가 1차 대선후보 TV토론 다음날인 지난달 30일과 지난 1일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53%로 트럼프 대통령(39%)보다 14%포인트 많았다.
유태영 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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