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 한국반도체 인수해
세계 ‘초일류 삼성’으로 키워내
대한민국 재계의 거목이 스러졌다.
‘반도체 신화’를 통해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뒤 6년5개월만이다. 그는 단지 삼성을 대표하는 기업인만이 아니라 산업발전과 기술혁신에 영감을 준 정신적 지주였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 회장이 투병생활을 해온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삼성 측은 “장례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도전과 혁신을 통해 우리나라가 IT(정보기술) 강국으로 올라서는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74년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주위 만류에도 이 회장은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사재를 보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이 회장은 현실로 이뤄냈다. 삼성은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섰다.
1987년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 별세 이후 그룹 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경영선언(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회장은 품질경영을 통해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을 꼽고 내놓은 ‘애니콜’의 불량이 잇따르자 1995년 3월 ‘화형식’이라는 충격요법까지 동원했다. 한때 11.8%에 달했던 삼성 휴대폰 불량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
1995년 8월 애니콜은 마침내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세계 최강 모토로라를 밀어내고 51.5%의 점유율로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를 내준 유일한 나라다.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으로 386조원을 넘기며 39배 늘었다. 현재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TV, 스마트폰 등 20여개 품목에서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 스포츠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 레슬링과 인연을 맺은 이 회장은 1982∼1997년 대한레슬링협회 21∼24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 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회장은 1993년부터 3년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을 지낸 데 이어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돼 스포츠 외교에 힘을 보탰다. 동료 IOC 위원들과 친분을 활용해 강원도 평창이 3차례의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9년부터 1년반 동안 대회 평창 유치를 위해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녔을 정도다. 이 회장은 1995년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도입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 인재를 중시했고, 여성 차별을 과감히 없애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점도 크게 평가받는다.
유족으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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