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 수감 17명 심층상담 결과
“사회생활 스트레스로 다 잊어”
모든 성폭력범 의무 지침 불구
18% 치료 못 마치고 사회 복귀
보호관찰소와 연계 시스템 미비
“출소자 멘토링·심리치료 확대를”
“일도 해야 하고, 일 마치면 또 피곤하고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잊어먹게 되던데요.”
특수강간 혐의로 복역 후 출소했지만, 최근 재범으로 다시 교도소에 수감된 30대 A씨는 2016년 수감 당시 받은 성범죄자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같은 해 강제추행 혐의로 복역 중 심리치료를 받고 사회에 복귀했다가 또다시 교도소에 수감된 60대 B씨도 “(심리치료 내용이) 어쩌다 한 번씩 생각은 난다”면서도 “방심하면 자꾸 흐트러진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성범죄로 복역 후 재범(성범죄 또는 폭력)해 교정시설에 다시 수감된 17명을 최근 심층 면담한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많은 응답자가 출소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치료프로그램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고 했고, (재범) 사건 당시에도 기억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미성년자 성폭행범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교정 당국이 운영 중인 성범죄자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사후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2일 법무부에 따르면 형이 확정된 교정시설 내 모든 성폭력 사범은 재범 위험성 평가 결과 등에 따라 기본(100시간)·집중(200시간)·심화(300시간)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교정 당국은 법원이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병과하지 않은 성범죄자의 경우에도 내부 업무지침 등을 통해 심리치료를 받게끔 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프로그램 참여 수형자에 대해서는 사전·사후 척도별 검사를 통해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며 “평균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윤 연구위원의 조사결과처럼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성범죄자의 사회 복귀 후 적절한 치료 연계·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효과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윤 위원은 “많은 수용자가 면담을 통해 출소 후 사회생활에서 위축되고,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고했다”면서 “일부 수용자는 사회 내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다시금 술이나 약물, 성매매, 음란물과 같은 부적절한 방식을 사용하여 (어려움에) 대응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법무부의 심리치료 프로그램 운영 실적을 살펴보면,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출소한 성폭력 사범 중 18%(1839명)는 치료를 마치지 못한 채 출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감독 대상자는 미집행된 법원 이수명령 시간만큼 출소 이후 보호관찰소를 통해 치료를 이어가야 하지만, 교정 당국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심리치료 프로그램 대상 수형자는 사회 복귀 후 치료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전자감독 대상자에 대한 심리치료도 교정시설 내의 교육과 출소 후 교육의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보호관찰소는 미이수 대상자의 부과 시간·미이수 사유 등이 포함된 문서를 교정시설로부터 받지만, 교정시설에서 받은 프로그램 내용을 공유받을 수 있는 별도의 시스템은 없다.
윤 위원은 “(교정 당국이) 만기출소 시 대상자의 범죄유발 요인 등이 얼마만큼 해소됐는지, 출소 후 재범 가능성은 얼마나 남았는지 등을 총괄적으로 평가해 전달하면 보호관찰소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면서 “연속적인 범죄자 관리를 위한 전반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소한 성범죄자들의 심리 안정을 돕기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적절한 추가 심리치료 기회 제공 등을 확대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출소를 앞둔 성폭력 사범의 건전한 사회 복귀를 위해 다양한 사회복지시스템 안내와 함께 출소자 심리 상담 사업 등을 하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을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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