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임대료 고통에 “차라리 건물 공구”
목포 상인·주민 100여명 협동조합 만들어
‘마을 펍’ 운영… 상권 살리고 사랑방 역할
‘쫓겨남’ 경험 공유한 마포지역 세 단체
크라우드 펀딩 진행… 33억 건물 공동소유
‘젠트리피케이션 방어막’으로 떠올라
사회적 기업 ‘빌드’ 투자한 시민에 배당
“주거문제 공동 해결” 사회주택도 떠올라
해외선 수십년 전부터 펍·빵집 등 운영
“이익 투자로 선순환… 정책 뒷받침 필요”
전남 목포시의 건해산물 거리에는 주인이 100여명인 ‘마을 펍(Pub·술집)’이 있다. 펍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100여명의 주인은 대부분 이 지역 주민들이다. 지난해 상권 활성화를 위해 기획했던 ‘건맥(건해산물과 맥주)’ 축제가 큰 호응을 얻고 난 뒤 지역상인과 주민들은 축제를 일상화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건맥 1897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 출자금과 ‘소셜펀딩’(인터넷 등을 활용한 투자금 모금)으로 자금을 조성한 이들은 비어 있던 상가를 매입해 마을 펍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펍은 마을 사랑방 역할도 한다. 상인회와 함께 축제를 기획했던 목포시도시재생지원센터의 전은호 센터장은 23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건맥 협동조합의 성공으로 지역 상인들이 자신감이 생기면서 2호점도 고민하고 있다. 공동자산을 함께 소유함으로써 마을의 주인이라는 소속감과 책임감을 갖게 된 것”이라며 “이익을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기반을 만듦으로써 지역사회가 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료 폭증과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쫓겨남 현상)’ 등 과열된 부동산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시민자산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민자산화란 다수의 시민이 힘을 모아 토지와 건물 등 공동소유 자산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이익을 공동체를 위해 투자하는 것으로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피해 지역민들 스스로가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개발 방식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시민이 힘을 모아 필요한 공간을 사들이는 자산화 움직임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그랜비 4 스트리트(Granby 4 Street)’ 개발 사례다. 1980년대 후반 낙후 지역이었던 영국 리버풀의 그랜비 스트리트 지역민들은 정부 재개발 정책으로 지역 건물들이 철거되는 것을 막고 스스로 재개발을 하기 위해 ‘공동체토지신탁(CLT)’을 조성해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았다. 이들은 케임브리지대 출신들로 구성된 도시재생단체 ‘어셈블(Assemble)’과 함께 지역사회를 성공적으로 회생시켰다.
과거 낙후지역이었던 런던 사우스뱅크 코인 스트리트 지역에서 주민들이 1985년 비영리 마을 조성 단체를 세우고 자발적 지역 재생에 성공한 ‘코인 스트리트 커뮤니티(Coin Street Community)’ 역시 지역자산화의 오래된 성공 사례다.
이외에도 주민 371명이 자금을 모아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마을 펍을 사들여 공동 운영하는 런던의 ‘아이비하우스 펍’이나 재개발구역으로 묶이며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마을 빵집을 주민들이 공동체토지신탁(CLT)을 조성해 사들여 되살린 리버풀 안필드 지역의 ‘홈베이크드(Homebaked) 베이커리’ 역시 시민자산화에 속한다.
국내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 2010년대 중반부터 시민자산화 논의가 시작됐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극심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서울 마포구의 ‘해빗투게더 협동조합(해빗투게더)’은 지역 공동체 공간 소유를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다. ‘쫓겨남’의 경험을 공유한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삼십육쩜육도씨 의료협동조합 세 단체가 2017년 뜻을 모은 후 크라우드 펀딩과 정부 지원사업 등으로 3년 만인 올해 9월 33억원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이어 2018년 12월 ‘해빗투게더’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후 자산화에 동참한 시민은 213명. 20개 단체도 이들과 뜻을 함께했다. 이들은 올해 5월 오마이컴퍼니 플랫폼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총 1억원이 넘는 출자금 모금에 성공했고 올 12월 다시 한 번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영민 해빗투게더 상무이사는 “시민자산화로 만든 시민의 공간인 만큼 개방형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조합원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면 지역의 누구나 들어와 이용할 수 있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이용자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기업 형태의 시민자산화도 있다. 경기 시흥시의 스타트업인 ‘빌드’가 대표적이다. 빌드의 우영승 대표는 4년 전 시흥 구도심 재생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장을 키운 뒤 소유 지분 중 일부를 주민에게 투자받는 방식으로 운영권을 시민자산화했다. 시민이 직접 투자하고 연 매출의 2%를 투자 금액에 따라 배당받는다.
우 대표는 “기업이 가치 창출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중요하다”며 “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중앙 중심의 구조가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지역에 재투자되는 구조를 만들면, 지역에서 판매와 소비가 이뤄지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사회 재건뿐 아니라 주거난 해소의 방법으로도 시민자산화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택협동조합이 출자를 받아 공동자산을 확보한 후 조합원에게 임대하는 ‘사회주택’이 대표적이다. 민간 공급 주택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거주기간도 10~20년으로 길어 주거안정에 도움이 된다.
주거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함께주택 협동조합’도 사회주택에 속한다. 지역민들이 사회주택 사업자가 돼 시공부터 주택관리까지 담당하는 방식이다.
박종숙 함께주택 상임이사는 “협동조합을 이루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부동산 문제로 인한 주거 불안”이라고 진단했다. 박 상임이사는 “사회주택은 저리 융자를 받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이런 시도가 지속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시민자산화에 대해 ‘부동산 시세 상승에 일종의 ‘저항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역자산화 전문가인 이영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시민이 자산화를 통해 공동소유주가 된 건물이나 토지가 지역사회 곳곳에 자리하면, 외부적 충격에 의해 부동산 시세가 요동치거나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는 방어막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자산화 사례가 늘어나면 지역민의 소비가 지역민들이 공동소유한 자산화 조합으로 들어가고 그 이익이 조합을 거쳐 결국 다시 지역사회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지원·이종민 기자 g1@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