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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물징계’… 뇌물·성추행 걸려도 법복 벗으면 끝 [탐사기획-법관징계 리포트]

입력 : 2021-02-13 21:00:00 수정 : 2021-02-15 20: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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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후 법관 징계 43건 분석
단죄없이 사표수리 30년간 32명
억대 뇌물 수수, 음주 뺑소니에도
정직 이하 징계… 사법 불신 부채질

법적으로 제정된 ‘법관 징계기준’ 없고
재판 독립 위한 신분보장 ‘보호막’ 작용
5년 전 ‘정직 6개월 ↑ 연금 감액’ 추진
정권 바뀐 이후 개선된 제도 별로 없어

헌법은 법관의 파면 절차를 다른 공무원보다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필요하다.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보장이 법치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3권분립 원칙과 신분보장 제도하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다.

 

법관의 신분보장은 유무죄나 이해충돌 사안의 최종 심판자인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금력, 여론 등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그만큼 법관들은 어떤 공직자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와 동료 법관들에게 들이대야 한다.

 

하지만 세계일보가 7일 공무원 징계 및 윤리 전문가와 함께 1995년 이후 25년간 법관 징계 사례 43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26건(60.4%)이 다른 공무원과 비교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징계 사유로는 ‘위신 실추’가 38건(88.3%)이었고, ‘직무상 의무 위반’이 5건이었다. ‘위신 실추’ 사례로는 ‘떡값’ 등 뇌물수수 및 향응·접대가 10건(23.2%)으로 가장 많았고, ‘사법행정권 남용’ 9건(20.9%), 음주운전 6건(13.9%), 성비위 4건(9.3%) 순이었다. 음주운전 중 2건은 뺑소니 혐의까지 포함됐다. 징계 이후엔 대체로 법복을 벗었다. 수감자와 현직을 제외한 28명 중 14명이 징계 후 1년, 5명이 2년 이내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억대의 뇌물수수 행위나 음주뺑소니 사고 같은 엄중한 사안에서도 연루 법관들은 정직 이하 징계를 받았다. 반면 다른 공직자들은 유사한 사례에서 파면·해임 같은 중징계에 처해졌다. 파면·해임과 정직 이하 징계는 추후 공직 임용 제한과 공무원 연금·퇴직수당 삭감 등에서 차이가 크다.

 

1990년 이후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아무런 징계 없이 사표가 수리된 법관도 30명이 넘었다. 이 같은 제식구 봐주기식 법관 징계 관행은 국민의 사법 불신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법관이 탄핵소추된 사태나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드러나 대법원장 탄핵론이 제기되고 있는 참담한 상황도 이 같은 사법 불신의 귀결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분석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헌법이 법관들의 신분과 재판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그만큼 높은 도덕성이 뒷받침될 것’이라는 전제에 따른 것”이라며 “다른 공무원과 비교해 법관들에게 오히려 낮은 수위의 징계만 이뤄져 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꼬집었다.

 

◆100만원 이상 수뢰 공무원 ‘무조건 파면’인데… 법관은 ‘정직’ - (상) 한없이 가벼웠던 법관의 죗값

 

탄핵은 일반적인 절차로는 파면할 수 없는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가장 무거운 징계 제도다. 헌정 사상 첫 현직 법관 탄핵소추를 놓고 찬반 양론이 뜨거운 이유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사법부로선 치욕스러운 사태이지만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국민 신뢰를 저버린 법관에 대한 징계 잣대 자체가 엄정하지 않고, 그마저 제대로 갖다 대지 않은 게 관행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게 최근 법관 탄핵과 김명수 녹취록 논란이다. 현행 법관징계제도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선진국 사례와 개선 방향 등을 짚어 본다.

 

1993년 김영삼정부 출범 직후 이뤄진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는 사법부를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었다. 대규모 땅투기 의혹에 휩싸인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 등 법관 십수명이 법복을 벗었다. 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바닥을 쳤고, 이는 1995년 6월 법관윤리강령 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 윤리를 제고하고 재판 신뢰를 회복할 획기적인 조치가 될 것입니다.”(최종영 당시 법원행정처장)

 

법관 윤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윤리강령 제정 직후 헌정 사상 첫 법관 징계가 이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징계는 조직의 도덕성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로부터 25년, 법원은 과연 국민 염원대로 모범을 보여 왔을까.

 

7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공무원 징계 및 윤리 전문가들과 함께 1995년 이후 25년간 법관 징계 43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는 실망스럽다. 법관이 아닌 이들의 잘못에 엄정했던 법원은 ‘제 식구’들의 잘못에는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사법부 수장이 약속한 징계 법관에 대한 공무원 연금 삭감 등의 대책도 ‘공염불’에 그쳤다.

◆43건 중 38건 ‘위신 실추’… 수뢰·향응 최다

 

1956년 제정된 법관징계법은 법관이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리거나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을 때 징계하도록 해놓았지만 40년 가까이 유명무실했다. 물의를 일으키면 징계 대신 법복을 벗고 나가는 게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첫 징계 대상은 1995년 8월 이선희 서울가정법원 판사였다. 그는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왔다가 법원의 위신 실추를 이유로 ‘감봉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전체 43건(정직18건·감봉16건·견책9건) 중 이 같은 ‘위신 실추’가 38건이었고, 비위 유형은 뇌물수수와 음주운전, 성비위, 폭행, 막말 등으로 다양했다.

 

징계 법관 42명 중 21명이 남성 부장판사였고, 징계 당시 나이(평균 43.2세)는 30대가 12명, 40대가 24명, 50대가 6명이었다. 최고령과 최연소는 각각 57세(뇌물수수), 31세(지하철 몰카)였다. 징계 이후엔 대체로 법복을 벗었다. 수감자와 현직을 제외한 28명 중 14명이 징계 후 1년, 5명이 2년 이내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이규진 전 부장판사만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른 공무원은 ‘무조건 파면’인데 법관은 ‘정직’

 

“이건 뭐, 솜방망이나 다름없네요….”

 

분석에 참여한 전문가 3명은 법관 징계를 다른 공무원 징계 사례와 비교 분석한 뒤 한목소리로 “징계 수위가 눈에 띄게 낮다”고 평가했다. 3명 모두 43건 중 13건(30.2%)은 ‘(다른 공무원 징계와 비교해) 약하다’고 판단했다. 3명 중 2명이 ‘약하다’로 판단한 건은 13건이었다. 3명 모두 ‘평이하다’고 본 건 배우자 상해(정직 2개월) 등 3건뿐이었다.

 

법원은 특히 법원 바깥에서 저지른 비위에 온정적이었다. 대법원 공고에 따르면, 2019년 5월 김모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혈중알콜농도 0.163%의 만취 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2018년 12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시행 이후였지만 대법원 결정은 감봉 2개월에 그쳤다. 이는 같은 해 3월 국토교통부 국장급 간부가 음주운전(0.151%)으로 정직 1개월을 받은 것과 대비된다.

 

장모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2016년 11월 음주운전을 하다가 고속도로에서 차량 2대를 친 뒤 달아났다. 인적 피해를 낸 음주뺑소니는 당시 공무원징계령 기준으론 최소 정직, 현재 기준으로 최소 해임인 중대범죄이지만 법원은 감봉 4개월로 매듭지었다.

 

반면 법원 내부 잡음엔 엄정했다. 2007년 10월 정영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부적절 처신 판사들이 징계 없이 요직으로 발령되고 있다”며 대법원장 징계를 주장하다가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는 공판검사 성추행(정직 1개월)이나 택시기사 폭행(감봉 6개월)보다 수위가 높았다. 강호석 인천시 행정심판위원(변호사)은 “표현의 자유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정직까지 내린 것은 과도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들쭉날쭉한 징계수위는 법관 징계에 관한 양정기준이 법원 내부에 따로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법관은 징계기준이 법적 형태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데, 변호사와의 이해충돌이나 재판 관련 정보 취급, 정치적 의견 표명 등에 관한 징계기준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선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다른 공무원과 비교한다면 상급자에게 하는 정보보고가 기획업무에 속할 수 있다”며 수위가 강했다는 의견을 냈고, 나머지 2명은 대체로 약했다고 판단했다.

 

재판 독립을 위한 신분보장 조항은 사실상 비위 법관들의 ‘보호막’으로 작용했다. 2015년 이후 억대의 뇌물수수로 구속된 최민호·김수천 판사에게 내려진 징계는 정직 1년이 전부였다. 2015년 정부는 100만원 이상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무조건 파면’ 하도록 법을 바꿨으나 법관은 예외였다. 그해 뒷돈 516만원을 받은 50대 경찰은 원칙에 따라 파면됐다.

 

파면·해임이 공무원에게 치명적인 이유는 추후 공직 임용이 제한되고 연금과 퇴직수당이 크게 깎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법관들은 다른 공직자보다 비난 가능성도 크고 더 무거운 죄를 저질러도 불이익은 더 적게 받는다는 얘기다.

◆연금 삭감으로 ‘제머리 깎겠다’더니

 

사법부도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2016년 뇌물수수로 현직 판사가 구속되자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정직 6개월 이상 법관의 연금 감액 등 각종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국회 탄핵소추가 필요한 파면 조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그에 준하는 징계 규정을 마련해 법관들의 일탈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태껏 연금 감액을 비롯해 비위 법관의 재판 배제 조치 등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다른 공무원들처럼 징계부가금을 5배로 높인 게 사실상 전부다. 법원행정처 측은 “당시 추가 검토 후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연금 감액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맞다”며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신설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징계 내용은 온라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향응은 관행” 억울하거나… “내 잘못” 반성하거나 

 

징계를 받은 전직 법관들은 대부분 인터뷰를 꺼렸다. 인터뷰에 응한 법관 중 일부는 억울함을 토로했고, 일부는 “부당한 징계가 아니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을 했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게티이미지뱅크

1998년 ‘의정부 법조비리’ 때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가 징계처분을 받은 전직 법관 A씨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징계 결정을 받아들였다”면서도 억울함을 피력했다. 그 시절 수많은 법관들이 그와 비슷한 향응을 제공받았음에도 따로 징계를 받진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변호사의 법관 향응을 ‘관행’ 정도로 기억했다. 그는 “그때는 어떻게 보면 여론(압박)에 막 밀렸다”며 “통상적으로 법관에 대해 할 만한 그런 (징계 수위의) 기준은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견책 처분을 받은 경험이 있는 전직 법관 B씨는 “(비위행위를 했을 때) 사직서를 내는 게 일반화해 있었다”며 “사직을 하면 징계를 못하게 돼 있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사표를 내지 않고 징계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나갈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당시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다른 내용이 많지만 어쨌든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에 징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았던 전직 법관 C씨는 징계와 관련해 “제가 명백히 실수를 한 부분이고 징계 사유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제 스스로 법원장님께 (음주운전 사실을) 보고 드리고 법관징계위원회에 출석해 변명도 해봤지만 생각보다 중징계가 나왔다”며 “일종의 권고사직을 당한 셈”이라고 떠올렸다.

 

◆뇌물·성추행 걸려도 법복 벗으면 끝… 관대한 내부 잣대

 

“적어도 누가 연루됐는지는 시민들이 알아야 되잖아요. 하긴, 법원이 당사자인데 공개하고 싶을 리가 없죠.” 지난달 13일 취재팀과 만난 김태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는 검찰이 2019년 3월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며 법원에 건넨 판사 66명의 명단이 여태껏 공개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19년 ‘66명 명단과 비위내용을 알려달라’며 수차례 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이의신청을 포함해 모두 비공개 통보를 받았다. 모든 시도가 허사가 되자 지난해엔 “명단 비공개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는 왜 명단 공개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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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사법부는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여실히 보여줬어요. 사법농단을 ‘위헌적 행위’라고 못 박고도 여태껏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대표적이죠. 이대로라면 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넘어갈 게 뻔해 보이네요.” 그의 말에선 법원에 대한 불신이 묻어났다. ‘잘못한 사실이 드러나면 바로 법복 벗고 나가기’라는 법원의 오랜 관행은 이런 불신을 키운 주범이었다.

 

◆징계 없이 사표 수리, 최소 32명

 

7일 취재팀이 학계 연구를 토대로 언론보도들을 확인한 결과, 사법부 불신의 일단이 드러났다. 1990년 1월 이후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비위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물의를 일으켰으나 징계가 청구되지 않은 법관 사례가 최소 55건은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절반이 넘는 32명이 사표를 냈고, 대법원은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나머지는 구두 경고나 주의, 전보 조치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징계청구 사안에 대한 판단은 사안의 성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언론에 보도됐다고 무조건 징계감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헌법기관이자 인권과 정의 수호의 마지막 보루로서 사법부와 법관의 존재 이유를 감안했을 때 납득이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았다.

 

다른 공직자였다면 무겁게 처분했을 금품·향응수수 등이 대표적이다. 취재팀이 취합한 55건 중 28건(50.9%)이 금품·향응 관련이었다. 2006년 조모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사건 청탁을 대가로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에게서 1억2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따로 징계가 청구되지 않았다. 사표를 내고 나간 그는 알선수재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같은 해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선 재판에 넘겨진 조직폭력배 출신 피고인의 동생으로부터 향응과 골프 접대를 받은 판사들의 사표가 대법원 조사 도중 수리돼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이에 대법원은 2006년 ‘법관의 의원면직 제한에 관한 예규’를 제정해 징계가 청구됐거나 수사 통보 혹은 직무상 위법행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사표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듬해 폭력조직 출신과 어울려 필리핀 등지에서 골프 접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 정읍지원 판사를 비롯해 예규 제정 이후 사표가 수리된 사건은 14건이었다.

2017년엔 ‘은폐 의혹’까지 제기됐다. 법원행정처가 검찰로부터 문모 부산지법 부장판사의 골프·유흥 접대 비위 정황이 담긴 문건을 전달받고도 구두경고로 매듭지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다. 해당 판사는 지역 건설업자로부터 수년간 10여차례 룸살롱과 골프접대를 받았으나 징계가 청구되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도 4건이나 됐다. 2011년 황모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감찰 착수 뒤 사의를 표명한 황 판사의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 “직무 관련 위법 행위가 아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2015년 징계 없이 사표 수리된 유모 울산지법 판사는 대학 후배 성추행 혐의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판사는 노래방에서 피해자의 민감한 부위를 만지고, 얼굴에 입을 맞췄다.

게티이미지뱅크

◆“알려지지 않은 사례 훨씬 많을 것”

 

언론에 알려진 것만 이 정도일 뿐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넘어 간 사례는 더 많을 것이란 게 법원 안팎의 관측이다. 그동안 꾸준히 불거진 판사 막말 논란만 봐도 그러한 짐작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015년 이모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온라인 댓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투신의 제왕’에 비유하는 등 수천건의 막말 댓글을 달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 내부에서도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법원 결정은 전보 조치 후 사표 수리였다. 이밖에도 40대 판사가 69세 진정인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냐”고 말하거나, 피고인 대리로 나온 70대 할머니에게 “딸이 아픈가본데 구치소 있다 죽어나오는 꼴 보고 싶으십니까?” 등의 막말 사례가 꾸준했으나 징계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봐주기 관행은 외국에도 있으나 우리나라가 좀 심한 편”이라고 꼬집었다.

 

◆고위법관의 징계 재량권 줄여야

 

이런 관행들의 근저엔 ‘법복을 벗는 것이 곧 중징계’라는 사법부의 그릇된 인식이 깔려있다. 일부에선 법관에 대한 법원의 징계청구권과 결정권 독점이 제식구를 감싸게 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징계위원 구성 다양화 등을 통해 징계에 대한 법원 고위층의 재량권을 축소하고 징계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징계위원회에 외부위원보다 법관이 한 명 더 많아 법관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외부위원을 실질적으로 꾸려 제대로 된 심의를 할 수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55건의 비위 내용은 온라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 1995∼2019년 데이터 취합 전문가 3인에 분석 의뢰

 

세계일보 취재팀은 관보에 오른 ‘대법원공고(징계처분)’에서 1995∼2019년 이뤄진 43건의 법관 징계 데이터를 취합한 후 공무원 징계 및 윤리 전문가 3인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에 참여한 강호석 변호사는 2018년 1월부터 인천시 행정심판위원으로서 공무원 징계처분의 적절성 등을 심사하고 있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경상북도 소청심사위원회에 접수된 징계 사건 303건을 토대로 공무원 징계제도를 분석한 바 있다.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직윤리 강화를 위한 공직자윤리법 정비방안’(2015) 등을 펴낸 공직윤리 전문가다.

 

이들에게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법관과 타 공무원의 징계수위 비교 및 전반적인 평가, 개선 방향 등을 요청했다.

 

징계 법관들의 당시 직급과 사법연수원 기수, 변호사 개업 시점, 나이, 성별 등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인 정보 사이트 등을 통해 확인했다. ‘무징계 법관 사례’는 박준 전 서울대 교수의 ‘법관·검사 징계 사례에 관한 연구’(2014) 논문을 참고했다.

 

논문과 뉴스분석 시스템 ‘빅카인즈’,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등을 통해 1990년 1월 이후의 사례 55건을 취합했다.

 

개별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은 없었으며 다수의 언론이 비판적으로 보도한 경우만 특정해 집계했다.

 

◆“법관, 누구보다 엄격한 자기검열 필요” 

 

“주위에서 다들 조용히 좀 하고 나가라고 했죠. 그런데 그러기 싫더라고요.”

 

지난달 12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만난 이선희(72) 변호사는 ‘1호 징계 판사’라는 낙인이 찍힌 데 대해 “부당한 징계였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인 고 이해봉 의원의 대구시장 선거를 도왔다가 ‘법원 위신 실추’를 이유로 1995년 8월 감봉 6개월을 받았다. 법관 징계는 당시로선 ‘일대 사건’이었다. 법조계와 언론에선 ‘백년사법 첫 징계자’라며 수군댔다. 그는 반발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공직선거법 처벌 규정에 ‘부부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없었어요. 입법 미비 상태였던 셈이죠. 제가 법원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난 직후(1995년 12월) 법이 고쳐졌습니다.”

지난달 12일 이선희 변호사가 1995년 8월 사상 첫 법관 징계 막전막후를 설명하고 있다. 이창수 기자

'물의’를 일으키면 조용히 퇴장하는 게 관례였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여자가 무슨 판사를 하느냐”는 성차별적 비난까지 공공연했다. 더구나 그는 법원 주류였던 서울대 출신도, 수도권 태생도, 남성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끝까지 버텼을까.

 

“저도 부담감이 컸죠. 주변에서는 ‘가정법원 판사 했으니 변호사로 돈 잘 벌 텐데 왜 버티냐’고 했어요. ‘판사인 당신마저 말을 못하면 어느 여성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느냐’던 지인의 말이 힘이 됐죠.”

 

그는 “언제까지 있을 겐가”라고 묻는 윤관 당시 대법원장의 말에 “있고 싶을 때까지 있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징계 이후인 2001년 그는 기존 판례를 거스르고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판결을 내려 이목을 모았다. 사람들은 “승진을 포기하니 저런다”고 쑥덕였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인사 불이익을 받진 않았다고 했다. 사법연수원 교수로 4년간 후배들을 가르쳤고, 퇴직 후에는 초대 양육비이행관리원장에 올랐다.

 

그는 이를 “스스로에게 떳떳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법관은 이 사회 어느 누구보다 엄격한 자기검열이 필요해요.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놓고 남의 잘잘못을 따질 순 없죠. 항상 거울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랍니다.”

지난달 29일 성창익 민변 사법감시센터 소장이 현행 법관징계제도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사표 수리 자체가 징계란 내부 인식 잘못 대법원장 독점 징계위원 선발권 바꿔야”

 

‘솜방망이’ 일색인 법관 사회의 징계 관행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지난달 29일 취재팀과 만난 성창익(51·사법연수원 24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법원이) 내부 식구에 온정적인 면이 있었다”며 대법원장 입맛대로 구성되는 징계위원회 구성이 대표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 소장은 판사로 법조계에 발을 디딘 뒤 변호사, 판사를 거쳐 다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조계 전반에 걸쳐 넓은 식견을 가졌다고 평가 받는다. 성 소장은 법관 사회가 비위 판사들에게 관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온정주의’를 꼽았다.

 

“판사로 일할 때 ‘외부에서 보면 내 식구 감싸기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동료로서 개인적 친분이 있다 보니 다른 법관을 비난하기 어렵고, 합당한 불이익을 주라고 말하기도 어렵죠.”

 

제도적 맹점으로는 먼저 법관징계위 위원의 편향적 구성을 지적했다. 법관징계위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총 7명인데 7명 모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대법원장 입맛에 맞는 징계위원이 위촉되는 셈이다.

 

성 소장은 “징계위원을 뽑는 데 시민사회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 임명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추천하는 사람을 징계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관 내부에서 제대로 징계 청구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위 행위를 한 법관을 그대로 두면 사법부의 신뢰가 훼손된다’는 논리 하에 법원은 사표 수리로 징계를 대신해왔다. 성 소장은 “(법원 내에선 물의를 빚은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는 게 가장 큰 징계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며 “징계 없이 사표가 수리되면 변호사 개업에 지장이 없어 변호사로 활동하는 데 혜택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논란과 관련해선 “정상적으로 재판과정이 작동되지 않았다면 시민사회가 이를 견제하고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장치가 바로 (대의기관인 국회의) 탄핵 소추권”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도촬 판사’ 日은 파면 韓은 감봉

 

2012년 8월 일본 오사카 언론이 들썩였다. 하나이 도시키(華井俊樹·당시 28세) 오사카지법 판사보(10년차 미만 판사)가 출근길 전동차에서 휴대전화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것이다. 가뜩이나 도촬(몰카) 범죄가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던 때여서 법원과 지역사회의 충격은 더 컸다.

 

하나이 판사는 경찰에서 처분 보류로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사표를 냈으나 반려됐다. 다수의 추가 범행이 드러난 데다 그가 사형 선고를 내리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던 법관이라는 점 등이 작용했다. 검찰은 지방자치단체 조례 위반 혐의로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청구했고, 같은 해 9월 법원은 벌금 50만엔(약 532만원)을 선고했다.

 

이와 별개로 일본 사회는 하나이 판사를 ‘파면’시켰다. 일본 재판관탄핵재판소에서 “법관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실추시켰다”며 그를 탄핵한 것이다. 이 사건은 법관 탄핵이 전무한 한국 법조계에서 종종 언급되는 사례다. 공교롭게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서울동부지법 성범죄 전담 재판부에서 근무하던 31살 홍모 판사는 지하철 전동차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현장에서 검거됐다. 검찰이 약식기소했고 법원은 홍 판사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 홍 판사에 대한 법원 내 징계는 ‘감봉 4개월’에 그쳤다. 도촬 범죄를 저지른 일본과 한국 판사의 법조인 경력과 혐의, 법적 처분은 거의 비슷했지만 징계 결과에서 운명이 갈린 셈이다.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개업한 홍 판사와 달리 하나이 판사는 지금도 법조인 자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日 “도촬 법관 봐주기 땐 사법 불신 초래” 이유 탄핵 철퇴 - (중) 법관징계 4개국 국제설문

 

한국에서 법관 탄핵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범죄나 비리에 연루된 판사도 적지 않았으나 그 누구도 파면되지 않았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해서만 파면이 가능하고, 탄핵의 경우 직무상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때에만 국회 탄핵 소추 절차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절차를 거치도록 헌법에서 법관의 신분을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사법부도 비위를 저지른 법관들에게 법복을 벗고 나가 민간인 신분에서 처벌받도록 하거나 정직 1년 이하의 징계로 마무리하는 관행에 익숙해졌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도 대부분 우리처럼 ‘재판의 독립’을 위해 법관의 신분을 강력하게 보장한다. 하지만 드물게 비위 법관을 탄핵한 경우가 있다. 법원 내부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사법 신뢰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취재팀은 외국의 법관 탄핵 사례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보고, 가까운 일본의 탄핵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일본에서는 접대·향응과 성범죄, 우리의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검사총장 사칭 등 사유로 7명의 법관이 탄핵됐다.

 

그중 일곱 번째로 2013년 4월 하나이 도시키(華井俊樹·당시 29세) 오사카지법 판사보(10년 미만 판사)가 탄핵된 이유는 ‘지하철 도촬’ 탓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도촬 범죄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근거로 6개월 이하 징역형 혹은 50만엔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였다. 하나이 판사 측도 잘못은 인정하되 ‘이 정도 범죄로 탄핵은 지나치다’는 주장을 폈지만 탄핵을 피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판사가 도촬 범죄를 저지른 데다 가벼운 징계에 그칠 경우 국민의 사법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일본 사회의 우려가 반영된 엄단 조치다.

 

◆“범행 이후 진지한 자세로 반성”

 

8일 일본 재판관탄핵재판소 판결문을 보면, 우선 하나이 판사는 체포 직후부터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등 진지한 반성의 모습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사직 의사를 밝혔을 때부터 탄핵 재판에 이르기까지 6개월 동안 보수와 상여금을 반환했으며 ‘퇴직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일본 재판관탄핵재판소 2013년 4월10일자 판결문에는 ‘피소추인을 파면한다’는 주문과 함께 하나이 도시키 판사 측 주장과 재판부 판단 등이 열거돼 있다.

이런 부분은 재판부도 충분히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소추인의 진술과 지인들에게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켜 버린 것을 깊이 후회한다’고 편지를 쓰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결코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마주하는 자세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무려 67명에 달하는 하나이 판사 측 변호인들도 이를 부각하며 탄핵 사유가 된 ‘지하철 도촬’과 법관 탄핵 보호법익의 경중을 비교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과거 탄핵된 법관들이 연륜 있고 징역형이 선고된 중대 범죄를 저지른 데 반해, 하나이 판사는 법조인 경력이 짧고 지자체 조례 위반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나이 판사 측은 또 동종 범죄에 대한 변호사협회의 징계 수준과 과거 직접적인 성추행을 한 법관이 파면되지 않은 사례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의 태도는 단호했다. 재판부는 “조례 위반이라고 해서 경미한 범죄라고 속단할 수 없으며 국민들이 판사에 거는 기대와 신뢰는 법조인 경력 등과 상관없다”며 “변호사협회의 징계 수준과 과거 성추행 사례 등은 해당 사건의 경중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법관에 대한 존경과 신뢰 실추’가 이유

 

‘헌법이 법관의 신분을 두텁게 보장하는 취지는 법관이 언제나 국민의 두터운 존경과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근거이다.’

 

하나이 판사 탄핵 판결문에는 일본 사회가 법관에게 거는 기대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재판부는 ‘사법권 행사가 국가권력의 간섭을 받기 쉽다는 인류공통의 역사적 체험’ 등을 들어 사법권 독립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재판관이라는 지위에는 윤리규범이 내재되어 있다”며 윤리규범을 어긴 하나이 판사의 행위를 질타했다.

 

법원의 사회적 위상도 고려 대상이었다. 재판부는 “기술 발전에 따라 도촬의 방법이 점점 더 교묘해지는 상황에서 만약 이 사건이 파면되지 않는다면 ‘도촬은 판사조차도 면직되지 않는 행위’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이 결여된 비열한 범죄를 저질러 법관이 구축해온 사법 전체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실추시켰다”며 파면을 선고했다.

 

일본에서 법관이 파면되면 최소 5년 이상 법조인 자격을 잃게 되며 추후 법조계를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 등이 인정돼야 자격을 회복할 수 있다. 역대 파면된 7명의 법관 중 4명만 자격을 회복했다.

◆“법관 신뢰 훼손, 법조계 전체에 악영향”

 

물론 법체계가 다른 일본의 탄핵 사례를 우리나라에 직접 대입하긴 어렵다. 하나이 판사가 도촬을 이유로 탄핵된 것은 일본 재판관탄핵법에 ‘법관으로서 위신을 상실하는 비행’도 탄핵 사유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직무상 헌법과 법률 위반’을 탄핵 사유로 보는 우리보다 범위가 넓다. 반면 탄핵 외의 법관 징계 수위만 따졌을 때 일본이 우리보다 가벼운 측면도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정해황 변호사는 “일본에선 법관징계법이 제정된 1947년 당시 판사의 월급인 과료 1만엔과 계고(경고)가 징계 처분의 전부”라며 “법관의 신분을 보장해주려는 경향이 강해 금전이든 인사든 웬만해선 불이익을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일본의 징계 제도가 극단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탄핵 사례가 법관들의 윤리의식과 국민 신뢰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았다. 정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법조계에서 가장 높다”며 “판사에 대한 신뢰 훼손이 법조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위기가 강하고 그만큼 판사들이 스스로에게 엄격하다”고 전했다.

 

◆“법관 탄핵, 사법 독립과 균형 필요”

 

“법관의 독립 원칙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법관 탄핵과 사법 독립의 밸런스가 필요합니다.”

바바 겐이치(馬場健一·59·사진) 일본 고베(神戶)대 법학연구과 교수는 8일 법관 탄핵제도와 관련해 사법 독립 원칙과의 균형을 강조했다. 일본 헌법은 법관의 독립적 업무 수행과 함께 국민의 탄핵권을 인정하는 법관 파면 조항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른 재판관탄핵법은 법관이 △직무상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거나 △직무를 심각하게 태만히 한 때 △기타 직무를 불문하고 법관으로서의 위신을 현저히 상실한 비행이 있을 경우를 탄핵소추 대상으로 하고 있다. 헌법에 직무 집행상 헌법·법률에 위배될 때 법관의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한 한국보다 탄핵소추 요건이 훨씬 넓다.

 

-일본의 재판관탄핵재판소와 검찰 역할을 하는 재판관소추위원회는 어떻게 구성하나.

 

“재판소는 중의원(하원), 참의원(상원) 각 7명, 총 14명의 국회의원으로, 소추위는 국회의원 20명(중·참의원 각 10명)으로 구성된다.”

 

-한·일 탄핵제도를 비교하면.

 

“일본이 한국보다 소추 요건이 폭넓다. 그래서 난용(亂用)될 위험도 크다. 소추 청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소추 청구에) 증거도 필요하지 않다.”

 

-법관 탄핵 사례는.

 

“소추 청구는 2만2000건 이상 있었다. 이 중 재판이 이뤄진 것은 9건이다. 전후 혼란기에 있었던 최초의 2건은 불파면이었고, 이후 7건은 파면됐다. 과거에 담당 사건과 관련한 이익 공여와 같은 오직(汚職)사건도 있었고, 21세기에 들어선 뒤의 3건은 아동매춘, 스토커, 도촬(몰래카메라)과 같이 한심스러운 사건들이다. 이렇게 탄핵재판은 누가 봐도 법관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킨 경우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법관의 잘못에 대해 처벌이 약하다는 등 사법 불신이 있다.

 

“예를 들어 수뢰는 명백한 범죄여서 탄핵에 부쳐도 좋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입증될 수는 없는 재판 업무 자체를 이유로 하는 탄핵소추나 탄핵을 쉽게 인정하면 난용될 위험이 있다. 정치적 이유로 법관을 탄핵하는 길이 열릴 위험이 있다. 일본에 법관 탄핵제도가 있지만 실제 발동은 극히 필요한 최소한의 경우에 국한돼 운영된다. 그렇다고(탄핵이 극히 적다고) 법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국민의 사법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탄핵제도를 활용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으로 보인다.”

 

-의원으로 구성된 탄핵재판소·소추위가 정당·정치의 영향을 받을 우려는 없나.

 

“1970년대 정부에 불리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담당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청구된 사건이 있다. 탄핵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법부는 큰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위헌심사가 감소했으며, 국회 측도 노골적인 재판 개입을 삼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현재 그런 문제는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자민당 체질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탄핵재판이 여당·정부에 의한 사법통제에 이용될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법관 탄핵제도의 개선점은.

 

“일본의 경우 법관 탄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법관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이용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법의 지배나 삼권분립이 파괴된다. 한국은 헌법재판소가 많은 위헌 결정을 내리고 일본보다 법원, 사법의 활약이 크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국회에 의한 탄핵재판을 활성화함으로써 한국 사법의 단점을 개선하려는 것이 거꾸로 (한국 사법의) 장점을 잃어버리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뢰판사, 美·英·佛선 ‘파면’ 가능한데… 韓은 고작 ‘정직 1년’ 

2016년 9월 억대의 뇌물수수 혐의로 현직 부장판사가 검찰에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많은 국민이 놀라거나 분노했고 사법부는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해당 판사에게 내려진 법원 차원의 징계는 정직 1년이었다. 이는 탄핵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법관에게 내려질 수 있는 최고 수위 징계다. 만약 같은 일이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영국에서 법관이 뇌물을 받았다면 파면(removal)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이소영 변호사(법무법인 루이스 실킨)는 8일 뇌물 같은 중대 범죄는 법관뿐 아니라 영국의 모든 법조인에게 자격 박탈 등 강한 제재가 불가피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영국에서) 법관의 비위는 상당히 드문 일”이라며 “법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대단히 높은데 이는 한국과 비교해 부러운 점”이라고 말했다.

 

법관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중시하고 판결에 대한 권위를 존중하며 그 신분을 두텁게 보장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올바로 작동하는 국가에서 공통적이다. 그만큼 법관들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언행을 삼가고 최선을 다해 공정한 재판을 해줄 것이란 기대가 크다. 그런데 자국의 법관이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런 기대와 어긋난 행위를 저지른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세계일보는 영국·미국·프랑스·일본 현지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거나 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의 도움과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4개 나라의 법관 징계제도와 징계 관련 법조계 기류가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다. 이들 나라는 법관 징계위원 구성이나 징계 청구권이 일반 시민에게도 열려 있고, 법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대체적으로 높았다.

 

◆법관 징계청구권 개방적이나 무분별한 청구 방지 장치 둬

 

우선 법관에 대한 징계청구권을 소수의 고위 법관이 독점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누구나 징계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과 미국에선 ‘법관이 비위행위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하는 누구나 법관행동조사국(JCIO·영국)이나 연방항소법원(미국)에 징계를 청구할 수 있다. 인종·성차별적 발언, 법관 지위 남용 등의 이유로도 징계 청구가 가능하다.

다만 두 나라 모두 무분별한 징계 청구를 방지하기 위해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징계 신청을 하지 못하게 했다. 미국은 대부분의 징계 신청이 조사 단계 이전에 각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시민에 의한 판사 징계 청원 제도를 신설한 프랑스도 사법절차의 본인 관련성만 인정되면 사법관이 직무 수행 중에 한 행위에 대해 징계를 청원할 수 있다. 이 역시 판결 내용에 관해선 불가능하며 청원심사위원회를 거쳐 최고사법관회의 회부 여부가 결정된다. 최고사법관회의는 법관 징계를 결정하는 독립적인 기구다.

 

외국은 법관 징계위원의 임명권을 분산시켜 징계위원 구성도 다양화했다. 대법원장이 외부인사 3명을 포함해 징계위원 7명 모두를 임명·위촉해 ‘폐쇄적’이란 지적을 받는 한국과 차이가 뚜렷했다.

가령 미국 뉴욕주는 법관 징계를 심의하는 법관윤리위원회 위원을 뉴욕주지사, 뉴욕주 대법원장, 뉴욕주 의회가 각각 4명, 3명, 4명을 지명하도록 한다. 11명의 위원 중 적어도 2명 이상은 비법률가로 구성된다. 프랑스 최고사법관회의 내 판사분과위원회 역시 판사와 변호사, 대통령·하원의장·상원의장이 사법부와 의회 바깥에서 2명씩 지명한 외부 인사 등 14명으로 꾸려진다.

 

징계 처분 범위는 대체로 넓었다. 한국은 최고 수위가 정직 1년이고 파면의 경우 국회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 심판 절차가 필요하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징계 처분으로도 파면까지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법체계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독일의 사법체계도 행정적 절차에 따른 법관 징계는 견책뿐이지만 징계소송을 통해 파면이나 해임이 가능하다. 법관이 형사처벌을 받으면 연금청구권도 잃을 수 있다.

 

일본은 징계 자체는 계고(경고)와 1만엔(약 10만6000원) 이하의 과료 두 가지밖에 없지만, 국민 누구나 국회 재판관소추위원회에 법관에 대해 탄핵 소추를 청구할 수 있다. 194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만2319건의 법관 탄핵 청구가 접수돼 9건이 일본 재판관탄핵재판소에 넘겨졌다.

◆외국도 법관 징계 활발하진 않아… 일본·영국은 법관 윤리의식 엄격

 

다만 외국이라고 법관의 일탈이 적다거나 징계가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미국은 법관에 의한 비위가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단히 심각한 비위가 아닌 이상 징계로부터 법관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미국의 저명인사들의 신상과 사건 내용을 알리는 ‘알코올 문제 및 해결’ 사이트를 보면, 미국에서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법관은 60명에 이른다. 미국에선 역대 15명의 연방법관이 탈세와 위증, 성범죄 등 사유로 탄핵 소추돼 8명이 인용된 바 있다.

 

안준성 미국 변호사는 “미국은 선거나 대통령 임명으로 판사가 되기 때문에 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국민이 기대하는 윤리의식 수준이) 여타 선출직 공직자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2010년 프랑스에선 부부싸움 도중 배우자를 때리고 흉기로 상해를 입힌 판사가 ‘연금 수령이 중지되지 않는 파면’ 결정을 받기도 했다. 2014년에는 판사가 인터넷에서 만난 12∼13세 아동과 성적인 대화를 하고 화상 카메라 앞에서 음란행위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해임되기도 했다. 김중호 프랑스 변호사(법무법인 아르케)는 “법관의 징계 과정이 외풍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화돼 있지만 (법관 징계가) 외부적으로 이슈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실제 판사책임에 대한 무거운 징계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법관 개인의 비위 행위가 사법부 전체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정해황 일본 변호사(법무법인 오르비스)는 “일본에서는 1981년 이후 부적절한 이익 수수에 따른 탄핵은 한 건도 없었다”며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판사가 뇌물을 수수했다’는 취지의 의혹 보도조차 접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소영 변호사도 “판사 임용심사 때 윤리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 영국에서 판사가 징계대상이 되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며 “영국에서 변호사와 판사로 수십년간 활동한 동료 변호사한테 물어보니 ‘뇌물수령이나 부패로 징계를 받았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각국 국제변호사에 설문, 징계 등 국내 사례와 비교

 

세계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등의 도움을 받아 각국 변호사 자격이 있는 국제 변호사들에게 법관 징계와 신뢰도에 관한 이메일 설문을 돌렸다. 이소영 영국 변호사는 영국법학대학과 킹스칼리지 런던을 나와 영국 현지 법무법인 ‘루이스 실킨’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일교포 4세인 정해황 일본 변호사는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일본 현지 법무법인 ‘오르비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중호 프랑스 변호사는 파리2대학 출신으로 김앤장 등을 거쳐 프랑스 현지 법무법인 ‘아르케’를 설립했다. 미시간주립대와 존 마셜 로스쿨을 나온 뒤 미국에서 김앤장 외국변호사로 활동한 안준성 미국 변호사는 현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로 있다. 이들에게 과거 한국에서 벌어진 1억원 이상 뇌물수수, 음주운전 등 사건들을 토대로 각국 법조계에서 예상되는 징계 처분과 법조계 분위기, 징계 사례, 징계제도의 특징 등을 물었다. 국내 연구로는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낸 ‘각국 법관 징계제도에 관한 연구’(2014) 보고서를 주로 참고했다.

 

◆제 머리 못 깎는 사법부… 85% “법관에 맞춘 징계기준 필요”

이용훈 대법원장이 2010년 1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사립학교 내 종교자유 문제에 대한 공개변론에서 자리에 착석하고 있다. 뉴시스

“법원 내부 자체 사정활동 강화 차원에서 법관 징계제도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1993년 5월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이용훈 서울지법 서부지원장이 “소속 법관들의 집약된 의견”이라며 꺼낸 말이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몰아닥친 사정 한파 속에서 법원 내부 우려가 담겨 있다. 이런 위기의식이 그해 6월 일어난 ‘3차 사법파동’의 도화선이 됐다.

 

“대법원장인 저는 전국의 모든 법관들과 더불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월이 흘러 사법부 수장에 오른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6년 9월 ‘법조 비리’ 사태에 연루된 부장판사가 검찰에 구속되자 “자성하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당시 이 대법원장이 내놓은 대책도 역시 감찰과 징계 강화였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이 터질 때마다 사법부는 번번이 ‘뼈를 깎는 쇄신’을 약속했다. 지켜지진 않았다. 그동안 폭행과 막말, 성범죄, 음주뺑소니 등 법관 범죄와 비위는 끊이질 않았다. 판사 2명이 억대 뇌물수수로, 전직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되는 ‘참사’까지 일어났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과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추진도 그 연장선이다. 사법부가 ‘제 머리 깎기’를 주저하는 사이 국민 신뢰를 얻을 기회는 점점 더 사라져만 갔다. 사법부와 법관이 이토록 빈번하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선진국은 찾아보기 드물다. 사법부 행태에 깊이 실망한 국민은 이제 말뿐인 약속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법관 징계, 누구보다 엄정해야”

 

전문가들은 법관 징계제도 개선이 사법부 신뢰회복의 첫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9일 세계일보와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공동기획하고 휴먼앤데이터가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전국 19세 이상 성인 1000명 대상)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70.9%가 범죄 판사에 대한 엄정한 징계가 사법부 신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았다. 재판 경험이 있는 응답자(76.5%)와 재판 경험이 없는 응답자(69.5%) 모두 긍정적이었다.

 

법관이 다른 직업보다 월등히 높은 윤리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여론은 뚜렷했다. 법관 징계 수준이 ‘다른 공무원보다 더 엄정해야 한다’는 응답(76.6%)은 ‘동일해야 한다’(19.7%), ‘가벼워야 한다’(1.3%)를 크게 앞질렀다.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일보 취재팀이 공무원 징계 및 윤리 전문가들과 역대 법관 징계 43건을 분석한 결과 26건(60.4%)이 다른 공무원과 비교해 ‘솜방망이’로 평가됐다. 징계 결과가 기준 없이 ‘고무줄’로 적용됐다는 지적이다. 법관 징계에 대한 양정기준이 법원 내부에 따로 없기 때문이다.

 

분석에 참여한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판사들처럼) 일부 공무원만 징계 수준이 유달리 낮다는 사실은 공직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판사 업무의 특성을 따져 부적절한 법정 발언 등 사례를 취합하고 유형화해 그에 맞는 징계 기준을 설정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설문에서 전체의 85%가 ‘법관에 관한 징계기준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81% “죄지은 법관, 파면돼야”

 

최근 법원 안팎에서는 국회의 법관 탄핵소추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헌법에 명시돼 있긴 하지만, 전례가 없었다. 자칫 탄핵이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징계’의 관점에서 국민들은 법관도 얼마든지 파면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다른 부처 공무원이라면 판면될 법한 중대 범죄도 법관이라는 이유로 정직 1년 이하로 비교적 가벼운 징계를 받은 게 사실이다.

 

국민들은 법관 징계 조항에 파면·해임이 없다는 사실을 다수(65.8%)가 몰랐다고 하면서도 뇌물수수나 음주뺑소니 등 중범죄를 저지른 경우 상당수(60.7%)가 파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공무원 징계 수준을 감안해 파면해야 한다’는 응답도 20.3%나 됐다.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답변은 14.3%에 그쳤다.

 

다만 법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징계수위에 대한 온도차가 있었다. ‘법원을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50.4%가 ‘파면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고 본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들의 22.1%만 자제해야 한다고 봤다. 법원을 신뢰하는 응답자들은 법관 징계제도 강화를 전반적으로 부정적으로 판단했고, 60대 이상일수록 그 기류가 뚜렷해졌다.

 

국민들은 탄핵 조건과 관련해선 ‘직무와 무관한 범죄나 비위도 조건이 돼야 한다’고 보았다. 찬성(69.6%)이 반대(20.1%)의 3배 이상이었다. 헌법은 ‘직무상 법 위배’만 법관 탄핵의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2006년 7월 정부와 국회, 대법원이 모여 개최한 ‘법조비리 근절 당정협의회’에서 법관의 파면·해임 등 중징계 신설이 논의됐지만 실현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연금 삭감·징계권 분산 등 필요해

 

개헌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법조계에선 법원과 국회가 보다 실현 가능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6년 대법원이 스스로 제시한 징계 법관에 대한 공무원 연금 및 퇴직수당 삭감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공직자에게 연금 삭감은 치명적이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법관 징계 수위를 ‘연금이 수령되는 파면’, ‘연금이 수령되지 않는 파면’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번 설문에서 전체의 77.9%가 ‘정직 6개월 이상 판사의 연금과 퇴직수당을 깎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법관 징계 강화에 대체로 부정적인 의사를 나타낸 60대와 70대 이상도 이 사안만큼은 각각 76.5%, 67.9%로 찬성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은영 휴먼앤데이터 소장은 “연금 삭감 등 눈에 보이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긍정 답변이 전체적인 제도 개선 응답률보다 높다는 점이 이번 조사의 특징”이라며 “사법부 독립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정일 교수, 강호석 변호사, 이유봉 연구위원(왼쪽부터)

대법원장이 사실상 독점하는 징계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지금은 법관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이 징계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 7명을 모두 임명·위촉하고, 불복 절차까지 관여한다. 다른 나라들은 입법·사법·행정부가 징계위원 임명권을 나눠 갖거나 법조계 외부 인사를 무조건 포함하게 하는 방식 등으로 징계위원회를 꾸린다.

 

강호석 인천시 행정심판위원(변호사)은 “징계위원장을 비롯해 징계위원 과반수가 대법원장 인사권의 영향을 받는 지위에 있는 등 독립성 및 공정성 측면에서 의문이 생기는 구조”라며 “징계위원 구성을 다원화하거나 독립된 징계위원회 설치 등이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장 등 소수만 가능한 징계 청구권의 확대도 방안으로 거론된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은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면 일반인도 법관에 대한 징계를 제도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 이번 설문에서도 ‘국민이 징계를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와 ‘법률 전문가 정도는 징계를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64.5%, 26.7%로 집계됐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다른 공무원이었으면 직위해제부터 됐을 범죄도 법관들은 감봉이나 견책만 받는 등 사회의 모범은커녕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왔다”며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법원이 먼저 스스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지난 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자동응답(ARS) 조사 방식(유선30%·무선70%)으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공공의창’은 15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인텔리서치·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타임리서치·휴먼앤데이터·한국사회여론연구소·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세종리서치·소상공연연구소·처음헌법연구소·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가 참여 중이다. 2016년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조사를 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매달 공익성 높은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재판거래’ 의혹 피해자 김승하 前 KTX 승무지부장 “법원 이제라도 바뀌어야 신뢰 회복” 

“법원이 이제라도 제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더 늦으면 답이 없을 것 같거든요.”

 

지난달 19일 취재팀과 만난 김승하(42·여·사진)씨는 법원에서 경험한 일을 떠올리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때는 법원을 철석같이 믿었다”는 그는 2006년 해고됐다가 2018년 복직한 KTX 해고 열차승무원 중 한 명이다. 출산예정일을 며칠 넘겨 만삭의 몸으로 나온 그는 “그때는 너무 순진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 사건의 당사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드러난 법원행정처 비밀 문건에는 그와 동료들이 1·2심에서 승소한 뒤 대법원에서 뒤집힌 사건이 등장한다. 해당 문건에는 “그동안 사법부가 VIP(박근혜 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해 온 사례”라며 그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그때를 떠올렸는지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심 승소 이후 받았던 임금과 법정이자는 1억원 가까운 빚으로 돌아왔다. 판결 보름 뒤쯤 동료 한 명이 세살배기 딸을 남겨둔 채 세상을 등졌다. 시간이 흘러 정권이 바뀌고 종교계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타협해 복직할 수 있었지만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그는 출산을 앞둔 얼마 전까지 동료들과 진상 규명을 외치며 거리에 나섰다. “사법농단 의혹 판사들이 징계나 법적 처벌 없이 법원을 떠난다는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저도 이제 나이가 마흔이 넘었어요…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별로 없을 것이란 건 누구보다 잘 알죠. 그런데 (대법원 판결 이후) 사람이 죽었잖아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만약 누군가 잘못이 있다면 최소한 책임은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는 출산 이후인 8일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지금이라도 법원이 반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막 태어난 아이가 나고 자랄 사회, 그리고 이를 지탱해야 할 법원이 신뢰를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싫다고 어디 훌쩍 떠날 수도 없는 일이고…. 아이랑 계속 이 사회에서 살아야 되잖아요. ‘최후의 보루’라는 법원이 흔들리면 누구를 믿으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는 법원 스스로 바뀌는 것이 어렵다면 외부의 힘을 받아서라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그렇고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매번 부정적인 것밖에 없는데 누가 법원을 신뢰할 수 있겠어요. 적어도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변화가 있었으면 해요. 꼭 좀요.”

 

법조팀=이창수·송은아·김선영·이창훈·이희진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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