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심 선고 전후부터
내연녀에 거액 현금·부동산 건네
법조계 “재산 분할 염두” 지적
현재 1100억대 재산 법정공방
증여 취소 후 재산정 여부 관심
범현대가(家)인 정몽익(59) KCC글라스 회장이 중혼(重婚) 상태인 내연녀에게 수백억원대 자산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정 회장은 아내 최은정(58)씨와 두번째 이혼 소송 중이다. 정 회장이 내연녀와의 사이에 자식을 두고 이혼을 원치 않는 부인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관련, 현행 가족법이 혼인 파탄의 책임이 없는 배우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 회장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내연녀 A씨에게 수십억원씩 수차례에 걸쳐 현금 100억원 이상을 증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모친인 조은주 여사도 2000년대 중반 A씨에게 현금 20억∼30억원 규모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증여 사실은 정 회장 부부의 1100억원대 이혼소송 등에서 언급된 적이 없는 내역이다.
이 외에도 A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빌딩, 삼성동의 아파트 등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권 부동산중개업계는 청담동 빌딩에 대해 140억∼150억원 수준, 삼성동 아파트는 15억∼17억원대로 각각 평가했다. 앞서 정상영 명예회장은 2017년 8월 KCC 계열사이던 KAC(코리아오토글라스주식회사, 이후 KCC글라스로 합병) 지분 5만주(0.25%)를 정 회장의 혼외자에게 증여한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형인 정몽진 KCC 회장도 2020년 4월 정 회장의 혼외자에게 KCC글라스 지분 17만여주를 증여해 입길에 올랐다. 정 회장의 혼외자는 현재 KCC글라스 지분 19만여주, 약 100억원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A씨와 혼외자 가족이 보유한 자산은 수백억원대로 추정된다. 법조계에서는 현금 증여 등의 경우 근거가 있다면 사해행위취소소송을 통해 재산을 원상 복귀시킨 뒤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따져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KCC 일가의 A씨, 혼외자에 대한 자산 증여가 본격화한 2015년은 정 회장이 아내 최씨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를 시작한 무렵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혼소송의 승패를 불문하고 종국적으로는 재산분할 다툼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증여일 가능성이 짙다”고 말했다. 또한 법조계 관계자는 “큰 흐름을 보면 정 회장 일가가 A씨에게 여윳돈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재벌가 돈 흐름치고는 독특한 양상”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외조카인 아내 최씨와 1990년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행복했던 것처럼 보이던 결혼생활은 정 회장이 2012년 1월 돌연 가출하면서 파열음이 났고, 이듬해인 2013년 정 회장이 최씨에게 이혼소송을 청구하면서 파탄을 향했다. 정 회장은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A씨와 2006년부터 교제했고 △2007, 2011년 혼외자 2명을 뒀으며 △2015년 A씨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을 전격 공개하며 “혼인이 사실상 파탄 상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2016년 혼인 파탄의 책임이 정 회장에게 있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고, 상고인(정 회장)의 상고 주장도 이유가 없다면서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정 회장은 3년 뒤인 2019년 다시 최씨를 상대로 이혼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례가 곧 변할 것”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최씨는 그간 “가정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다가 올해 초 이혼 반소(맞소송)를 냈다. 앞으로 정 회장과 최씨의 이혼소송은 정 회장 등 범현대가의 ‘축출이혼’(잘못이 없는 배우자를 내쫓는 이혼) 여부, A씨 및 혼외자가 축적한 재산의 재산분할 대상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의 재산은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 취재팀은 정 회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사실관계 여부 확인과 해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후 정 회장은 전화기를 꺼놓아 연락이 닿지 않았다. KCC글라스 측은 “회장님의 개인사여서 답변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특별기획취재팀=조현일·박현준·김청윤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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