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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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어록은 장중하다. 제자 공손추가 맹자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부동심(不動心)을 가질 수 있습니까?” 스승이 대답한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옳지 못하면 비록 천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양보를 하고, 스스로 돌이켜보아 옳으면 비록 천만 명일지라도 밀고 나가는 것이라네.” 부동심이란 어떤 일이나 외부의 바람에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한다. 부동심은 양심에서 생겨난다. 마음에 양심이 굳건히 뿌리내린 사람은 외부의 이해득실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심에서 마음 심(心)의 자리에 재산 산(産)을 놓으면 전혀 다른 뜻으로 바뀐다.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재산’을 가리키는 부동산(不動産)이 된다. 둘은 군자와 소인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소인은 부동산과 같은 재물의 이익부터 따지지만 군자는 이익에 앞서 의로움을 떠올리며 부동심을 지킨다. 만약 부동심보다 부동산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소인임이 틀림없다. 우리 위정자들이 딱 그 짝이다. 이들의 부동산 사랑은 뿌리가 아주 깊다. 전전임 정부의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농지 불법 취득으로 논란이 일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고 했다.

 

부동산 투기로 출당 권고를 받은 여당 의원들의 해명이 가관이다. ‘어머니’, ‘묘지’와 같은 전통 미덕과 효심을 자극하는 언어까지 등장한다. “암 투병 중 돌아가신 어머니 묘지용으로 땅을 샀다.” “시어머니 계실 집을 마련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얼마 전 ‘공직자 부동산 투기 근절 3법’을 공동 발의한 의원들도 있다. 어떤 의원 가족은 지분 쪼개기로 3년 새 10배의 수익을 올렸다. 앞에서 군자처럼 행세하고 뒤에선 소인으로 이익을 챙긴 셈이다. 우리 사회에 바이러스처럼 번진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더 볼썽사나운 일은 이들의 적반하장식 태도다. 한 의원의 남편은 “헛웃음이 나고 기가 막힌다”며 아내를 대신해 당 지도부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이철수 시인은 시 ‘땅콩’에서 이렇게 썼다. “땅콩을 거두었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된 놈! 덜 떨어진 놈!” 가슴에 부동심은 없고 부동산만 가득한 위정자들은 어떤 땅콩일까.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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