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문학’ 좁혀보면 자랑 못 해
지하철역에도 감흥없는 詩 보다는
문학적 자산 향유할 수 있길 바라
우리는 스스로 문화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찬란한 백제문화, 천년왕국 신라문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팔만대장경을 만든 고려의 불교문화, 조선왕조실록, 한글창제, 청자와 백자, 한복과 한식, 판소리와 사물놀이, 사군자와 민화, 성리학과 실학, 평시조와 사설시조…. 혹 자화자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문학으로 좁혀보면 우리가 대단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지하철을 애용하고 있는 나로서는 매일 시를 읽지만 마음이 착잡하다. 영혼이 상쾌해질 만한 ‘작품’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시민들의 시를 공모해 게재하는데 대체로 단순하고 소박하다. 창의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부천에서는 ‘시가활짝’을 공모해 전시하고 있지만 시라기보다는 경구에 가깝다. 경구여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향기를 맡기가 어렵기에 유리벽면이 아쉽기만 하다. 비용을 많이 들여 승객들이 읽으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왕십리역에서 김소월의 ‘왕십리’를 만나고 광화문역에서 서정주의 ‘광화문’을 만날 수 없는 것일까. 종로5가역에서는 신동엽의 ‘종로5가’를, 소요산 전역인 동두천역에서는 김명인의 ‘동두천’을 읽고 싶다. 종각역쯤에서는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의 한 부분을 읽고 싶다. 성북역에서는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를, 구반포역에서는 황지우의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를 읽고 싶다.
강우규 의사는 조선총독부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코 마코토를 암살하려고 남대문정거장에서 수류탄을 던졌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 시를 한 수 써 남겼으니 세상에 사표를 낸다는 의미의 ‘사세시’이다. 서대문역의 유리벽에 이 시와 시를 쓴 유래가 적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보성고등학교 교정에는 김기림과 윤곤강과 김광균의 시비와 이상문학비가 있다. 대학로에 가면 윤선도 시비, 김광균 시비, 함석헌 시비를 볼 수 있다. 7호선 수락산역 3번 출구로 나가면 수락산 디자인거리 끝나는 곳에서 천상병 숲길이 시작된다. 천상병공원도 있다. 지하철역에 그런 곳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으면 좋으련만. 명동역에서 박인환의 시를 한 수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문화나 문학을 제대로 향유하고 있는가.
고속버스를 타고 원주에 간다고 하자. 내리기 5분 전쯤에 이런 말이 버스 안에서 나온다면 얼마나 좋으랴.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에 정착한 것은 1980년이었습니다. 여기서 토지 제4부와 5부를 쓰셨습니다. 원주시 흥업면 매지회촌길 79에는 토지문화관이 있는데 여기서는 여러 가지 문학 관련 행사도 행해지지만 작가들에게 집필공간이 제공됩니다.”
우리가 과연 문화민족이라 할 수 있을까. 문화콘텐츠, 문화예술, 문화경영 같은 말을 자주 입에 올리지만 문화가 시민들 사이를 파고드는 일은 거의 없다. 지하철 유리벽에 시를 전문 싣기 어렵다면 한두 개 연이라도 실으면 된다. 바로 그 지점, 그 역을 다룬 시가 유명한 시인의 시가 아니더라도 그곳의 특성을 잘 살렸다면 찾아내어 실어주면 좋겠다.
경기도 안성에는 조병화문학관과 박두진문학관이 잘 관리되고 있고 정진규 시인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삼일운동기념관도 있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것이 아니라 이런 곳을 둘러보는 것이 진정한 산교육일 것이다. 인천 박물관 투어도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들께 권한다. 잘만 하면 김유정문학촌과 이효석문학관과 춘천전쟁기념관을 하루에 볼 수 있다. 오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오후에 용산전쟁기념관에 가면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문화민족은 조상이 이룩한 문화를 즐기는 민족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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