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軍 안이한 대처 겸허히 수용”
김 총리·서욱 국방 대국민 사과
승조원 전원 치료센터 등 격리
거세지는 ‘서욱 국방 문책론’
2020년 9월 취임 후 6번째 대국민사과
사전에 발견·조치 못한 사례 반복돼
“청해부대 코로나 대비 치료제 전무
고열에도 감기약 한두 알 처방 고작”
野 “정권 무사안일주의가 빚은 대참사”
최재형 “책임을 져야 할 분이 침묵해”
文 대통령·군 당국 책임 물으며 맹공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승선 장병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사태와 관련해, “군이 신속하게 군 수송기를 보내 전원 귀국 조치를 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했다”면서도 “국민의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러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청해부대 집단감염이 알려진 지난 16일 공중급유수송기 투입을 지시한 이후 나흘 만에 내놓은 발언이다. 군 당국을 향한 질책성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야당 등의 요구에는 침묵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화상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치료 등 조치에 만전을 기하고, 다른 해외파병 군부대까지 다시 한번 살펴주기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병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에게 상황을 잘 전달하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차제에 우리 공관 주재원 등 백신 접종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의 안전대책도 함께 강구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앞서 김부겸 국무총리는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우리 장병들의 건강을 세심히 챙기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에 청해부대 내 장병의 급작스러운 교대로 인해 임무 공백이 없도록 후속 조치를 철저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날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브리핑룸에서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을 보다 세심하게 챙기지 못해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해 국방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대국민사과를 했다. 서 장관은 “해외파병 부대원을 포함한 모든 장병들의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으나 지난 2월 출항한 청해부대 장병들에 대한 백신접종 노력에는 부족함이 있었다”며 관련 대책을 철저하게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공군 공중급유수송기 KC-330을 타고 전날 아프리카 현지를 출발한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은 이날 오후 5시30분 경기 성남 서울공항으로 귀국했다. 감염병으로 인해 파병 임무를 중단하고 복귀하는 일은 전례가 없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청해부대 내 군의관을 통해 현지에서 중등도 분류를 했다”며 “중등도 이상인 14명은 국군수도병원 등 2곳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나머지 289명은 국방어학원 등 생활치료센터 2곳으로 나뉘어 입소한다”고 설명했다.

◆성추행·집단감염… 매번 경고음 놓치고 사고 터져서야 ‘뒷북’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서욱 국방부 장관이 20일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하면서 리더십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는 서 장관의 발언은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여섯 번째 사과다. 서 장관이 고개를 숙이는 일이 반복되자 야당 등을 중심으로 서 장관에 대한 문책론도 거세지고 있다.
◆군 관리도 안 되는 상황… 책임론 부상
서 장관은 이번 사과에 앞서 사과 발언을 반복해 내놓았다.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북한 귀순자 경계 실패(2월 17일), 부실급식·과잉방역 논란(4월 28일),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6월 9일과 10일, 7월 7일)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임기 1년이 안 남은 문재인정부에서 서 장관이 직면한 리더십 논란은 이례적이다. 기본적으로 정권 말기의 국방부 장관은 관리형 직책에 가깝다. 그런데 서 장관 임기 동안 경계, 인권보호, 코로나19 방역 등 엄중한 관리가 요구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지휘력 부재’ 비판에 직면한 이유다.

이례적이지만, 이번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 장관 재임 기간 동안 문제점 사전 포착→대응→재발방지로 이어지는 군 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부실급식 문제의 경우 논란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나서야 대책이 제시됐다.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도 세부 내용이 외부에 공개된 직후부터 수사가 빨라졌다.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에서도 장병들이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호소했지만 간부들이 외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국회에서 청해부대 승조원의 아버지와 통화한 내용을 공개하며 “고열에 시달리는 청해부대 병사들은 ‘코로나 같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간부들은 ‘코로나는 사람 통해서 옮는데 독감 기운 있는 병사들은 외부인 만난 적이 없으니 코로나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청해부대에는 코로나19에 대비한 산소도 없었고 치료제는 전무했다. 하루에 감기약 한두 알 처방이 고작이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 발생 가능성이 높은 부대에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구비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하지만 해군은 지난 2월 출항한 청해부대 34진에 신속항체검사 키트 800개를 보급했다. 신속항체검사 키트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면역반응을 확인하는 것으로 감염 판별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해외 파병부대 방역대책에 허점이 있었는지를 군 코로나19 대책 컨트롤타워인 국방부가 사전에 철저히 점검해야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야당 “무사안일주의가 빚은 대참사”
야권 등은 문재인 대통령과 군 당국에 방역실패의 책임을 물으며 비판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청해부대 장병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은 이들이지만, (군 당국이) 코로나 방역이라는 이름 아래 미흡한 점을 보인 게 사실”이라며 “더 이상의 실수를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청해부대 감염사태는 문재인 정권의 정치방역, 무사안일주의가 빚은 대참사”라며 “이제라도 국방장관, 합참의장을 즉각 경질하고 대통령이 총체적 방역실패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는 게 도리”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가장 책임을 져야 할 분이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계신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며 “그건 정말 국민에게 너무 실망스러운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청해부대에 왜 백신이 전달되지 않았는지, 국방부와 질병관리청 중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청해부대가 왜 나라 없는 부대처럼 방치가 됐는지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국방부와 합참, 해군에서는 이번 집단감염과 관련,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현재까지 보이지 않고 있어 정치권의 책임론 제기를 중심으로 한 압박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가랑비에 옷 젖는다’(조금씩 문제가 생기다가 큰 화를 입는다는 뜻)는 말처럼 사건이 계속 일어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서 장관과 국방부의 정치적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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