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합계출산율 2040년 1.27”
韓 10년간 감소폭 32국 중 ‘일등’
“중·고소득 국가선 급반등 어렵다”
한국의 지난 10년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감소폭이 주요 32개국 중 가장 가파른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정부의 연구 의뢰를 받은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분석 결과다. 이 연구소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2040년 1.27로 반등할 것이란 우리 정부의 장래인구추계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22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PIIE는 기획재정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코로나19 대유행의 광범위한 영향: 한국의 재정 전망 및 출산율 전망’ 보고서를 지난달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0년 1.23에서 지난해 0.84로 10년 동안 32% 급감했다. 주요 20개국 협의체(G20)를 포함한 32개국 중 가장 가파른 감소세로, 30%대는 한국이 유일하다.
32개국 중 헝가리(27%)와 독일(7%) 등 5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난 10년 사이 합계출산율이 감소했다. 감소폭은 한국에 이어 홍콩(29%)·뉴질랜드(26%)·마카오(25%)·말레이시아(22%)·중국(20%)이 20%대를 기록했고, 스웨덴(16%), 스페인·이탈리아(12%), 프랑스(10%) 등 12개국은 10%대였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알려진 일본은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이 1.38에서 1.35로 줄어 감소율이 2%에 그쳤다.
정부는 합계출산율이 2040년까지 1.27로 51% 반등할 것으로 전망한다. 통계청은 2019년 장래인구추계에서 합계출산율이 2021년 0.86까지 떨어졌다가 2028년 1.11, 2040년 1.27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2040년 정부 전망치인 1.27명은 현재 일본의 합계출산율보다도 낮지만, PIIE 보고서는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비개발도상국의 급격한 출산율 반등은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 등 옛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발생했다”면서 “한국 정부가 예측한 규모의 합계출산율 반등은 중·고소득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매우 힘들다. 가능하다면 전례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덴마크가 1938년 1.38에서 2008년 1.89로(37% 증가), 스웨덴이 1999년 1.50에서 2010년 1.98로(24% 〃) 합계출산율이 반등한 사례가 있지만 한국은 이런 기대를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회안전망, 보육 지원, 사회 규범 등이 크게 다른 데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이들 국가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코로나19는 한국의 재정 상황을 크게 악화시키지 않았지만 이전부터 겪어오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급격한 인구구조 변동을 가속화했다”며 “생산인구 감소가 한국 경제에 코로나19보다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용혜인 의원은 “출산율 제고가 국가의 최우선 목표일 수는 없다”면서도 “출산율 감소 원인은 국민의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를 시정한다면 출산율 반등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사노동 불균형에 결혼 기피… 높은 자녀 교육비도 원인”
‘여성의 과도한 가사노동 부담’,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비 부담’, ‘고학력 여성의 결혼 기피’, ‘혼인한 부부 외 가정에서 양육되는 자녀에 대한 법적·사회적 차별’.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꼽은 한국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기간에 해소하기 힘든 데다 출산율 반등을 꾀할 수 있는 다른 방안도 마땅치 않아 단기간 내 출산율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PIIE의 전망이다.
22일 PIIE는 ‘코로나19 대유행의 광범위한 영향: 한국의 재정 전망 및 출산율 전망’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근거로 들며 “한국 여성이 일상적 가사의 85% 정도를 맡는 등 부담이 커 결혼을 주저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은 대학 교육을 마친 25∼34세 여성 비중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점(2019년 기준 76%)을 거론했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고학력 여성은 결혼의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적게 느낀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무급 가사노동의 불균등 분배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 여성이 남성과의 결혼을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혼외 출산이 2.3% 수준에 그치는 등 혼인율 저하는 출산율 하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높은 교육비 부담도 저출산 경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2017년 기준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총 가계 교육 지출은 모든 교육 과정을 통틀어 학생 한 명당 3000달러(약 350만원) 이상이었다. 이는 일본,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부분 OECD 국가보다 훨씬 높다. PIIE는 “가처분소득 백분율로 보면 칠레와 영국을 제외한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교육비 지출 경향은 아이를 2명 이상을 갖는 데 ‘경제적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인 최모(34)씨는 결혼 전만 해도 아이를 두 명 낳을 생각이었지만, 첫 아이 출산 후 둘째는 ‘포기’했다. 최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생활이 쉽지 않아서 둘째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도 많아서 한명만 잘 키우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PIIE는 “한국의 출산율 저하 경향은 쉽게 역전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의 보육 서비스에 대한 공적 투자 제고, 고등교육의 사적 비용 절감이 일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출산율 침체 현상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혼인율과 출산율 제고를 위해 직접적인 재정 인센티브 제공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출산율 하락 경향을 바꿔놓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출산율 반등을 위해 쓸 수 있는 뚜렷한 공적 지출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PIIE는 한국 정부에 “출산 수준의 단기적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인정하고 한국의 조기 보육 및 교육 기관의 구조조정과 축소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저출산 경향을 강화하는 사회규범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혼인 부부 외 자녀에 대한 법·사회적 차별도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만큼 △결혼 이민 장려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 자녀에 대한 시민권 부여 △혼인 부부 외 자녀에 대한 법적 차별 금지 등을 제안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가사노동의 성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 일터에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야 한다”며 “소득 감소 없이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도입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보고서의 저출산 원인 분석이 일차적 분석에 그친 데다 남성의 결혼 기피 경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가사 부담이나 교육비 부담 등에 대한 분석은 맞긴 하지만 일차원적인 수준에 그친 것 같다”며 “현재 젊은 세대가 짊어진 물질적 부담과 함께, 이들이 양육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부담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균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저출산은 (보고서가 언급한 문제들보다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며 “청년 일자리 문제, 청년 주거 문제 등 여러 요인이 다 결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고서는 ‘고학력 여성의 결혼 기피’에 주목했지만 이는 남녀 모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여성이 가사 부담 등의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는 만큼 남성도 전통적 문화로 인한 내 집 마련 등의 부담으로 결혼을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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