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 어려워 소각 처리 병뚜껑 등
작은 크기 플라스틱 쓰레기 수집
재질별 분쇄해 새로운 제품 만들어
방앗간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서울 충무로 한 사무실. 창가 쪽에 놓인 분쇄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분쇄기를 들여다보니 곡물을 빻는 게 아니다. 플라스틱 뚜껑들이었다. 잘게 부스러진 플라스틱 조각들이 쌀가루마냥 쏟아져 내렸다. 이곳은 서울환경연합이 지난해 7월부터 운영 중인 ‘플라스틱 방앗간’이다.
플라스틱 방앗간에서는 시민들이 모아준 병뚜껑을 분쇄해 가열한 뒤 성형 과정을 거쳐 치약짜개나 벽에 붙여서 쓰는 물품 걸이를 만들어 낸다.
“시민이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 중 병뚜껑같이 작은 플라스틱은 재활용 선별장에서 분리하기가 어려운 탓에 소각처리되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결과물이 플라스틱 방앗간 프로젝트입니다.”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홍보팀장의 설명이다.
병뚜껑은 일반 시민이 참가하는 ‘참새클럽’을 통해 모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라는 속담에서 따온 이름이다. 플라스틱 병뚜껑은 PP(폴리프로필렌)와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재질로 된 것만 받는다. 가공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이 가장 낮은 재질이기 때문이다.
휴일 오전 다시 찾은 방앗간에서는 참새클럽 참가자들이 각자 모아 온 병뚜껑을 색깔과 재질별로 분류해 상자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방앗간을 찾은 장예린 학생은 수능 준비에 바쁜 고3 수험생임에도 집과 학교에서 모은 병뚜껑을 한 바구니 꺼내 놓았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대학도 환경과 관련된 전공을 택해 진학할 계획이라고 했다.
주부 김지연씨는 태평양‘에 한반도 면적의 7배나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 플로깅(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하며 플라스틱을 모으다 보니 환경문제에 대해 잘 모르던 남편도 ‘오다가 주웠다’며 직장에서 모은 병뚜껑이 가득 든 봉투를 내밀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그 어떤 선물보다 더 값지게 느껴지죠.”라며 김씨가 환하게 웃는다.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로 플라스틱 방앗간 운영을 맡은 김자연씨는 “플라스틱 재활용은 플라스틱 오염에 대처하는 활동의 한 부분일 뿐”이라며 소비단계에서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임을 강조했다.
이날 늦은 오후까지 이어진 발길로 방앗간 상자는 병뚜껑으로 가득 찼고 더불어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태는 참새들의 노력도 함께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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