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 감염 후 사망 땐 더 큰 죄책감
눈치 보여 부고도 못 내고 조용히 장례
“자살자 유족처럼 자책 극심… 대책 필요”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한이 되지만, 저희 가족은 유골이라고 모시고 장례를 치를 수 있었으니 불행중 다행이었죠. 코로나 유행 초기였다면 장례식장도 못구했을 거에요.”
이성윤(46·가명)씨는 지난 2월 70대의 나이에도 지병 없이 건강했던 아버지를 갑자기 떠나보냈다. 임종은커녕 돌아가시기 전 5인이상 집합금지 조치에 이어 아버지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두 달 넘게 만날 수 없었다. 한 차례 고글과 마스크, 방호복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수면치료 상태인 아버지를 잠깐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얼굴을 부비지도, 손을 잡지도 못했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인사도 주고받지 못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감염 직후부터 중환자실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철저하게 격리돼 고독한 죽음을 맞는다. 코로나 병동 환자들에게는 의료진만이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다. 가족들 역시 준비없이 갑작스런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
코로나 병동 중환자실에 근무중인 서이영 간호사(28·가명)는 “기저질환이 있었거나 암 등으로 사망하면 환자나 가족들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교통사고처럼 느닷없이 코로나에 걸리면 보건소 연락받고 끌려오듯 격리되고, 면회도 제대로 못한채 돌아가신다”며 “특히 가족으로부터 감염된 어르신이 사망하면 유족들 죄책감이 더 커서 너무 안타깝다. 보호자들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이 씨의 말처럼 그의 가족은 잠깐이라도 면회할 수 있었고, 장례도 큰 어려움 없이 치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난해에는 감염 우려 때문에 코로나19 환자 면회를 아예 금지한 병원이 많았다.
대학병원에 근무중인 박현아 간호사(47·가명)는 “작년에는 (환자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가족들을 오지 못하게 했다“며 “당시만 해도 아무 정보도, 매뉴얼도 없이 맞닥뜨려서 (가족들이) 밖에서 보는 것도 안된다고 말씀드려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면회가 안되니 핸드폰으로 음성을 녹음해서 부모님께 들려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계셨다”면서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한 것을 녹음하거나 아기들의 동영상을 찍어 보내기도 하고, 가족 사진을 옆에 놓아달라고도 한다”고 전했다.
일부 병원이나 요양원은 보호자실에 마련된 모니터나 폐쇄회로TV(CCTV) 등을 통해 환자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비대면 임종’을 허락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임종이 가까워지면 가족들이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확인을 받은 후 독립된 공간에서 N95 마스크와 방수성 긴 팔 가운, 일회용 장갑, 고글, 신발 커버 등을 착용하고 제한적으로 면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환자의 증세가 갑자기 악화해 사망하면 한 집에 살던 가족들은 감염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느라 면회는커녕 비대면 임종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장례식도 쓸쓸하다. 보건복지부의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는 ‘선 화장, 후 장례’가 원칙이다. 가족 입회 하에 진행하던 염습이나 입관식 모두 생략하고, 곧바로 화장한다. 유족들은 정성스레 준비한 수의를 입히지도 못하고 고인 없는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장례식장 인원 제한 조치가 내려지고, 감염 우려와 사회적 낙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부고도 마음 놓고 내지 못했다.
15년 경력의 김신 장례지도사는 “작년에 요양원에 계시던 분들은 코로나 시작할 때부터 면회가 통제되면서 몇달간 면회를 못했다”면서 “그러다가 갑자기 코로나로 사망하면 사실상 반년 이상을 얼굴도 못 봬고, 임종도 못 지키고, 염습도 못 보고 갑자기 화장장에서 유골로 만나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그 유족들의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사망자가 2000명을 넘었으니 유족이 못해도 1만명은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감염 확산 막기도 힘드니 신경을 못쓰겠지만, 나중에 사회적으로 유족들 트라우마를 치료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유족의 상처와 심경은 자살자 유족과 비슷하다”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보통 장례를 치르면서 지인들이 조문하고 위로하며 유족이 슬픔을 극복하는데 그 과정을 할수 없게 돼 계속 마음에 남아 있게 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코로나 사망자도, 유족도 피해자인데 주변 눈치를 보거나 사회적 낙인을 걱정하는 상황”이라며 “유족들이 상실감과 ‘잘 보내드리지 못 했다’는 죄책감을 덜 수 있도록 정부에서 조용히 정리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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