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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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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08 07:41:00 수정 : 2021-09-08 10: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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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문득 발을 멈춘 것은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로 자작자작 물이 밟혔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어느 틈에 발등까지 물이 차올랐다.”(9쪽)

 

작가 한강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직후인 2014년 6월말 이상한 꿈을 꿨다. 작품을 쓸 동안에는 직접적인 폭력이 나오던 꿈이, 시간이 흐르면서 상징적으로 바뀌어가더니, 결국 다다른 꿈이었다. 언젠가 소설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는 꿈을 기록했다.

 

“시간이 없었다. 이미 물에 잠긴 무덤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위쪽에 묻힌 뼈들을 옮겨야 했다. 바다가 더 들어오기 전에, 바로 지금...어쩔 줄 모르는 채 검은 나무들 사이를, 어느 새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달렸다.”(10쪽)

 

장편 '흰'을 쓴 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작별'을 잇는 ‘눈 3부작’의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글쓰기를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제주 바닷가에서 잠시 월세 생활을 할 때 방을 내줬던 주인 할머니의 기억이 포개지는데.

 

“어느 날, 주인 할머니가 짐을 들고 가야될 곳이 있다며 도와달라고 해서 함께 걸었지요. 지름길로 가는 골목길을 걷는데, 할머니가 별안간 멈춰서더니, 이 담이 4·3때 사람들이 총을 맞아서 죽었던 곳이야, 라고 설명하더라고요. 눈부신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생생한 실감으로 다가왔어요.”

 

그 사이, 지금 무슨 소설을 쓰고 있느냐, 라고 사람들이 물으면 대답하는 게 늘 곤욕이었다. 어떨 때에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했고, 어떨 때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 설명했으며, 어떨 때에는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 답했다.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 맨부커 국제상을 받으며 최근 가장 주목 받는 한국문학 소설가로 자리잡은 한 작가가 5년 만에 신작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를 출간했다. 신작은 잡지사 기자 출신 작가 경하를 내세워 제주 4·3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들의 길고 고요한 투쟁 서사를 시적으로 담았다.

“제 마음에서 자라났던 꿈의 장면과 1990년대 할머니와 함께 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만나면서 이 소설을 쓰는 게 가능했어요. 이 소설은 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하나의 물성을 가진 책으로 손에 쥐어져서 감사하고 뭉클합니다.”

 

경하는 한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룬 소설을 2014년 발표한 이후 악몽에 시달린다. 4년이 흘러 손가락을 다친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인선이 키우던 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쉼 없이 이어지는 폭설과 강풍, 여기에 발작적으로 찾아오는 고질적인 두통, 집까지 이어진 어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경하는 인선의 집에서 제주 4·3에 쓰러진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

 

온 가족을 잃고 15년을 감옥에 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눈물을, 부모와 동생을 한날한시에 잃어버리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슬픔을, 오빠의 행적을 찾아 수십 년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온 어머니 정심의 고요의 싸움을.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87쪽)

 

이 사이, 주인공은 경하인 것 같다가 친구인 인선인 것 같다가 다시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되어간다. 정심의 지극한 사랑은 간절하기에 때로 무서운 고통이 된다.

 

“엄마가 쪼그려 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0-311쪽)

 

그럼에도 인선은 어머니의 삶이 자신의 그것으로 스며오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사랑을 외면하지 못하고, 경하 역시 인선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겹쳐지며 힘겨워하면서도 내치지 못하는데.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이 이끄는 소설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환상성까지 더해진다. 경하와 인선이 연결돼 있는 실, 인선 어머니와 연결된 실,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가 죽은 사람들과 연결된 실이 하나로 연결되는. 실에 전류가 통하고 생명이 도는.

 

“저는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두 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만의 삶이 아닌 여러 개의 삶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동시에 살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내가 여기에 있지만 동시에 있는 것이고, 그 상태가 초자연성을 가지고 있지요.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마음이 그러한 간절한 상태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불가능하지만 애써봤던 소설입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했다. 사랑에 대한 소설을 넘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 201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일부가 실렸고, 처음 중편으로 예상했다가 분량이 길어지면서 장편으로 방향을 튼 작품이다.

 

‘글을 쓰는 것은 서성거리는 것 같다’는 한 작가는 7일 열린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표제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에 대해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다”며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평론가 신형철은 ‘작가가 소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취지로 얘기했는데.

 

“저는 제주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쓸 마음이나 계획이 따로 없었는데, 이 소설을 쓰게 됐다. 어떤 모티브나 장면이 떠오르고 시간이 흘러서 문뜩 이런 의미구나, 내 소설은 여기로 가는구나, 라고 알게 되는 순간, 이상한 각성의 순간 같은 것이었다. 제가 온전히 의도한 것도, 제에게 알려준 것도 아닌.”

 

그러니까, 이는 강렬했던 꿈, 그 장면에 이끌려 제주 4.3을 쓰게 됐을 뿐, 애초부터 쓰려고 작정하거나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쯤 될 터다.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지극한 사랑의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한 것인가.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가 정심이라고 생각하고 그 마음으로 살려고 했다. 모든 소설가들이 인물을 생각할 때 하는 일들을 했다.”

 

―2014년 첫 두 페이지를 썼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인가. 무엇이 어려웠고, 어떻게 극복했는가.

 

“장편 '흰'이나 눈 3부작의 두 작품을 썼고, 1년 넘게 공백기도 있었고,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을 쓰게 됐다. 게다가 이번 소설은 여러 가지로 자료를 많이 읽어야 했다. 특히 자료가 많이 필요했던 시기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초기로 도서관들도 문을 닫아서 최대한 출간된 단행본을 읽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년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소설가인 아버지 한승원씨의 영향으로 늘 집에 책이 많아서 책과 함께 울고 웃었다. 편두통에 시달렸던  그에게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생활이자 놀이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4세 때 그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2017년 영국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그때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들도 해답을 찾고 있지만 결론은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들은 작품을 썼다. 나라고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단 이후 한강은 장편 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휜' 등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등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펴냈다.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 많을 받았고, 특히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한국 작가로 처음 수상했다.

 

‘일관되게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 삶의 비극성을 집요하게 탐구’, ‘촉각적 세계 인식과 소통의 감수성’(양현진), ‘합리적 현실을 횡단해 복수 코드적 환상을 통해 에로스의 회생을 모색’(나병철) 등 그의 작품과 문학세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강의 문학 세계는 환상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쪽에 가깝고, 세계 작가적 감성도 갖고 있다고 평하기도.

 

“조심스럽지만, 낡은 세대인 저의 느낌대로 말한다면, 그의 작품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신화적이고 환상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측면이 있다. 고발 형식이 아니고, 자유와 민주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섬세하게 정서적으로 보여준다.”

―소설 문장을 쓸 때 낭독하기 좋은 문장이 되도록 신경을 쓰는지.

 

“소설을 다듬을 때 소리 내서 읽을 때가 많다. 그냥 쓸 때는 몰랐지만, 소리 내서 읽어보면 자연스러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읽어서 자연스러울 때까지 굴리면서 고치는 편이다.”

 

“소설을 쓸 때 생각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거의 항상 세 편 정도 밀려 있어요.” 한 작가는 차기작을 묻는 말에 서너 편의 작품을 생각하고 있다며, 죽음의 방향이 아닌 삶의 방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소설을 쓰면서 하루하루 자신 안에 부서지지 않는 무엇인가에 다가서는 느낌을 받고, 편두통과 육체적 허약함이 오히려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는 작가는 벌써 다음 작품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죽음에서 삶으로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쓰려고 하는 소설은 다른 방향이 될 것 같아요. 몇 개의 이야기가 지금 맘속에 맴돌고 있는데, 결은 이번 소설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2021.9.8)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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