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마스크 강제로 못 벗겨
‘스스로 얼굴 공개’ 2021년 7명 중 3명
강윤성 과거사진·고유정 커튼머리
“신상 공개 취지 퇴색” 지적 나와
“국민 분노 해소·여죄 제보 효과”
“범죄예방 실익 없어” 의견도 분분
“신상공개의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과 같은 ‘머그샷’을 원합니다.“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글이다. 머그샷은 피의자를 경찰서 유치장 등에 구금할 때 촬영하는 사진이다. 청원인은 “신상공개가 결정되더라도 피의자들이 머리카락,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얼굴을 제대로 본 적 없다”며 “범죄자 인권보다 사회 안전이란 공익이 중요하다. 머그샷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20개월 아이 성폭행·살해 사건, 전자발찌 훼손·살해 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신상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제도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신상을 공개하고, 그마저도 옛날 사진이 공개돼 신상공개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지침 때문에 신상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도 마스크를 쓰고 카메라 앞에 서는 상황이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올해 신상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는 △김태현(노원구 세 모녀 살해사건) △허민우(인천 노래방 살인사건) △백광석·김시남(제주 중학생 살해사건) △최찬욱(아동 성착취물 제작 사건) △김영준(남성 1300명 알몸 불법 촬영·유포 사건) △강윤성(전자발찌 훼손 및 여성 2명 살해사건) 총 7명이다. 경찰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심의위원회를 거쳐 이름·나이·얼굴을 공개한다.
신상이 공개된 7명은 검찰 송치 시 언론 포토라인에 섰지만 이중 ‘맨 얼굴’이 공개된 것은 김태현·허민우·최찬욱뿐이다. 경찰은 피의자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마스크 착용을 원할 경우 막을 수 없다는 방침이어서 마스크를 벗는 것은 피의자 의지에 달렸다. 백광석·김시남·김영준·강윤성은 취재진의 요구에도 끝내 마스크를 벗지 않아 ‘반쪽 신상공개’란 지적이 나왔다. 직장인 A씨는 “정치인이 연설하거나 연예인이 촬영할 때 등에는 예외적으로 마스크를 벗는데 신상공개된 피의자도 잠깐이라도 마스크를 벗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밖에 2019년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은 마스크를 쓰진 않았으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려 얼굴 노출을 피한 바 있다.
경찰은 증명사진을 공개하지만, 대부분 오래전 찍은 사진이다. 50대 후반인 강윤성도 현재 얼굴과 다른 사진이 공개돼 공개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상공개 자체가 제한적으로 이뤄진다는 비판도 많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20개월 여아를 끔찍하게 학대하고 성폭행해 살해한 아동학대 살인자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원에는 이날까지 15만8000명이 동의했다. 경찰에 따르면 양모(29)씨는 생후 20개월 의붓딸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의 끔찍함이 알려지면서 신상공개 여론이 높지만 신상공개는 어려울 전망이다. 신상공개 심의위는 검·경 수사단계에서 열리는데 양씨는 7월 입건된 뒤 이미 재판에 넘겨져 심의위를 여는 것이 불가능하다. 경찰은 수사 초기 양씨가 받았던 아동학대살해 혐의는 신상공개 대상 범죄(특정강력범죄·성범죄)가 아니고, 성폭행 혐의는 증거 등이 확실하지 않다고 보고 신상공개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살해도 신상공개 대상에 넣는 등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머그샷 공개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범죄 종류에 상관없이 경찰에 체포되면 머그샷을 대중에 공개한다. 반면 한국은 머그샷을 찍지만 공개하지 않는다. 직장인 이모(37)씨는 “뉴스를 보면 다른 나라에서 절도를 저지른 피의자 얼굴도 볼 수 있는데 정작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죽이고 아이를 성폭행한 흉악범 얼굴은 못 보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은 갈린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권력이 피의자 중심으로 가선 안 된다”며 “신상공개를 통해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흉악범 얼굴을 국가가 가려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신상공개는 여죄 수사, 제보를 받는 목적에도 부합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예현)는 “신상공개는 헌법에 명시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거된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대중의 궁금증을 푸는 것 외에는 범죄예방 등의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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