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대부분 계단 밑 휴식
‘방문서비스’는 고객 집 계단 이용
‘가전·통신’은 업무 공간도 창고
2022년 8월 휴게실 설치 의무화에
근무조건 변경 등 꼼수 움직임도

“추운 겨울날 비품창고에서 담요를 두르고 앉아 쉬다가 펑펑 운 적도 있습니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변인선 미화분과장은 13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육원에서 열린 ‘휴게실 실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 “학교 어디에도 청소노동자들이 편안하게 쉴 공간이 없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학교 측이 교직원 당직실을 휴게실로 쓰라고 했지만, 여기는 남녀 공간이 분리돼 있지 않아 여성 노동자가 마음 편히 옷도 갈아입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곰팡이 냄새가 나고 냉난방 시설이 없는 계단 밑이나 창고 등에 쪼그려 앉아 ‘휴식 아닌 휴식’을 한다고 덧붙였다.
변 분과장은 “학생 수가 줄면서 빈 교실은 늘어나는데 우리를 위한 공간은 마련해주지 않는다”며 “학교는 학생들과 선생님만 있는 곳이고 우리는 유령인간”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8월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쪽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변 분과장 같은 청소노동자와 급식실 조리 노동자, 가전설치·방문점검 노동자 등은 여전히 제대로 된 휴게실이 없어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수기, 비데 등을 점검하기 위해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방문서비스노동자는 휴식공간이 아예 없어 고객의 집 앞 비상계단이나 차 안, 물류 창고 등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국가전통신노동조합 박상웅 노안국장은 “우리는 어차피 이동해야 하니 휴게시설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코웨이에서 설치·애프터서비스(AS) 업무를 담당하는 서비스매니저는 업무공간조차도 사무실이 아닌 물류창고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렇게 물류창고에 마련된 업무공간에는 휴게시설은커녕 기본적인 화장실조차 없는 게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실제 가전통신노조가 방문서비스 노동자 8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창고실태조사’에 따르면 업무공간으로 마련된 물류창고에 ‘휴게공간이 있다’는 응답은 8.9%밖에 되지 않았다. 화장실이 있는 경우는 12.8%,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이 있는 곳은 그중에서도 21.6%밖에 되지 않았다.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한 개정 산안법이 내년 8월 본격 시행되는 가운데 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잇따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 정명재 지부장은 “그동안 코레일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열악한 휴게 시설과 샤워실 등을 방치했다”며 “내년 8월부터는 법적으로 휴게 시설 설치 및 관리를 해야 하니 휴게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근무조건을 바꾸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개정 산안법의 하위법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휴게실 설치 의무 대상을 ‘전체 사업장’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정방문노동자처럼 이동이 잦은 노동자에 대해서도 휴식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거점 장소에 휴게시설을 마련하게끔 사업주 의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번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는 등 예외를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가면 안 된다”며 “휴게 시설은 노동자의 복지나 사업주의 시혜 차원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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