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소통할 수 있는 마을로 만들어야
몇 해 전, 위층에 아이 있는 집이 이사했다. 이사 온 날, 좋은 과자를 사 들고 인사 왔다. 아이들이 소란해도 이해해 달라는 뜻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도 아이 뛰는 소리 정도는 배경음 삼을 정도로 무감한 편이라서 찾아온 성의가 고마웠다. 얼마 후, 아이들이 저녁에 너무 열심히 운동했다. 집에 있는 그림책 몇 권을 골라서 올라갔다. 말없이 선물을 내미니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이후로도 일은 있었다. 그러나 불편하진 않았다. 선물을 몇 차례 주고받았을 뿐이다.
요즘 층간소음 문제가 갈수록 심각하다.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관련 상담 건수는 2017년 2만2849건, 2019년 2만6257건으로 늘더니 2020년에는 4만2250건으로 폭증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등이 늘어난 탓이다. 일시 다툼에 그치지 않고 보복 소음, 폭행, 살인 등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인구 대다수가 공동주택에서 살기에 다른 나라보다 문제가 더 잦은 듯하다.
정소현 장편소설 ‘가해자들’(현대문학 펴냄)은 도시 정신병이자 전염병인 층간소음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소리는 1211호에서 시작된다. 이들의 일상은 ‘귀가 뜨인’ 1111호 윤서 엄마의 신경을 자극한다. 산후풍 탓에 환기도 못 한 채 집 안에 갇혀 있는 그녀는 “명확하게 들려오는 것들을 못 들은 척하며 살지 않으리라 결심”한 후 분쟁을 일으킨다. 위층에서 신발을 벗을 때, 밥 먹으러 주방으로 이동할 때 등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항의하고, 나중엔 발걸음 따라 천장을 두드리고 우퍼 달아 공격까지 한다.
아래층 1011호 갓난아기 성빈의 울음소리도, 옆집 1112호 지안의 물 내리는 소리도 예외 없다. 발을 구르고 벽을 두드리는 등 보복을 서슴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과하던 이웃도 같이 신경증과 강박증에 감염된다. 천장에 청소기를 돌리고 벽을 차는 등 맞대응을 시작한다. 정신이 무너진 윤서 엄마는 끝내 입원했으나, 그 와중에 직장 잃고 이혼당하고 아이도 빼앗긴 1112호 지안 엄마가 1212호의 소리를 듣고, 위층을 찾아가 살인까지 저지른다. 소음이 분쟁을, 분쟁이 살인을 낳는 과정이 무섭고 끔찍하다.
작품에 따르면, 층간소음의 진짜 문제는 소음보다 고립이다. 시어머니 괴롭힘과 남편 무관심은 윤서 엄마의 마음에 천지간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일으켰다. 그녀의 항의는 사실 구조요청 신호에 가깝다. 윤서는 말한다. “외로움이 만든 실체 없는 소리가 엄마의 삶을 잡아먹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것에 먹힐 거다.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소리를 듣는 건지 엄마처럼 벽을 두드리고 있다.”
하소연할 곳 없는 여성의 텅 빈 내면이 이웃의 작은 소리를 큰 소음으로 증폭시킨 실존의 앰프다. 성빈 엄마도, 지안 엄마도, 심지어 어린 윤서조차 가슴에 외로움의 앰프가 달려 있다. 작품은 소음을 줄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이 그 이면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천장이 두꺼운 아파트를 짓는 물리적 해결책도, 실내 슬리퍼를 신고 매트를 깔아 조심하도록 권하는 조언도, 위원회 등 공적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층간소음 해결에 중요하다. 그러나 유대를 잃은 인간은 늑대처럼 잔혹해지고 존재 증명을 위해 발버둥친다. 이들은 작은 소리도 크게 듣고 없는 소리도 만들어 듣는다. 이웃 사랑 없이 무엇도 이들을 막지 못한다. 아파트를 마을로 바꾸는 사회적 해결책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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